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택배, ‘무모한 도전’ 아닌 ‘발상 전환’의 성공”
“노인 택배, ‘무모한 도전’ 아닌 ‘발상 전환’의 성공”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5.25 15:27
  • 호수 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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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근(61) 실버퀵서브웨이택배 대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는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10년 전부터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노인의 직장’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이가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만 채용해 택배사업을 펼치는 ‘실버퀵서브웨이택배’ 배기근(61) 대표다.

‘실버퀵택배’에는 32명의 어르신 배달원이 있다. 평균연령은 70세. 최고령자가 81세, 여성노인도 10명이나 된다. 사업초기부터 함께 한 10년 경력의 배달원도 15명에 이른다. 이들은 하루 평균 4~5건 정도의 서류, 의류, 제품샘플, 꽃바구니, 선물 등을 배달한다. 서울 지리에 밝고, 경력 있는 어르신의 경우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배 대표는 “노인들의 가장 큰 장점은 인건비가 저렴하고 성실하다는 점이다. 신속성이 생명인 퀵서비스에 노인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다.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다른 택배회사와 비교해 기동성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토바이 배달은 일정분량의 물건이 모여야 배송에 나서지만, 실버퀵 서비스는 1건의 요청만 들어와도 바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실버퀵 택배는 다른 곳보다 요금이 최대 40%까지 저렴하다. 시니어패스를 이용, 운임을 내지 않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배달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장거리 배송의 경우 타 택배사보다 반값 이상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노인일자리에 대한 배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노인을 위한 최고의 복지는 노인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일하는 노인은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스스로 설계해 나갈 수 있다”고 힘줘 말한다. 그래서 그는 회사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을 돌려보낸 적이 없다. 그는 “택배업무는 지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2~3일 정도 간단한 서비스 교육만 받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배 대표가 실버퀵을 설립한 것은 지난 2001년 6월. IMF 외환위기 후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고 근심하던 그의 눈에 띈 모습이 서울 종로 탑골공원과 안국역 일대에서 특별히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었다.

그는 “탑골공원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정한 어르신들을 보고 ‘저분들과 함께 일을 하면 외환위기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사업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게 노인 택배사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1년만 해도 사회적으로 고령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의 만류도 심했다”며 “하지만 내 눈에 노인들은 능력과 체력, 열정이 있는 유능한 직원들로 보였다”고 덧붙였다.

사업초기에는 노인들을 데리고 택배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바위에 계란 던지 듯’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정부조차 고령화 대책에 무관심했던 당시, 사무실이 밀집한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 직접 전단지를 돌리며 혼자서 배달을 시작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다.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배달주문이 늘었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어르신들의 수도 함께 늘었다. 사업이 계속 확장되면서 직원이 80명까지 늘기도 했다. 단돈 100만원을 들고 시작한 사업이 이듬해에는 2000만원, 3년 후에는 수 억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그는 “노인들을 위한 직장을 구상한 건 모험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노동력을 활용한 생각의 변환일 뿐”이라며 “노인 스스로도 ‘은퇴 이후라도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풍토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인지하철 택배가 일자리사업과 사업성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결국 피해는 선두기업인 실버퀵에게 돌아갔다. 직원은 반 이상 줄었고, 회사에서 함께 밥을 지어먹을 여건도 되지 않아 각자 도시락을 싸와야 하는 형편이 됐다.

그는 “최근 정부주도의 노인일자리사업이 많아졌지만 정작 어르신들을 고용하는 기업에 지원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노인이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중소업체가 늘어야 결국 노인복지 비용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배 대표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 큰 꿈을 꿔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6월 1일은 실버퀵 택배가 창립 1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이다. 10년 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면서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며 “지하철을 자주 오르내리며 다리가 불편해진 실버퀵 직원들이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전원목장을 만들고 싶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여가·요양서비스를 받는 장수마을촌도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의:02-2272-8070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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