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과 연금 털어 반평생 노인대학 꾸려
퇴직금과 연금 털어 반평생 노인대학 꾸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3.03 14:07
  • 호수 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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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해노인대학 안태희(74) 학장

해군에서 퇴역한 뒤 평생교육의 뜻을 품고 자신의 퇴직금과 연금 등 사비를 털어 28년째 지역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 진해노인대학의 안태희(74) 학장의 얘기다.

안태희 학장은 46세에 최연소 노인대학장으로 임명돼 ‘평생교육’과 ‘노인복지 실현’이라는 사명의식을 갖고 얼추 30년 동안 노인대학을 이끌고 있다. 지난 2월까지 진해노인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수만 2500명. 30년이 넘는 이 노인대학의 역사도 전국적으로 손꼽힌다. 지자체와 노인회, 관련 기관의 협조를 끌어내 노인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한 안태희 학장의 공로는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해군 출신 철학박사인 안태희 학장은 교직에 몸 담은 적도 없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노인요양과 케어, 교육분야에서는 전문가 수준. 노인을 이해하기 위해 취득한 노인관련 자격증만 10개가 넘는다. 사회복지사(2급), 노인복지사, 케어간병사, 노인상담사, 노인교육지도사, 노인자살예방 강사, 실버레크리에이션, 웃음치료사 자격증 등이다. ‘노력하고 실천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신념이 준 선물이기도 하다.

안 학장은 1967년부터 10여년 동안 동료들과 함께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야학을 운영했다. 교과서 구입을 비롯해 교육장소 대여, 식사 등 모든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며 10여년동안 400여명의 청소년들에게 새 희망을 열어줬다. 1978년 우연히 진해노인학교 강사로 초빙되면서 노인교육에 눈을 떴다. 그러나 노인학교의 현실은 초라하고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당시 진해노인학교는 예산은 고사하고 마땅한 강의실조차 없어 초등학교 교실, 농협회의실, 마을회관, 경로당 등을 전전하며 수업하고 있었다. 강사비 마련이 어려워 무료강의가 가능한 전문직 직장인들을 초빙해 근근히 수업을 꾸려가는 실정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보릿고개 등을 겪으며 모진 고생을 하신 어르신들이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자극 받았다. 나라를 위해 모든 걸 바쳐 헌신했던 분들이 정작 본인의 노후를 너무 초라하게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배움터를 마련하기 위해 나서게 됐다.”

무엇보다 노인학교 환경 개선이 급선무라 판단한 그는 자신의 월급을 털어 ‘노인학교 변화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대한노인회 진해시지회 회의실을 대여해 교육장소를 확보하고, 지인들을 통해 강사확보에도 나섰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1984년, 46세의 젊은 나이로 노인학교장으로 임명됐다.

쉰 살을 넘기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이 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을 교육하는 책임을 지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교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도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흔쾌히 노인학교장직을 수락했다. 지자체와 관련 기관,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아 어르신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젊은 노인학교장은 진해시에 신선한 노풍(老風)을 일으켰다. 그는 대한노인회 진해시지회의 협조를 얻어 지상 3층 규모의 노인학교를 짓고 제대로 된 노인평생교육의 터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듬해 진해노인학교가 진해노인대학으로 승격되면서 더욱 많은 입학생을 맞았다. 노인학교 시절엔 50명 이하였지만 대학 승격 후엔 200여명으로 불었다.

“배움을 향한 노인들의 열정은 젊은이들 못지 않지만 노인대학은 여가나 취미 위주의 과목들로 3~6개월 진행되는 교육과정이 대부분이다. 진해노인대학은 교육 이수기간을 1년으로 잡았다. 교육과목도 시사정보, 노인건강, 법률, 종교, 경제문제, 노인예절, 건강체조, 레크레이션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영역을 두루 갖추도록 했다. 지자체 및 대한노인회와 연계해 대학교수, 기관장, 단체장, 종교지도자, 의사, 변호사, 교육계 원로 등 저명인사를 초빙했다.”

안 학장은 사소한 것까지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배려했다. 오랜시간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을 위해 책걸상은 가장 편안한 것으로 마련했다. 건물 3층에는 노인대학생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생활체육실, 노래교실, 운동기구 등을 설치해 이용편의와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안 학장이 일군 30년의 노력과 성과는 이제 지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한국노인복지사협회 중앙회 고문을 비롯해 한국고령사회총연합회 이사 및 경남본부장, 국민건강보험 진해 장기요양등급 판정위원장, 법무부 범죄예방 자원봉사 위원 등을 역임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재, 노인대학의 역할은 노인들이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봉사에 앞장서며 존경받는 어른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라며 “어르신들이 지난날 체험한 고귀한 경험과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후손들에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노년기의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바쁜 일상 때문에 아플 틈조차 없다고 말하는 ‘평생교육 전도사’ 안태희 학장. 그는 3월 9일 열리는 32회 노인대학 입학식을 준비하며, 다시금 열정을 불태웠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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