32년간 1030쌍 주례 선 퇴직공무원 ‘화제’
32년간 1030쌍 주례 선 퇴직공무원 ‘화제’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2.16 17:02
  • 호수 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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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섭(75) 前 청주농촌지도소장

“10쌍 중 1쌍이 이혼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내가 주례를 선 1030쌍 중 이혼했다는 부부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30여년 동안 1000번이 넘는 결혼 주례를 선 퇴직공무원이 있다. 前 청주시 농촌지도소(현 청주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박원섭(75) 어르신이 그 주인공.

박 어르신의 주말은 늘 분주하다. 이른 아침부터 정장을 차려입고 한껏 멋을 부린 후, 그의 발걸음은 예식장으로 향한다. 32년 동안 반복해 온 주말 일상이다. 청주 시내를 벗어나 대전 유성이나 조치원까지 장거리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혼시즌인 5월이나 10월에는 하루에 4~5쌍의 결혼식도 맡는다. 그가 맺어준 부부가 어느새 1030쌍이나 됐다.

그는 “지인의 부탁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주례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 나를 찾아주는 이들이 너무 감사하다”며 “1000번이 넘는 주례 경력보다는 한 커플도 헤어지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보람되고 기쁘다”고 말한다.

수많은 결혼식에 참여하다보니 베트남, 몽골, 카자흐스탄 등 다문화가정 23쌍을 탄생시킨 경력도 갖게 됐다.

박 어르신은 “천리타향 사람을 결혼식장에서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 인연이냐”며 “시간이 흘러 그들이 아이 낳고 잘 산다는 소식에 내 자식들 잘 된 것처럼 흐뭇해진다”고 말한다.

그의 주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주례사가 15분 이상 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길면 지루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박 어르신의 주례는 간결하고 재미있다. 대신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부부로서 서로의 책임감과 도리만큼은 거듭 강조한다. 짧은 주례사에도 그만의 ‘부부철학’이 잘 녹아 있다.

“부부의 책임감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운명으로 인식하는 마음, 배우자에게 빚지고 산다는 마음이 책임감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파트너이자 친구다. ‘사랑과 존경’ ‘성실과 근면’ ‘어려운 난관을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은 평생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부의 기본 도리다.”

그에게는 특별한 주례노트가 있다. 1980년 1월 9일 첫 주례를 시작으로 지난 1월 23일 결혼한 1030번째 부부까지 신랑신부의 이름과 날짜, 요일, 예식장이 빠짐없이 적혀 있다. 빛바랜 70여 장의 사진은 그의 주례 경력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박원섭 어르신에게 주례노트는 농촌지도소 재직 중 받은 내무부장관상이나 국무총리표창, 녹조근조훈장보다 더 소중한 보물이다.

그는 “두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성스러운 자리에 주례로 선다는 게 처음엔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이젠 영광스런 일이 됐다”며 “아무리 주례 경력이 많아도 결혼식장에 들어설 땐 늘 설렌다”고 말한다.

박 어르신은 1995년 6월, 청주시 농촌지도소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고향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청주 농협 원로청년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퇴임 후 그에게 주례를 요청하는 부부는 오히려 더 늘었다.

그는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형상을 빗댄 한자가 ‘날 생(生)’이다. 이처럼 삶이란 위태롭게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자칫하면 물 속으로 떨어질 수 있다. 외나무다리를 서로 의지하고 건너는 운명 공동체가 바로 가정이다. 내 주례를 듣는 신랑·신부는 물론 하객들이 삶을 고단하고 무겁게 느끼기보다 이를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어르신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고 건강이 하락하는 한 주례서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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