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꽃 알리기’ 외길 인생 권지용(92) 옹
‘나라꽃 알리기’ 외길 인생 권지용(92) 옹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3.16 13:29
  • 호수 2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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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묘목 무상보급·서적 출판 무료배포 앞장

“무궁화는 단순한 꽃이 아닙니다.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잊혀가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횃불입니다.”

무궁화가 가진 민족혼을 알리고, 그 뜻을 지켜내기 위한 사명감 하나로 평생을 ‘나라꽃 알리기’ 외길 인생을 걸어 온 권지용(92) 옹. ‘무궁화 할아버지’로 불리는 그가 최근 자비를 들여 무궁화 관련 서적을 출간, 무료 보급에 나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0월 출간된 ‘韓國 나라꽃’에는 권 옹이 30년 동안 수집한 자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시대 무궁화 말살 정책에 저항해 쓴 우호익 교수의 논문 ‘무궁화고’(無窮花考)를 비롯해 역사사료 속 무궁화기록, 각종 언론 보도문 등이 실려 있다. 또한 무궁화 씨앗의 번식과 접목, 파종 및 묘목 심는 법, 무궁화 꽃잎의 약효 등의 다양한 정보들도 소개돼 있다.

책 출판까지 30여년이 소요된 만큼 페이지마다 무궁화를 사랑하는 권 옹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자비로 제작된 비매품 도서이지만 하드커버에 190쪽이 넘는 전 페이지를 컬러로 인쇄했다. 보존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반용지보다 가격이 3배나 높은 한지 재질의 종이를 사용했다. 수개월에 걸쳐 직접 교정도 보고, 편집에도 참여하는 등 책장 하나하나에 그의 열정과 정성이 담겨 있다.

권 옹은 “무궁화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이 책이 제대로 평가받아 어린 아이들의 역사교육에 활용되기를 바란다”며 “책을 통해 무궁화가 가진 민족정신이 더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그 뜻을 젊은 세대들이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지용 옹은 미수(米壽)를 넘긴 아흔 두 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무궁화 이야기만 나오면 목청을 높인다. 또렷한 기억력으로 무궁화와 깊은 인연을 맺은 자신의 삶에 대해 회고한다. 권 옹이 무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일제강점기, 그의 나이 9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민족말살 정책 중 하나로 무궁화나무를 모두 뽑아버리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면장이었던 권 옹의 이모부는 “우리를 짓밟을 수는 있어도 나라꽃을 짓밟을 수는 없다”며 뜰 한 켠에 몰래 백단심 묘목을 키웠다. 해방과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당시 이모부가 지키려 했던 무궁화 꽃이 가진 역사성과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래서 그는 대학시절부터 무궁화 묘목을 증식해 마을과 학교에 보급하는 일에 앞장섰다.

권 옹의 무궁화 사랑은 90년이 넘는 그의 인생 여정 가운데 항상 우선순위였다. 역사를 가르치며 교직에 몸 담았던 그는 제1회 고등학교 입시 공동 출제위원으로 참가해 국기(태극기)와 국화(무궁화)를 시험 문안으로 제시했다.

1980년에는 개인소유의 과천 부지에 무궁화 묘포장을 만들었다.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 국토 1000만 그루 무궁화심기 범국민 운동 5개년 계획’을 추진할 때 우수한 품종의 백단심 묘목을 확대 보급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땅을 희사한 것이었다. 이 곳에서 생산된 묘목과 씨앗은 그가 30년 동안 펼치고 있는 무궁화 보급 사업의 근간이 됐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닌데 백단심의 씨앗과 묘목을 우편료도 받지 않고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공짜로 나눠준다는 말에 사람들이 처음엔 호기심을 가졌지만 정성을 들여 제대로 키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무관심에 방치돼 있는 무궁화 밭을 볼 때면 내 자식이 아픈 것처럼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은퇴를 하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소장하고 있는 무궁화에 대한 자료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오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각계 인사들과 유관단체, 전국 대학교, 도서관, 공공기관, 교육청, 언론사 등에 무료로 책을 보냈다. 발송된 책만 2000여권에 이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는 장소를 골라 무료로 배포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책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전문가들의 자문과 글을 수집하고,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윤택중 선생, 독립기념관장 안춘생(안중근 의사의 조카) 선생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며 동분서주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궁화의 가치를 알리고 보급하는 게 내게 주어진 평생의 사명”이라며 “죽는 순간까지 무궁화 씨앗을 나눠주고, 책을 전달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어 “책에 옥고를 준 권영찬 선생은 병환으로 누워 있고, 다른 분들은 무두 유명을 달리해 마땅한 출간기념회도 열지 못했다”며 “그 분들을 대신해 무궁화를 널리 전하는 게 남은 생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전국 방방곡곡 활짝 핀 무궁화 꽃을 보고 싶다는 ‘무궁화 할아버지’ 권지용 옹. 무궁화의 민족정신을 전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우체국을 찾는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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