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민 누가 알아주나”… 말벗이 필요한 어르신들
“내 고민 누가 알아주나”… 말벗이 필요한 어르신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6.03 17:34
  • 호수 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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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00세 시대’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평균수명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도시화,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노인도 늘고 있다. 현대사회의 노인들은 경제적으로는 빈곤을, 신체적으로는 질병을, 심리적으로는 고독을, 사회적으로는 역할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심각한 노인문제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도, 장소도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혼자 속으로 앓다 우울증 또는 자살충동을 느껴도 마땅한 해소방안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 노인들에겐 넘지 못할 벽이 되고 있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진 노인들의 욕구와 문제를 이해하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상담기관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노인상담제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분석했다.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 서울노인복지센터(관장 청원스님) 부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가 6월 1일 개소 2주년을 맞아 다양한 부대행사를 마련한 가운데 어르신들이 자살예방 및 우울증 예방을 위한 척도 테스트를 관심있게 읽고 있다. 사진=임근재 기자
#경기 시흥시 대야동 이모(83) 어르신은 요즘 수면제 복용을 줄이고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어르신은 자살충동 등 우울척도검사 결과 고위험군으로 판정되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지역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정신 상담을 통해 1개월 만에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김모(71·여) 어르신은 40년 전 성폭력을 당한 후 우울증과 불면증, 결혼 생활 동안 이어진 남편의 폭력, 이혼,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홀로 방안에 있을 때면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칼만 보면 죽음을 생각했다. 최근 김 어르신은 서울 어르신상담센터의 자아존중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근 복지관에 등록해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동년배 친구들을 사귀는 등 새로운 대인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말 못할 고민에 빠져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노인들이 전문상담기관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최근에는 고독, 우울, 자살충동, 노인학대, 가족갈등, 치매, 성문제, 소비자 피해, 생활고 등 심리적 갈등과 고통의 유형과 형태가 복잡하고 다양해져 상담기관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상담 원하는 어르신 해마다 큰 폭 증가 추세

어르신들이 상담소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월 1일, ‘노인전문종합상담센터’로 설립돼 2주년을 맞은 ‘서울어르신상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된 노인 상담건수는 모두 4089건이었다. 월평균 약 330여명의 어르신들이 서울어르신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서비스를 받은 셈이다.

상담내용은 법률상담이 16.8%로 가장 높았고 심리상담(10.7%), 가족문제상담(10.2%), 생활지원상담(7.4%) 등이 뒤를 이었다. 비율은 낮지만 성상담(71건), 건강상담(64건), 학대(62건) 등도 꾸준히 이어졌다. 법률상담은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지만, 보통 가족문제 또는 생활문제와 관련해 전문가와 함께 받는 상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족문제에 대한 고민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남정덕 실장은 “지난해 상담센터를 찾은 어르신들이 2009년(2979건)보다 37% 이상 늘었다”며 “어르신들의 다양한 욕구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접과 심리상담 뿐만 아니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적절한 서비스를 찾아 지원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의: 02-723-9988
이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한 경우, 집단상담 및 사례관리를 실시해 심층관리를 펼친다”며 “지난해 모두 7개의 그룹에서 354명의 어르신들이 집단상담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구 유일의 노인 상담소인 중구 노인상담소는 2007년 8월 개원 이후 지금까지 이용 어르신이 3만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에만 약 1만명의 어르신들이 상담소를 찾았다. 특히 상담소를 찾는데 부담감을 느끼는 노인을 위해 노후관리 교육과 영화 상영, 상담 교육, 취업연계 등 다양한 사업을 함께 펼쳐 호응을 얻고 있다. 문의:053-252-8422

▲“상담은 노인이 가진 문제 해결의 출발점”

