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받은 감동의 초등학교 졸업장
60년 만에 받은 감동의 초등학교 졸업장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2.17 11:33
  • 호수 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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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옥천, 80대 어르신 위한 명예졸업식 펼쳐

“60년 세월이 흘러 그토록 받고 싶던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됐네요.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았는데 이젠 한글도 깨치고 덧셈과 뺄셈도 할 수 있어요.”

글을 모른 채 한평생 살아온 충북 음성과 옥천군의 여성 어르신들이 60년을 기다려 온 ‘초등학교 명예졸업장’을 받아 감동을 전하고 있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초등학교(교장 오희진)는 2월 17일 오전 10시 교내 부용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9명의 어르신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전달했다.

이날 명예졸업장을 받은 어르신들은 모두 가난과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교육의 기회를 놓쳤다. 어르신들은 읽고 쓰기는 물론 덧셈과 뺄셈도 제대로 못해 '무식쟁이'라고 놀림 당할까봐 남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도 못한 채 평생 한을 안고 살아왔다.

지역 어르신들의 이 같은 처지을 알게 된 음성군노인복지관은 지난 2005년부터 ‘행복한 한글학교, 나도 학교에 간다’라는 프로그램 마련해 한글과 수학 교실을 운영해 왔다. 2008년부터는 무극초등학교와 어르신 교육 협약을 맺고, 학교 도서관과 영어체험실, 과학실, 컴퓨터실, 체육관, 급식소 등 학교 내 시설을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날 졸업장을 받은 김음전(80) 어르신은 “그동안 글을 몰라 받았던 서러움과 두려움이 생각나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며 “늦었지만 배움에는 나이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어 학업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토록 원하던 졸업장을 받게 된 어르신들은 이날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학교는 이번에 졸업한 9명을 포함해 모두 23명의 어르신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노인복지관 한글학교에는 올해까지 348명이 입학해 210명 수료하고 51명이 졸업했다.

오희진 교장은 “못 배운 한을 뒤늦게 풀게 된 어르신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음성군노인복지관과는 올해도 입학식, 운동회, 현장학습, 수학여행 등을 통해 할머니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주민자치센터 ‘행복한 학교’도 같은 날 안내초등학교(교장 손종연)에서 여성 어르신 5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전달했다. 늦깍이 졸업생들의 평균 연령은 81세, 최고령자는 87세에 이른다.

안내초등학교가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지난해 9명, 올해 5명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졸업식을 치렀다.

최고령 졸업자 안봉순 어르신은 “어릴 적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다가 17살에 시집을 갔다”며 “일본군으로 징집된 남편으로부터 편지가 왔을 때도 글을 읽지 못해 많이 울었다”고 지금까지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지금은 '행복한 학교'가 생활의 전부가 됐다”며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수업시간만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8년 전 ‘행복한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버스 시간표도 보지 못했고, 이름을 못써 은행에서 입출금 하기도 어려웠던 어르신들이 요즘에는 신문도 읽고, 악보를 보며 노래도 부르는 등 예전에 몰랐던 기쁨을 맛보고 있다.

행복한 학교 대표인 민병용(53)씨는 “글을 배우는 것조차 힘겨워 했던 어르신들이 매일 수업을 해달라고 할 정도로 열성적”이라며 “유창한 솜씨들은 아니지만, 더듬더듬 읽는 말소리와 삐뚤삐뚤 적는 글들은 어느 누구의 것보다도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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