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벅차”
“다시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벅차”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2.23 18:19
  • 호수 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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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만에 초등학교 졸업하는 이아기(82) 어르신

여든의 고령에 교통사고로 전치 20주가 넘는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배움의 열정만은 놓지 않았던 만학도 어르신이 있다. 그가 70년만에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진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주인공은 성인대상 학력인정학교인 양원초등학교 졸업생 이아기(82) 어르신이다.

“한글과 영어, 수학과 음악까지,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네요. 고기도 씹어 본 사람이 맛을 아는 것처럼 공부의 맛도 느껴본 사람만이 제 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슬픔도 학업의 꿈을 펼치며 잊었고, 교실에서 나를 반겨주는 만학도 친구들의 밝은 미소를 통해 행복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학교에 나와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설레입니다.”

이아기 어르신은 지난 2007년 3월 막내 딸의 권유로 성인 학력인정 학교인 양원초등학교에 입학했다. 50여년을 동거동락했던 남편을 위암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1년여 동안 우울증으로 앓으며 집에만 있던 그를 위해 작은 딸이 몰래 입학원서를 넣었던 것. 슬픔에 빠진 노모를 향한 딸의 정성어린 마음은 그의 우울증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오히려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배움의 대한 열정에 불을 지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학교는 다녀 뭣하냐’는 주변 친구들의 만류에 오히려 그는 ‘뱁새가 황새의 마음을 어찌 아느냐’며 당당히 학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젠 배움과 기쁨과 보람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친구들에게 학교 입학까지 권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어르신은 남들보다 1년 늦은 지난 2월 23일 졸업식을 가졌다. 전치 20주가 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6개월 넘게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갈비뼈에 금이 가고, 오른 무릎의 근육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는 가슴 깁스를 하고 80일 넘게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4학년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6개월 동안은 안정을 취하며 쉬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3개월만에 병원문을 박차고 학교로 갔다.

“일제시대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혼자 어렵게 5남매 뒷바라지를 한 터라 장녀인 나로선 공부를 일찌감치 포기했지요. 그래서인지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아픈 것보다 70년 세월을 기다려 어렵게 도전한 학업의 꿈이 물거품이 될까봐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컸습니다. 행여나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까봐 초조하고 불안했지요. 그래서 걸을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가야겠다는 일념 뿐이었습니다.”

다시 등교한 후 3개월 동안은 수업이 끝나면 병원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예습과 복습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주독야독’(晝讀夜讀) 공부했다. 다행히 건강이 금방 회복돼 큰 무리없이 뒤쳐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어르신이 가장 자신있는 과목은 수학이다. 덧셈, 뺄셈 수준의 생활 산수도 버거웠지만 이젠 고차원의 연산도 거뜬하다. 숫자들의 조합과 규칙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어르신은 “수학문제를 풀면 젊어지는 느낌”이라며 “중학교에 가서도 수학만큼은 자신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 어르신을 가장 괴롭혔던 과목이 영어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나서 우리 세대는 영어 대신 일본어를 배웠지요. 한번 들은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에 한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말까지 배우려니 정말 막막했어요. 젊었을 땐 1시간이면 다 외울 수 있는 분량도 몇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안 외워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수업내용이 생각날 때 빨리 복습하기 위해서 수업이 끝나면 밥도 안 먹고 영어책부터 폅니다”고 말했다.

이아기 어르신은 노년세대들이 사회문제로 치부받는 것은 나이를 탓하며 도전할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한다. 그의 이름은 ‘아기’이지만 우리 사회의 진정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는 오늘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 어르신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며 “100세까지 건강하게 지내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하는 게 마지막 소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 곁에서 늘 응원해주고, 귀중한 가르침을 주시는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선생님들이 내게 주었던 그 가르침을 따라 학교조차 나올 수 없는 취약계층의 노인들을 위해 공부방을 열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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