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에서 키운 고추, 전 세계 수출이 목표”
“키르기스스탄에서 키운 고추, 전 세계 수출이 목표”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6.02 14:41
  • 호수 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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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절반 크기 고추밭 경작… 이자원(64)씨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황무지에서 꿈을 펼쳐보는 거죠. 여러 번 실패했으니 이제 성공할 때가 됐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여의도 절반 크기의 땅에 고추농사를 짓는 이자원(64)씨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농사꾼’이라 규정한다. 지난 1996년 무역을 위해 키르기스스탄 땅을 밟았다가 드넓은 황무지를 접하고 ‘영농 본능’이 되살아났다.

이씨는 농사꾼 집안의 5대 장손으로 태어나 1973년 농대를 졸업했다. 처음에는 김해에서 농지를 임대해 대규모로 농사를 지으며 가업을 이었지만 곧 돈을 쫓아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1991년 러시아가 개방하자 가죽옷과 운동화를 수출하고 북한에도 타자기와 비닐을 판매했다. 중국 개방 초창기에는 승용차 등을 팔아 연간 4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1996년 4월 키르기스스탄을 처음 방문한 것도 무역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였다. 고려인을 상대로 간장·고추장·된장·라면과 밍크담요·형광등·가죽의류를 팔아 쏠쏠한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시장조사를 위해 석 달간 택시와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동안 눈앞에 펼쳐졌던 드넓은 땅이 이씨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1999년 새로 손댔던 자동차 수입판매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씨는 자연스럽게 농부의 길로 되돌아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시험적으로 고추농사를 지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인접국인 우즈베키스탄의 국경지대 땅을 헐값에 빌렸다. 책에는 분명히 섭씨 35도가 넘어가면 고추가 자라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으나 섭씨 50도의 불볕 더위에도 고추는 잘 자랐고, 더운 날씨 탓에 벌레도 발을 못 붙여 농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씨는 “고추를 심어보니 따로 지지대를 세우지 않아도 될 만큼 나지막하게 자라고 인건비도 싸서 안성맞춤이었다”고 말했다.

3년간 매년 500톤의 고추를 수확해 한국의 라면회사에 납품해 1톤당 1250달러씩 연간 63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3년 중국의 냉동고추가 낮은 관세로 다량 한국에 수입되면서 거래가 끊겨 여의도 면적의 절반인 380㏊에 심었던 고추 1600톤(200만달러 상당)을 몽땅 폐기처분해야 했다.

이씨는 지난해 카자흐스탄과 국경이 맞닿은 키르기스스탄 농지 300㏊에 다시 고추를 심었지만 수확기에 카자흐스탄 국경 들판에서 불이나 야생 쥐떼가 고추밭으로 몰려오는 바람에 다 된 농사를 망쳐버렸다.

악운이 거듭됐지만 이씨는 올해 또다시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키르기스스탄 남부 잘랄아밧주에 농지 130㏊를 빌려 농민들에게 고추 모종을 공급하며 위탁영농에 나섰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매일 해가 뜨면 고추밭으로 나가 농민들과 함께 땀 흘리고 해가 지면 돌아오는 고된 나날의 연속이다.

이씨는 “고추농사 15년째이지만 지금은 손에 쥔 것이 없고 7월이면 결실을 본다”며 “키르기스스탄에서 키운 고추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것이 내 인생 목표”라고 밝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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