대부분의 노인상담소는 심리·생활·가족·학대·사회참여·성상담 등 일반상담에서 그치지 않고, 법률·소비자피해·노후자산관리에 대한 전문가 연계상담, 다양한 주제의 집단상담 등 다양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담 후에는 의료, 경제, 정서, 주거환경, 취업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받도록 지원한다. 또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찾아가는 이동상담도 진행하며, 노후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개강좌나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등도 펼쳐 종합안내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근홍 한국노인복지학회장은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책과 서비스가 제공돼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담이 기초단계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며 “상담은 정서적 지지를 통해 직접 치료의 효과도 있지만 원인을 파악하고 심리적 안정을 주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상담의 경우 노인들이 갖는 욕구와 문제가 개인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노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이해와 수용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또, “비교적 단순한 욕구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단순상담이 효과적이지만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욕구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례관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례관리는 치료의 목적보다는 개별적이고 연속적인 상담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원하는 서비스와 기회를 제공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광진노인종합복지관 양경미 과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누군가 옆에서 도와줄 사람은 없고 사회의 지지체계도 없을 때 노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며 “힘들거나 어려울 때 찾아가서 상의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지지체계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의 노인문제는 가족, 생활지원, 성, 재무, 건강 등의 근본문제에 더해 우울과 분노, 불안 등의 정신건강까지 더해져 상담 직후 사후관리까지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며 “집중적인 관심과 문제해결을 통해 노인과 접촉기회가 많은 사회적 지지체계의 다양한 활용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인전문상담소 급증…“문을 두드리세요”

상담소를 찾는 어르신들이 급증함에 따라 최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노인전용상담소를 마련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는 지난 5월 대한노인회 영등포구지회에 노인상담센터를 열었다. 서울시 자치구 중 처음으로 운영되는 상담센터다. 센터에는 전문상담사, 자문 전문위원, 자원봉사자 등 12명의 전문 인력이 상근하고, 방문 상담 자원봉사자 195명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노인전문상담사가 홀몸노인, 경로당 및 노인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상담을 진행하는 ‘노인상담사 케어링사업’을 실시, 복지사각지대의 노인들을 찾아가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문의:02-2678-9935

경기 시흥시도 도내 처음으로 올해 1월 노인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노인종합상담실(노인자살예방센터)을 개소했다. 시흥노인종합복지관 3층에 마련된 노인종합상담실은 47명의 노인전문상담원이 상주, 포괄적인 노인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 시흥무한돌봄센터, 경기도 노인종합상담센터, 보건소 등 관련기관과 네트워크도 구성했다. 문의:031-313-7979

강원 동해시는 지난 3월초, 시립주간복지센터에 노인심리상담센터를 열었다. 노인심리상담센터는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시설로 노인종합복지관 부설로 1~2년간 시범 운영한 후 2014년 독립종합센터로 전환할 계획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지난 2009년 5월 서울·인천·청주 등 3개 지역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 전국 10곳을 증설, 현재 총 13곳에서 노인성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문의:02-2634-8212

2008년 2월 문을 연 서울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부설 한국노인인권센터는 노인에 대한 차별, 학대, 사기 등과 관련된 상담은 물론 노인관련 정보 안내, 관련기관 및 가족 상담 등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문의:02-963-0808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noinboho. or.kr)은 노인학대 신고전화(1577-1389)를 운영하며 온·오프라인을 통해 인권전문가와 학대피해상담 및 가정, 심리, 법률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전국 20개 기관에 접수된 학대 신고건수는 2009년 6150건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7000여건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3명 중 1명은 1주일에 한 번 이상 학대를 당하고, 매일 학대를 받는 노인도 조사된 인원만 76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 학대의 경우 은폐성이 많기 때문에 적극적인 신고와 상담만이 학대받는 노인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노인학대·우울증 관련 상담전화
▲생명의 전화 1588-1389 ▲노인전문보호기관 1577-1389 ▲노인자살 예방센터 3633-119 ▲블루터치 1577-0199 www.blutouch.net ▲시도지역 정신보건센터 1577-0199 ▲한국 노인의 전화 02-303-0070 ▲경기도노인종합상담센터 031-222-1360 www.noinma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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