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진로교육에 전문직 퇴직자가 제격이죠”
“청소년 진로교육에 전문직 퇴직자가 제격이죠”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8.25 15:53
  • 호수 2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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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조종사 전문 직업멘토 한형택(65)씨

“파일럿(비행기 조종사)이 되려면 무조건 공군사관학교를 나와야 하는 건 아니에요. 대학의 항공우주공학과를 선택하거나 민간 교육기관, 공군에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조종사가 되기 위해선 과학과 우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당 과목의 성적이 매우 중요해요. 또, 신체검사가 까다롭기 때문에 체력관리에도 신경써야 합니다.”

파일럿을 꿈꾸는 광운중학교 1학년 김모(14)군에게 최근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생겼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만난 30년 경력의 은퇴 조종사 한형택(65) 직업 멘토(조언자)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이미 걸어 온 조언자와의 만남은 김 군에게 큰 설렘과 기쁨이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마음껏 물을 수 있었고, 어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김 군에게 파일럿의 꿈을 심어준 전문 직업멘토 한형택 씨. 그는 비행경력만 30년이 넘는 베테랑 조종사였다. 공군장교로 임관해 20년, 아시아나항공 점보기 수석기장으로 20년을 일했다. 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전용기를 운전할 정도로 자타가 인정하는 실력파다. 지난 2007년 은퇴 후에는 후배 양성을 위해 조종사 훈련팀장으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가는 세월을 잡지는 못했다. 화려했던 그의 파일럿 인생도 65세 정년이라는 벽에 막혀 안타깝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날개는 나이라는 멍에가 메워졌어도 쉽게 꺾이지 않았다. 평생을 쌓아 온 자신의 노하우와 경륜을 사회에 돌릴 수 있는 자원봉사를 통해 '제2의 비행'을 시작한 것이다.

한씨는 “한국고령사회비전연합회가 실시하는 전문퇴직자 멘토양성 교육생 모집광고를 보고 눈이 번쩍 띄었다”며 “아이들에게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직업 체험담을 들려주며 파일럿을 꿈꿀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고 직업멘토 참여 동기를 밝혔다. 이어 “조언자들의 말 한마디에 학생들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에 교안을 만들어 밤새 모의연습을 하고 있다”며 “할아버지들의 수업은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현역 때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평생 비행기만 조정했던 그가 학교강단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올해부터 교육과학기술부가 실시하는 ‘창의적 체험활동’ 지침 덕분이다. 이 지침에 따라 각 학교는 학생들의 진로활동 탐색과 관련된 내용을 수업에 반영해야 하고, 이를 수년 전부터 준비해 온 한국고령사회비전연합회의 청소년 직업멘토 양성사업이 시의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씨는 한국고령사회비전연합회가 마련한 ‘청소년 직업멘토 교육’을 통해 청소년심리학, 상담론, 자원봉사론, 멘토링, 강연·교수법 등의 전문교육을 받았다. 교육 수료 직후 그는 광운중학교, 당곡고등학교 등 인근 중고등학교 6곳에서 수업에 참여하며 직업 조언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꿈을 쫓지 못하고 입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아이들의 잃어버린 꿈을 가슴 깊이 심어주는 조언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직업 조언자는 진로설계는 물론 전공선택, 상담 및 직업체험까지 담당하는 종합 상담자”라며 “10년 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 꿈에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고 싶다”는 강한 포부도 나타냈다.

제2의 비행을 시작한 한씨의 활동범위는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직업 조언자 외에도 고아, 새터민, 이주 외국인들을 위한 직업교육 및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PC정비사 2급, 컴퓨터활용능력 2급, 정보기술자격증(한글, 엑셀, 한글엑세스, 파워포인트, 인터넷 A등급)을 취득해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의 컴퓨터 강사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그는 “노인은 다가오는 고령사회의 중요한 인적자원이다. 수 십년간 그들이 쌓은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시급하다. 일할 수 있고, 충분한 능력이 있는 훌륭한 자원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고령사회비전연합회에는 조종사를 담당하는 한형택씨 외에도 특별한 이력의 전문 조언자들이 많다. 준장 출신의 국방대 교수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 한국관광공사 해외 지사장, 기업 부회장 출신까지 해당 분야의 전문가 및 권위자들이 즐비하다. 모두 28개 업종, 70여명의 전문 직업 조언자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가슴에 꿈의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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