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분에 1명 자살… 의료인 역할 강화 등 전방위 예방체계 시급
34분에 1명 자살… 의료인 역할 강화 등 전방위 예방체계 시급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7.22 17:13
  • 호수 2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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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국회의원·의사협회 ‘자살은 병인가’심포지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하루 평균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34분마다 한명 꼴이다. ‘자살 공화국’이란 비아냥거리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대한의사협회가 7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개최한‘자살은 병인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는 자살과 의료인의 역할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중앙 및 광역자살예방센터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자살시도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의료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만성질환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60대 이상 노년층의 자살이 우리나라 자살률을 높이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죽음준비 교육’을 통해 삶에 대한 겸허한 자기성찰이 가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정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중앙-광역센터 네트워크 체계 구축 절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지만 여전히 자살예방 시스템 구축이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법적·제도적 미비로 인해 현실적으로 자살예방 정책을 수행하기 어려운데다 효율적인 자살예방사업을 위한 네트워크도 마련돼 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중앙자살예방센터와 광역자살예방센터의 네트워크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자살 실태조사를 비롯해 상담, 교육, 예산 및 전문가 확보 등 전반적인 예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서울의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지난 2005년부터 국민건강증진기금 예산으로 자살예방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예산확보가 어려워 정책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대부분의 자살예방활동기관이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영세한데다 기관 간 연계체계가 없어 독립적 활동에 국한되고, 역할을 조정할 기구도 부재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규섭 회장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42명, 34분마다 한명씩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연간 1만5000여명으로 전년 대비 19.3% 증가했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이다.

하규섭 회장은 “자살로 인한 손실은 최대 3조800억원에 달하며 심리적 부담과 2차 정신질환 발생을 고려하면 매우 큰 사회적 비용”이라며 “자살률이 10%만 감소해도 약 3900억원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경찰청이 조사한 자살 원인을 살펴보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28.3%로 가장 많았고, 육체적 질병 21.9%, 경제적 문제 16.2%, 가정 문제 12.5% 등이었다. 이 가운데 정신적·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자살률은 50.2%에 달했다.

우리나라 자살률 증가는 60대 이상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60대 이상 자살은 전체 자살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며, 타 연령층의 2배 이상에 달했다.

▲자살 시도자, 재시도 가능성 높아

자살을 시도했던 대상자의 경우 다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적극적인 사후관리 및 치료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정신과 전문의)은 “어떤 형태로든 자살시도를 했던 대상자의 경우 더 주의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중증정신질환이나 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 더욱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자살시도자는 연간 약 4만명에 달하고, 자살시도자의 10%만이 응급의료센터를 방문했다.

자살자 가운데 약 10~15%는 향후 1년간 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자살시도자는 자살로 죽을 확률이 일반인보다 100배 이상 높다. 또 자살시도자의 5~10%는 수년 내에 자살로 사망한다.

이에 따라 적극적 사후 관리 및 치료시스템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특히 중증정신질환이나 조울증의 경우 더욱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명수 센터장의 주장이다. 우울증과 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또, 우울증 치료과정에 있어서 조울증과 연관해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우울증 환자의 30~40%는 10년 뒤 조울증으로 진단될 가능성이 높고, 우울증으로 진단된 환자 50%는 조울증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다는 것. 또 조울증 환자 48%가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평균 3명의 의사를 거칠 만큼 진단이 어렵다는 점도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자살은 중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수 센터장은 “알코올 중독 시 우울증 또는 조울증 증상이 악화되고, 현실 판단력이 떨어지며 충동적으로 변해 자살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실제로 응급실을 찾은 자살자 가운데 음주 관련 환자는 39.5%에 달한다”고 말했다.

▲자살예방, 의료인 역할 중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의료인의 역할도 강조됐다.

백종우 경희의대 교수(정신과·동대문구정신보건센터장)는 “많게는 자살 사망자의 70%가 사망 한 달 전 의료 기관을 방문한다”며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물론 정부의 지원과 의뢰시스템 체계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인은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지식을 비롯해 환자에게 결정적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자살예방의 핵심인력”이라고 전제한 뒤, 자살예방에서 의료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자살예방 교육 이수 △자살 위험요인 이해 △진료대기실 등 자살예방 안내물 비치 △자살 위험 평가를 통한 고위험군 조기 발견 △자살고위험군에 정신과 문의 및 연계 등 의료인을 통한 자살예방 연계 지침도 숙지할 것을 조언했다.

특히 만성신체질환을 앓고 있는 60세 이상 노년층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도 주문했다.

백 교수는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으로 노년층의 자살률 증가를 꼽았다. 이는 병고에 시달리는 노인에게 우울증이 겹쳐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백 교수는 “노인 우울증에 대한 병·의원 단위의 예방이 시급하다”며 “조기발견 프로그램과 적극적인 치료가 높은 자살률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인으로서 자살예방에 대한 한계도 적지 않다. 저수가 의료체계에서 비롯되는 시간 부족, 전문적 도움을 제공할 만한 시스템 미흡, 정신과에 대한 편견 등으로 적절한 치료가 쉽지 않다는 것.

그는 “정부가 자살예방에 사용하는 예산은 보건복지부 7억3000만원, 문화체육관광부 6억원 등에 불과한 반면 일본의 경우 100억원에 달한다”고 지적한 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시행 후 예산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죽음준비 교육’도 자살 예방책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대안으로 ‘죽음준비 교육’이 제기됐다.

각당복지재단 정상기 강사는 한림대 오진탁 교수의 말을 빌려 “‘자살은 죽음을 몰라서 한다’고 한다”며 “즉, 자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대책은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도록 죽음과 삶의 참된 의미를 교육하는 것”이라며 죽음준비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죽음준비 교육은 삶과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 즉, 좋은 죽음을 지향하는 삶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라고 정 강사는 정의했다.

이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죽음관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언젠가 다가 올 ‘나의 죽음’을 인식하면서 어떻게 살아서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죽음 앞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 마지막 순간을 잘 정리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교육이 바로 죽음교육”이라고 말했다.

정 강사는 죽음교육은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를 비롯해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 관련 공무원, 변호사, 종교인, 상담가, 소방관, 경찰 등 임종과 관련된 각 분야 종사자들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초·중·고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죽음교육도 강조했다. 이는 TV나 인터넷 게임 등 왜곡된 죽음의 이미지에 사로 잡혀있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생사관 또는 인생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정상기 강사는 “자살방지를 위한 죽음교육이 학교나 사회교육 체제에도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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