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지팡이’는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다”
“‘민중의 지팡이’는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6.02 14:30
  • 호수 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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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지역민이 송덕비 세운 前영암경찰서장 김용학(81) 어르신

희수(喜壽)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지팡이는 녹슬지 않는다’는 신조 아래 국민들의 치안과 행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가 있다. 前 전남 영암경찰서장, 도로교통안전협회 전남지부장을 역임했던 김용학(81) 어르신이 그 주인공.

그는 현재 중소 건설업체의 건설현장소장으로 일하면서도 서울 금천 재경경우회 고문을 맡아 쉬지 않고 지역사회의 치안활동을 돕고 있다. 매일 아침 인근 초등학교 순찰 및 교통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시흥1동 목련경로당 고문으로 활동하며 아파트 주변 환경봉사와 노인 및 어린이들의 안전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1951년, 경찰공무원을 시작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평생 충성하고 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60년 전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여든을 넘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는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해질 뿐이다. ‘경찰뱃지’ 대신 ‘건설현장작업복’을 입고 일하지만 ‘봉사하는 경찰’ ‘선도하는 경찰’ ‘정의를 지키는 경찰’로 살겠다는 내 소신에는 흔들림이 없다”

인터뷰 중에도 온화한 미소로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줬던 김용학 어르신. 그에게 경찰이라는 직업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1931년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나 13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나라 잃은 설움과 소년기 가난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성장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낮에는 어머니를 도와 보따리 장사를 하고, 밤에는 야학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열망 하나로 법대를 나와 행정대학원까지 졸업했다. 하지만 그가 졸업하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사업가를 꿈꾸던 내게 6·25 참전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며 “전쟁이 끝난 후 끔직한 사회 현실을 목격하고, ‘자유민주주를 수호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경찰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경찰 공무원이 된 그는 이리경찰서 형사반장 및 정보형사주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계장, 마포경찰서 수사과장, 서울시경 대공분실장, 전남도경 수사과장 등을 거쳐 40여년간 봉직하다 1992년 총경으로 퇴임했다. 남들에게 내세울 화려한 경력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했던 동료들과 지역주민들은 그를 ‘늘 미소 짓는, 사람 냄새나는 경찰관’으로 기억했다.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마을 어귀에는 김용학 어르신을 위한 송덕비가 건립돼 있을 정도다. 지난 1985년 전남 영암 경찰서장으로 재직했던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 향교, 노인회와 지역민들이 자발적 모금을 통해 새운 공덕비에는 ‘주민들의 안녕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살신성인했던 김용학 경찰서장의 큰 덕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운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공직에 몸담았던 경찰서장을 위해, 그것도 영암인이 아닌 타 지역 출신을 위해 비를 새운 일은 전국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다. 홀몸노인들을 돌보며 마을 경로잔치를 열고, 벽지학교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가출 청소년들을 끝까지 선도해 집으로 돌려보내고,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영암의 예술’이라는 책까지 발간했던 그의 순수한 열정과 온정이 지역 주민들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그는 “일제시대와 6·25전쟁, 군부정권을 거치며 경찰은 처벌과 위압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경찰기관장이라는 권위의식을 버렸다. 내 고향을 살리기 위해 돌아온 마을 청년회장처럼 주민들을 섬긴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들었던 유년기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어렵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꼭 돕고 싶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외로운 노인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게 지역과 국가를 위해 경찰공무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판단했다”고 말하며 송덕비까지 건립할 일을 한 게 없다고 오히려 부끄러워 했다.

사회정의를 위해 끈질긴 투혼을 불살랐던 그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김 어르신은 1980년대 마포경찰서 수사과정 재직 당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윤상 사건 해결의 최대 공로자였다. 그는 1년여 동안 200여개의 수사대를 이끌며 수사본부를 총지휘하며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데 큰 공로를 새웠다. 당시 그의 활동기록은 경찰수사의 백미로 손꼽히며 책자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녹조근정훈장을 받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진의 기회를 후배 경찰관들에게 돌리며 크게 화자됐다.

이 어르신은 많은 지인들의 권유로 지난 2008년 1월, 자신의 경찰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출간했다. 자서전에는 평생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경찰에 투신한 애국청년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한 번의 자서전을 더 쓰고 싶다고 말한다.

“모진 고생을 하며 국가성장을 일군 ‘소리없는 영웅’ 노인들을 위해서 남은 생을 봉사하고 싶다. 은퇴 후 취득한 토목기사 자격으로 아직까지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노인들이 이용하기 쉬운 건축구조물을 만들고 개발하는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아마도 2번째 자서전에는 이 내용이 포함될 것 같다(웃음).”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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