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드러내지 않고 배려해야 시니어 비즈니스 성공한다
‘노인’ 드러내지 않고 배려해야 시니어 비즈니스 성공한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3.28 15:42
  • 호수 2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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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구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만 65세에 들어선 가운데 소비력을 갖춘 이들을 향한 기업들의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베이비부머는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약 7700만명(우리나라 기준 46~64세)으로 정의된다. 이들은 높은 교육수준과 함께 백만장자가 가장 많은 연령층, 평균수명이 가장 길 것으로 예측되는 세대, 미국 경제의 소비를 주도한 세대 등으로 특징된다. 미국 기업들이 구매력이 높은 이들에 초점을 맞춘 상품을 개발, 선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과 함께 베이비부머가 본격 등장한 국내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베이비부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기업들의 자구책을 분석, 고령친화산업이 성공할 수 있는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

▲제1원칙-노인 냄새를 버려라

60세 이상 노인 상당수가 요실금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노인용(성인용) 기저귀 사용은 한사코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노인’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 제지업체인 ‘킴벌리-클락’도 성인용 기저귀 브랜드 ‘디펜드’(Depend)를 출시하면서 노인들이 민망하게 여기는 ‘기저귀’ 이미지를 버렸다. 대신 TV광고에서 “내 몸에 꼭 맞는 기능성 속옷.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것 같지만 충분히 보호해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저귀’를 ‘기능성 속옷’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 것.

보안회사 ‘ADT’도 “고객을 상대할 때 고객이 나이 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라”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노인 수요가 많은 가정의료서비스 상품에 대한 상담에서는 최우선 원칙이다.

미국 욕실 인테리어 업체인 ‘쾰러’(Kohler)는 욕실 지지용 손잡이(그랩 바)가 노인용이라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브랜드 이름을 등산도구 ‘자일’을 연상시키는 ‘비레이’(Belay)로 지었다.

쾰러의 수석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다이애너 슈라즈는 “노인들에게 ‘좋은 디자인의 욕실 지지용 손잡이가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이는 지지용 손잡이를 사용할 만큼 늙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원칙-디자인으로 승부하라

베이비부머들은 제품의 실용성뿐만 아니라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만큼 제품에 ‘젊은’ 감각을 반영해야 한다.

미용티슈 브랜드 ‘크리넥스’는 최근 티슈가 들어있는 박스 디자인을 대폭 수정했다. 기존의 전통적인 꽃 모양은 줄이고 현대적인 느낌의 디자인과 사진 등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크리넥스의 모기업인 킴벌리-클락의 디자인 이사인 크리스틴 마우는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현재의 시니어들은 기존 노년층보다 젊은층에 훨씬 더 가까운 심미적 취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킴벌리-클락은 성인용 기저기 ‘디펜드’에도 속옷과 같은 세련된 무늬를 넣어 시니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최근 출시된 ‘디펜드’는 실제 팬티처럼 돌돌 말려 제품 일부가 보이도록 포장돼 시장에 나온다. 이 포장에는 심지어 ‘속옷’이라는 표시까지 붙어 있다.

‘디펜드’는 광고에서도 변신을 꾀했다. 과거엔 할머니로 등장하는 하얀 머리의 여배우가 ‘디펜드’ 광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새로 나온 광고에서는 50대 초반의 몸매 좋은 남자가 커피숍에 앉아 짙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걸어가는 세련된 중년 여성에게 유혹의 눈길을 던진다. 보다 젊고 활동적인 모델을 광고에 등장시켜서 제품의 변화된 이미지를 시니어 소비자에게 재인식 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은카운슬 은병수 대표는 “시니어 시장에서 디자인은 고령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이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해 설계돼야 한다”며 “최근 시니어 시장에서는 노인을 포함한 장애인, 어린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의식주는 물론 대중교통과 공공시설 이용 등 일상생활에서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심지어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일컫는다. 단순히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발상의 확대로, ‘노인이 편하면 모든 사람이 편하다’는 디자인 철학이 들어 있다.

▲제3원칙-드러나지 않게 배려하라

글로벌 생활용품 전문기업 ‘도브’는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20대 여성이 주를 이뤘던 모델을 중고령 여성으로 변화시켜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소비대상을 시니어에 맞추고 마케팅 전략을 변화시킨 것이 적중했다.

