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신생아 살리는 한국 할머니들의 손뜨개 사랑”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는 한국 할머니들의 손뜨개 사랑”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3.31 14:18
  • 호수 2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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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춘(96)·유복순(72) 어르신, 저체온증 아이들에 모자 떠 선물…

    평생을 갈고 닦은 뜨개질 솜씨를 발휘해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신생아들을 돕고 있는 어르신들이 있어 훈훈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 손뜨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이우춘(96)·유복순(72) 어르신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뜨개바늘과 털실을 놓지 않는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그들의 손놀림은 멈추지 않는다. 비록 모자를 건네받을 아이들의 국적도,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한 생명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모자 뜨기에 열심이다. 눈은 침침하고, 손놀림도 둔하지만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뜨개질 한 코 한 코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이 어르신들은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대표 이상대)이 주관하는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저체온증으로 죽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해 펼치는 국제 어린이 보호사업이다. 털모자는 아기의 체온을 2도 이상 높여주는 인큐베이터와 같은 역할을 해 저체온증 방지에 큰 도움이 된다.

남대문 시장 노점에서 50년간 양말을 판 유복순(72) 어르신은 “일제치하와 해방, 6·25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으며 온갖 고생과 역경을 딛고 지금까지 살아와서 그런지 모자가 없어 아이들이 얼어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면서 배운 것이라곤 뜨개질밖에 없는데, 이 것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한다.

유 어르신에게 뜨개질은 단순한 생활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와도 같다. 그는 양말과 함께 틈틈이 만든 목도리, 모자 등을 팔아 일곱 명의 자녀들을 모두 길러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고된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밤을 지새우면서 아이들의 조끼와 바지도 손수 떠 입혔다. 이런 근면성실함을 보고 자란 일곱 자녀들은 잘 자라 모두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집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9살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배우기 시작한 게 바로 뜨개질이다.

 그 때는 잠깐 하고 말 줄 알았는데 이렇게 평생 뜨개바늘을 쥐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이 바늘과 실 때문에 아이들 다 키우고, 어려운 곳에 있는 아이들까지 돕고 있잖아(웃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몸으로 익혀진 그의 손놀림은 여전히 빠르고 빈틈이 없다. 복지관에서도 그를 따라올 사람은 없다. 다른 어르신들이 1개의 모자를 완성할 동안 그는 2~3개의 모자를 뚝딱 만들어낸다. 모자를 비롯해 조끼, 장갑, 방석이 그의 손끝에서 척척 완성된다.

유 어르신의 옆에서 열심히 격자 목도리를 만들고 있는 어르신이 있다. 올해 96세가 된 이우춘 어르신은 본인을 ‘개성 똑똑이’라고 소개한다.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넘친다.

이 어르신은 “깜빡깜빡 다른 건 다 잊어도 뜨개질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며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좋아하고, 또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계속 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어 “나이를 핑계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는 것”이라며 “나만의 재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다”고 덧붙였다.

이 어르신은 젊었을 때부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6·25전쟁 직후 부모 잃은 아이들을 모아 돌보며 한글도 가르쳤다. 이 일을 계기로 초등학교 교사가 된 그는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해왔다. 복지관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모자만들기’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가장 먼저 자원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먼 이국 땅의 아이들이지만 모자에 담긴 사랑의 마음은 분명히 전달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때문에 이 어르신은 모자와 함께 직접 아이들에게 편지도 쓴다. 

그는 서툰 글씨로 ‘96세 먹은 할머니라 완성된 모자가 파는 것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적었다’고 편지를 썼다.

이 어르신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먹고, 자고, 입는 것이 없어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마음 같아선 지금 모자를 받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맞춰서 모자와 조끼를 계속 떠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우춘·유복순 어르신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뜨개질을 계속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만든 모자는 체온을 유지하는 방한용품이 아니라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선물이 아닐까.

이우춘·유복순 어르신의 주름진 손 끝에서 완성된 신생아모자는 세이브칠드런을 통해 4월 중 에티오피아·말리·네팔의 신생아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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