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이 인성(人性)학당이 되는 날을 꿈꾼다”
“경로당이 인성(人性)학당이 되는 날을 꿈꾼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4.14 19:05
  • 호수 2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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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구 가좌4동 경로당 김학열(73) 회장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건 기본적인 인품과 생활태도, 조화로운 인격입니다. 인성교육이 잘 된 아이들은 성공한 사람은 못 되도 사회와 이웃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인천 서구 가좌4동 경로당에는 어르신들보다 초등학생들이 더 북적거린다. 매일 10여명의 학생들이 경로당을 찾아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760여명의 학생들이 경로당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는 ‘청소년이 국가의 미래’라는 김학열(73) 경로당 회장의 굳은 의지가 나은 결과다.

김 어르신은 경로당 회장에 취임한 지난 2006년부터 청소년 인성교육을 경로당 중점사업으로 추진했다. 올해로 벌써 6년째다. 이젠 인천지역에 입소문이 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인성교육 특별강연을 마련해 김 어르신을 초청할 정도다.

교육 초기엔 예절과 관련된 좋은 글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정도였다. 하지만 경로당을 찾는 아이들이 크게 늘자 교육프로그램을 단계별로 세분화했다. 1단계 ‘효개념’, 2단계 ‘효실천’, 3단계 ‘생활예절’, 4단계 ‘문학과 정서’, 5단계 ‘인명존중’ 순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이 재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경로당에서 교육을 마치고, 감상문을 적은 원고지가 4000여부에 달한다.

“경로당 한 켠에 원고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쉽게 버리지 못한다. 원고지에는 아이들의 순수한 감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내겐 그 아이들과 눈높이를 함께 하며 생각을 공유한 귀한 추억이 녹아 있다. 그 종이가 내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청소년 교육을 향한 그의 열정은 칠순의 나이도 막지 못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끄는 것도 몰랐던 김 어르신은 현재 블로그와 온라인카페(장자골문학동산)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매일 수많은 글들이 업데이트 된다. 이 모든 게 청소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밤새 컴퓨터와 씨름했던 그의 노력 덕분이다. 또 청소년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논술지도자 과정도 이수했다.

게다가 김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양질의 인성교육 교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직접 ‘장자골’이란 출판사까지 설립했다. 시, 수필, 아동문학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교재 내용도 직접 선정한다. 제작을 비롯해 편집, 출판까지 자비를 들여 완성된 책은 교육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지금은 인성교육교재를 비롯해 노인대학책자, 효교육 참고서, 청소년문화학교 교재도 만들고 있다. 지난해 김 어르신이 아이들에게 나눠 준 책만 2000권이 넘는다.

“사업실패 후 문학을 통해 마음의 평안과 쉼을 얻고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이젠 청소년 교육전도사로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 ‘청소년이 나라의 미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은 없다. 사회의 어른인 노인들이 그런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80년, 소년원 아이들을 훈육하는 청소년보호관찰위원으로 활동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반항적 모습에 숨어있는 아이들의 말 못할 아픔과 슬픔을 봤다. 또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건전한 장소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어린 충고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건축사업가였던 김 어르신은 개인 사무실을 개조해 아이들의 문화쉼터인 ‘열린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을 나눠 음악감상실과 댄스연습실도 만들고, 라면과 커피 등 다과도 준비했다. 또 문학을 통해 아이들과 대화하고, 기타, 피아노 등 악기를 무료로 가르치기도 했다.

청소년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30년간 이어져 지금의 인성교육 사업이 가능했던 것. 이밖에도 김 어르신은 인천서구 시인학교를 운영하며 후배 문인들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까지 300명이 넘는 후배들을 키워냈다. 또 2004년에는 청소년 문학발전연구회를 개설해 지역 내 글짓기, 백일장을 주관해 실시하고 있다.

그는 “문학은 다양한 세대가 공유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최고의 가치다. 글은 나눌 때 그 가치가 더욱 커진다”며 “감성이 메말라 가는 청소들에게 문학적 감성과 감동을 전하는 것이 내 남은 사명”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직접 만든 교육교재를 들고 인천지역 경로당과 학교를 찾아다닌다. 청소년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뜻을 함께 펼칠 기관들을 찾고 있는 것. 강의 때마다 수 십만원의 교재비가 들고, 먼 길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그의 눈은 이미 인천을 넘어 전국을 향하고 있다. 그는 “전국 240여개 시군구 노인회에 교육책자를 보급해 노인들을 청소년 교육자로 키우면 전국 경로당이 인성학당이 될 것”이라며 “5만8000여개 경로당에서 연 100명의 청소년들을 가르치면 600만명의 청소년들에게 인성교육이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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