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열풍… 노인이 느끼는 소외감·정보격차 심화
‘스마트’ 열풍… 노인이 느끼는 소외감·정보격차 심화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5.27 13:35
  • 호수 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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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스마트 시대’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검색과 예약, TV시청, 카메라, 은행업무, 음악감상 등 일상의 모든 업무를 손안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년층에겐 반드시 반길 일만은 아니다. 정보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노년층의 소외도 그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정보화 기기의 이기(利器)를 독차지 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과 속도를 양보해야 하는 오늘날의 노년층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노인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은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정보화로부터 멀어지는 노년세대의 현실을 짚어봤다.

 

“어르신들, 스마트폰은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는 거예요. 힘을 세게 주지마시고, 화면에 손을 가져가 보세요.”

서울 강동구의 한 주민자치센터. 5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강좌 ‘스마트기기 및 SNS 활용 특강’이 마련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15명의 수강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조심스럽게 버튼을 누른다.

해일처럼 순식간 들이닥친 스마트폰 열풍은 노년세대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무선 네트워크로 모든 일상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꿈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정보검색과 예약, TV시청, 카메라, 은행업무, 음악감상 등 일상에 원하는 모든 일들이 가능하다. 만화에서나 봄직한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 빠르고 손쉽게 처리되고 있는 것.

그러나 우리의 일상과 업무가 ‘스마트화’ 될수록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정보화기기를 다루는 데 서툰 어르신들의 소외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이 최신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폰의 활용이 어렵고, 용도를 알지 못해서’(40%)였다.

단지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정보격차에 따른 소외현상은 대중교통이나 여가시설을 이용할 때도 발생한다. 당장 시외버스나 기차를 예약하려해도 모든 과정이 인터넷과 신용카드 결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컴퓨터를 모르는 어르신들은 직접 창구에 나가 어렵사리 표를 구해야 한다. 경로우대를 받아 영화예매를 하려해도 반드시 현장에서 창구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는 번거러움도 감수해야 한다. 스마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정보화 사회와 점점 더 멀어져가는 어르신들의 불편한 현실이 우려되는 이유다.

◇스마트폰 대중화에도 “막연한 두려움 느껴”

가장 많은 이동통신 가입자를 보유한 SK텔레콤의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 435만명 중 65세 이상은 약 8만명. 아직 10%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다. 그나마 최근 50대 이상 가입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하지만 고령의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휴대폰 교체시기를 맞았지만, 지금까지 써오던 구형 핸드폰(일명 ‘피처폰’)을 구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종로의 한 휴대폰 가게 앞에서 만난 김모(67)씨는 “대리점 직원이 최신형 핸드폰을 무료로 준다고 해서 무턱대고 구매했다. 처음엔 스마트폰인 줄도 몰랐다. 터치패드에 익숙치 않아 기기를 교체하려고 왔는데 교환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계속 사용해야 할 것 같다”며 기자에게 스마트폰으로 수신전화를 받고,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물었다.

실제로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3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년층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중 ‘스마트폰 용도를 몰라서’ (40.1%)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구입비 및 이용비용 부담이 크다’는 답변(26.3%)이 뒤를 이었다.

조사결과, 대부분의 노년층은 스마트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갖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용도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를 물었더니 ‘말만 들어봤다’(40.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설령 인지하고 있더라도 ‘자세히 알고 있음’(4.8%)에 비해, ‘조금 알고 있음’(21.9%)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전체 국민의 스마트폰 인지비율(70.2%)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핸드폰 제조사들이 노년층들을 위한 이른바 ‘실버 스마트폰’ 제작 계획은 아직 발표된 사례가 없다.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보급에 열을 올리는 시점에서 수요가 적은 노년층 공략은 아직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부터 스마트폰 이용자가 기존 피처폰 사용자를 넘어서는 시점을 맞을 것”이라며 “통신업계에서는 고령 고객 확보를 위해 이용이 간편하고, 저렴한 실버 요금제를 결합한 ‘실버 스마트폰’ 상품을 곧 출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 넘고 산 넘어야’ 영화 한 편 관람

영화관에도 스마트바람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예매 창구 직원 대신 무인발권기가 영화관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예매를 하고, 무인발권기에서 예매번호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티켓을 바로 출력할 수 있다. 물론 발권기를 통해 현장예매도 가능하다.

하지만 노인들은 편리한 무인발권기를 이용하는 데 제한적이다. 영화관이 실시하는 노인우대 가격을 적용받으려면 반드시 현장 직원에게 영화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극장 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줘야 노인우대 가격에 영화티켓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손님이 붐비는 주말, 사전에 영화를 예약했다면 구매티켓과 신분증을 해당창구에 다시 들고 가서 할인요금을 적용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 따른다. 현재 평일 기준 일반 영화 관람료는 8000원. 65세 이상 노인은 4000원이다.

반면 학생들이 할인을 받아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무인발권기에서 별다른 신분증 확인 없이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바로 학생 할인이 적용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비슷한 할인율을 적용받는 학생들의 경우 길게 줄을 서지 않아도, 신분증을 들고 해당 직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쉽게 영화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CGV 관계자는 “영화관의 주요 소비층은 10~30대의 학생 및 직장인들”이라며 전체 관객의 0.5%도 안 되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해 무인발권기를 교체하거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인들에 대한 이용편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온라인으로 영화를 예매하려면 인터넷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을 요구하는 등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회원 가입을 하더라도 영화관과 시간을 고르고 좌석을 지정하고, 신용카드나 실시간계좌이체, 상품권 등으로 결제하는 방법 등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보급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으면 할인ㆍ적립 혜택을 받을 수 있다지만 연령에 따른 정보접근 능력을 고려하면 이 역시 격차를 더욱 키우는 요소다.

◇시외버스, 인터넷 예약·신용카드 결제…‘그림의 떡’

시외버스도 상황은 마찬가지. 시외버스는 전화예약(1544-5551)과 온라인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며 티켓 결제시 반드시 본인 명의로 된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온라인(www.busterminal.or.kr) 예약은 해당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을 해야만 예약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고속버스 터미널 관계자는 “신용카드 외 다른 결제수단을 도입했을 때 예상되는 보안문제, 수수료 등의 제반사항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버스예약 시에는 예약자 본인 명의로 된 신용카드 결제만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외버스에는 노인우대 할인 자체가 없다. 미취학 아동에게만 가격 할인이 적용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절이나 휴가철에는 매표소 앞에 줄을 길게 서 있는 어르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활용도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홈페이지 회원 가입을 하고, 신용카드로 결제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보다 매표소에 일찍 나와 기다리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스마트하고 편리한 방법이 아무리 발달해도 노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기차, 30~50% 우대할인… 전화예약 시 철도회원가입해야

기차는 비교적 노인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돼 있다.
철도의 경우 통근열차는 운임의 50%, 무궁화호는 운임의 30%, 새마을호나 KTX는 토·일요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운임의 30%를 할인 받을 수 있다. 코레일(www.korail.com)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은 다른 곳에 비해 수월한 편이다.

예약정보 창에 경로우대 인원을 설정할 수 있는 선택란이 따로 마련돼 있다. 또한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예약이 가능하다. 신용카드, 현금계좌이체, KTX패밀리상품권을 이용해 승차권 대금을 바로 결제하는 시스템은 동일하다.

반면 전화예약(1544-7788)의 경우, 65세 이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코레일멤버십카드를 소지한 철도회원만 이용이 가능하다. 전화예약의 경우에도 신용카드 및 현금계좌이체 등의 결제방법은 같다.
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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