대형약국 체인 ‘CVS케어마크’는 매장 바닥에 카펫을 깔아 노인들의 미끄럼사고를 방지했다. 또 제품 진열 선반 높이를 기존 72인치에서 60인치로 낮춰 시니어 소비자를 배려했다. 매장 조명도 더 자연스러운 빛으로 바꿨다. 이밖에 매장 입구의 턱을 없앴고, 턱이 있는 곳은 노란색을 칠해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자산 운용사인 ‘인베스코 반 캠펜’은 재무 상담을 해주는 사무실의 접대용 커피잔을 기존 종이컵에서 손잡이가 달린 컵으로 바꿨다. 조명도 눈이 편한 빛으로 바꾸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고객을 고려해 잡음을 내는 사무실 TV는 끄도록 했다.

인테리어 회사인 ‘셔윈-윌리엄스’도 3400개 매장을 시니어 계층의 편의성과 안락성을 고려해 세심하게 개선했다. 우선 조명을 더 밝게 하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더 늘렸다. 작은 활자로 표시된 안내판은 매장에서 아예 없앴다.

생활용품 회사인 ‘암&해머’는 시니어 고객들이 제품 포장의 글씨를 읽기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배경색과 활자 색깔을 보다 뚜렷하게 대비되도록 조정했다. 활자 크기도 두드러지지 않도록 서서히 확대했다. 5년 전에 비해 활자크기가 20% 더 커졌다.

생활용품 회사인 ‘처치&드와이트’의 부사장인 데이비드 코언은 “65세에 가까운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가량이 실제 나이보다 스스로 더 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베이비부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되 노골적으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회사인 ‘다이아몬드 푸즈’는 스낵의 포장과 뚜껑을 시니어들의 손에 맞춰 재설계했다. 울퉁불퉁 홈이 있던 뚜껑은 손에 잡기 쉽게 바꿨고, 한 차례만 돌려도 쉽게 열리도록 했다. 손가락 관절염이 있는 경우 뚜껑을 여러 번 돌릴 때 힘이 들고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다루기 쉬운 뚜껑을 만든 것.

약국 체인점 ‘월그린’은 지난 2년간 7655개 전 매장을 시니어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개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제와 염색약, 감기약이 진열된 곳에는 포장지의 설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돋보기를 배치했다. 한 발 나아가 유행에 맞춰 돋보기도 자주 교체하고 있다.

특히 자체 상표로 제작하는 진통제와 요실금 치료제는 뜯기 쉬운 포장으로 교체했는데, 앞으로 비타민 등 다른 상품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베이비부머들을 겨냥한 쇼핑센터 개발도 새로운 추세를 타고 있다. 막강한 소비력을 가진 베이비부머들을 유치해야 쇼핑센터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전략에 따라 유명 쇼핑센터들은 노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구조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또, 노인들이 주고객인 고급 식당이나 스파, 각종 클리닉 등의 입점을 늘려 베이비부머들이 보다 편하게 쇼핑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韓·中·日, 아시아도 변화의 물결

이미 초고령화로 들어선 일본의 시니어 시장은 고령자의 신체적 능력 둔화를 배려한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고령화와 관련해 세계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동경 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중 70%가 시니어 관련 부서를 설치하고 있고, 앞으로 시니어를 위한 관광이나 건강식품, 로봇, 화장품 등 고령친화산업이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엔 일본 내 성인 기저귀가 유아 기저귀의 매출액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중국의 시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중국은 여행이나 오락 등 문화오락상품과 교육 등 정신적인 수요를 만족시킬 만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개발되지 못해 시장성이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의 고령친화산업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주형 프로휴먼 FM연구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시니어 비즈니스에 대한 모델조차 없는 실정”이라며 “빠른 고령화 진전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 등 각국이 겪은 시행착오를 면밀히 검토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최근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이 중국 시니어를 겨냥한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성형의료관광이나 명품관광, 제주도 이민 등 중국 시니어들의 우리나라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의료 및 요양산업 등 중국 내 잠재적 시장의 확대 가능성도 매우 크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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