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노인 자조모임’…“뭉치니 우울증도 훌훌~”
서울 강서‘노인 자조모임’…“뭉치니 우울증도 훌훌~”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4.08 15:32
  • 호수 2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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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자조모임 운영, 홀몸노인 85명 참여
우울증 50% 감소… 정서지원·심리치료 호응
주민 자원봉사자 ‘조직가’ 참여, 주민화합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홀몸노인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가양4종합사회복지관 2층에서 어르신들의 흥겨운 노래 가락이 울려 퍼진다. 작은 공간이지만 6명의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비롯해 힘겨웠던 시집살이, 드라마 줄거리까지…. 어르신들은 ‘자조모임’을 통해 만난‘이웃가족공동체.’ 홀몸노인이 밀집한 곳에 자리한 가양4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2007년부터 인적네트워크로 연결한‘이웃가족공동체’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참여어르신들의 평균 우울증지수 30%, 중증 우울증지수 50%의 치료 효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외로움으로 고생하던 어르신들이 우울증을 떨치고 다른 어르신을 돌보는‘노노케어’로 발전했다. 일부 어르신들은 자원봉사까지 참여하고 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지역 어르신 52% 경증 이상 우울증

서울 가양동은 영구임대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입주민 중 70%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장애를 안고 있다. 특히 가양2동 4단지영구임대아파트 입주민의 23.1%가 65세 이상 어르신들이다. 4명 중 1명이 어르신인 셈이다. 게다가 입주 어르신들의 대부분이 홀몸노인이여서 이 지역의 노인 우울증 비율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다.

강서구보건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아파트 입주 어르신의 24.1%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지난해 평균 노인 우울증 비율이 약 13%인 점을 놓고 볼 때,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또, 2007년 복지관에서 자체 실시한 우울증 검사에서도 복지관 이용 어르신의 52%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가양4종합복지관은 지역 어르신들의 우울증 해소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대책반을 구성하고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 지난 2007년부터 ‘지역사회와 어르신들의 행복한 어울림’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주민, 노인 우울증 예방 ‘자원’

‘지역사회와 어르신들의 행복한 어울림’ 사업은 지난 2007년 3월, 지역적 특성에 맞춰 탄생한 어르신 특화 프로그램이다. 노인 우울증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만들어 주기’란 점에 착안, 동료 어르신들과 지역주민들을 인적네트워크로 연결한 것. 현재 85명의 어르신들을 포함한 16개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노인 우울증 예방 및 치료사업은 ▷자조모임의 조직화 ▷노인상호체계(은빛사랑방모임) ▷정서지원프로그램 ▷전문사례관리프로그램 등 4개 영역으로 나눠 진행된다.

그 중 가장 핵심은 ‘자조모임’이다. 대화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주고,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과 간식을 제공해 가족과 같은 이웃공동체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자조모임은 조장과 조원, 조직가(자원봉사자)로 이뤄진다. 조장은 조원들의 의사를 반영해 모임과 활동을 주도한다. 조원은 우울증이 있는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들을 섞어 한 조를 이룬다. 조직가는 가양동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로 자원봉사를 통해 어르신들의 모임에 함께 참여한다. 이들은 모임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갈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한 조를 구성하는 인원은 최대 6명을 넘지 않으며, 모임은 조원들끼리 상의해 매주 1~2회씩 자율적으로 실시한다. 조원들은 자신의 집에 조원들을 초대해 간식 등을 제공하면서 서로에 대해 신뢰와 우정을 쌓는다. 생일과 가족들의 경조사도 함께 챙긴다. 봄, 가을이 되면 나들이 통해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의 정을 함께 느끼고 있다.

사업 초기만 하더라도 참여 어르신들이 모임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단 모임이 조직된 후에는 활발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였다.

‘지역사회와 어르신들의 행복한 어울림’의 실무자 박소영(29) 사회복지사는 “사업초기에는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경우도 많았는데 사업 시행 후 4년을 넘어선 지금, 자신이 속한 모임에 지극한 애정을 쏟는 어르신들이 크게 늘었다”며 “이제 어르신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창의적인 활동들을 계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자조모임이 이러한 성과를 거두자 복지관은 매달 한 차례 원예활동이나 집단미술, 웃음치료 등의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전시회나 발표회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마련하고 있다.

김필례(76) 어르신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사람들한테 천대나 받지, 어딜가서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겠냐”며 “주변 의식하지 않고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감사한데, 간식과 문화프로그램도 함께 준비해 주니 그저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자조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상례(86) 어르신은 “요즘 노인들을 누가 쳐다보기나 하나…. 조모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루 종일 한마디도 못 할 때도 있었다”며 “서로 얼굴 마주보며 웃고 떠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조원들끼리 얼굴도 자주 보고, 안부도 묻고, 서로 챙겨주니 진짜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중증 어르신, 우울증 지수 50% 감소 효과

‘행복한 어울림’ 사업의 직접적인 효과는 참여한 어르신들의 우울증 감소와 치료다. 이 복지관은 분기별로 ‘한국형 우울척도검사’를 실시해 지속적으로 노인 우울증을 관리하고 있다. 중증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자조모임 외에도 의료 서비스와 노노(老-老) 케어 등 개별 사례관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의 우울증 지수는 2007년 사업초기 당시 13.7에서 지난해 10.34를 기록하며 30% 이상의 감소 효과를 보였다. 특히 경증보다는 중증 우울증 어르신의 효과가 컸다. 초기 심각한 우울증을 보였던 10명은 우울증 평균수치가 22.83에서 12.83으로 낮아지며 50%에 달하는 치료효과를 보였다. 이들은 현재 우울증 수치 정상을 나타내며 행동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노인 우울증이 경제적 박탈감과 더불어 외로움에서 기인하는데, 자조모임을 통해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르신들의 우울감은 크게 감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박소영 사회복지사는 “4년 넘게 모임을 유지하다보니 외부 도움 없이도 어르신들끼리 모임을 꾸려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어르신들이 서로 돕고 의지하는 문화를 만들어 자조모임 자체가 성숙한 치료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무릎 수술을 받은 후 급격한 우울증을 앓아왔던 이봉숙(72) 어르신은 “노인 우울증은 신체적 이상에 의한 질환이 아니라 무관심에서 오는 마음의 병”이라며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를 주고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전양환 정신과 교수는 “노인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의 장애상태로 나타나기보다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들은 충분히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고 바쁜 일상생활에서 관심 밖에 놓이기 쉽다”며 “심리적 안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느낌, 감정, 정서 상태를 함께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심리적 안정은 한 개인의 마음의 평정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위한 예산 확보가 관건

서울 강서지역의 홀몸노인 조직화사업은 상호 원조라는 전통적인 미덕을 되살림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노인 우울 예방 및 치료 시스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 노인들만의 관계를 넘어 지역사회 자원봉사조직이나 상인, 병원 등 지역네트워크를 더욱 활성화하는 결과도 낳았다. 그 결과 지난 2009년 서울시의 우울증 예방 특화사업으로도 선정됐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한 예산 확보가 문제다. 올해 사업도 정부와 기업의 후원 없이 복지관 예산으로 빠듯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양4종합복지관 허성구 과장은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가까운 곳에 사는 동료들과 가족같은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챙겨주고,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느낀다”며 “전문 인력이나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도 대입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사업에 100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할 경우 연간 10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된다”며 “공익사업을 주관하는 기업들이나 정부의 지속적인 후원만 뒷받침된다면 어르신우울증 예방과 홀몸어르신 대책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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