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현대판 고려장
[금요칼럼]현대판 고려장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9.14 16:48
  • 호수 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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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

지난 6월말 일본 전역에 ‘덴데라’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자식이 일흔이 넘은 어머니를 지게에 얹어지고 눈 쌓인 고산 지대에 버리는 한국판 고려장 같은 얘기로 시작한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뿐인 고산지대에 버려진 일흔이 넘은 50명의 여성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기 위해 직접 집을 짓고 ‘덴데라’라는 이름의 마을을 이룬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 가운데 혹자는 '남은 인생을 그냥 마음 편히 살다 죽겠다'고 하지만 대부분 자신을 버린 가족과 마을주민들에 대해 복수를 시작한다. 유리코 아사오카, 미츠코 바이소 등 나이로 잊혀져 가던 젊은 시절 유명 일본 여배우들이 모처럼 때를 만나 열연한다.

가까운 일본이나 한국사회가 똑같이 겪고 있는 '사회적 질병'이 있다면 '노령화'(Ageing)라는, 급증하는 노년층 문제다. 인구의 노령화는 지구상 인간이 생긴 이래 지속돼 온 문제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노년층으로 덮힌 인구적 문제를 겪어보질 못했다.
 
노령화 관련 연구가 활발해지고 각종 정부기구가 출범했다. 이에 연계된 수백가지에 이르는 복지정책이 중앙정부, 지방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연령차별금지법, 주택연금제도, 장기요양제도, 기초노령연금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지난 주말 KBS의 열린토론에 출연해 정부정책을 대변하는 국책기관의 연구원과 설전을 벌여야 했다. 스웨덴, 노르웨이를 얼마 전에 다녀왔다는 그분은 그 나라 예를 들면서 65세 이상 빈곤노년층이 받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의 축소 안에 대해 당연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알레르기 반응을 뜬금없이 기초노령연금의 축소에 연계시키고 있었다. 기초노령연금 축소 계획은 지난해 봄 세상에 알려졌지만 복지부는 계속 부인해 왔다.

정치권의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 복지든 복지정책은 우선 취약계층, 빈곤노년층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구한 데다 그나마 온전치 못하게 운영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을 볼모로 잡지 말아야 한다.

44개월째 적용하지 않고 있는 노인단독가구 1만3000원·부부가구 2만1000원의 인상을 당장 시행하고, 그 동안 밀린 인상분 노인단독가구 32만원·부부가구 52만원도 일시에 지급해야 할 것이다. 복지 과잉을 얘기하기엔 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 미리 지레 겁먹고 어려운 취약계층과 노년층을 외면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 복지비 지출은 GDP 대비 8%에 못 미친다. 국가예산 대비 26.4%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4개 나라 중 최하위다. 더구나 연금 급여 지출은 GDP 1.7%로 34개국 회원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전남과 경북의 노년층 80% 이상이 기초노령연금 수급자인데, 용돈도 안 되는 그 금액이 이들이 한 달에 한번 구경하는 지폐다. 스웨덴, 노르웨이가 복지로 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 미국의 경제난이 복지로 인한 것인가.

그러나 복지정책은 어느 나라 어떤 사회든지, 또 부자든 가난뱅이든 누구에게나 달콤한 유혹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국가가 거저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populism)은 이제 한국판 '표퓰리즘'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이 앞서고 한나라당이 뒤따르는 형국이다.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국민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마음을 끌 수 있는 공약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복지비용의 부담은 바로 국민 자신이라는 점이다. 즉 너, 나 그리고 이웃들이 낸 세금에 의해 국가경영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절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복지국가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며 후세대들에 ‘국가 부도’라는 짐을 남겨주게 된다.

"복지에는 유턴(U-turn)이 없다"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의 얘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번 주어져 길들여진 복지의 유혹은 좀처럼 다시 거둬들이기 어렵고, 뒤늦게 개혁을 시도하면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가 뭐래도 노령화 현상과 빈곤 노년층이다. 하루 1300여명이 65세로 진입하고, 그 숫자의 절반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복지 이전의 문제다. 노령화와 아직 멀기만 한 복지 손길, 지레 겁먹고 막지 말아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기초노령연금 축소 시도는 현대판 고려장이다. 기초노령연금은 정치권의 복지 포플리즘과 전연 무관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으로 제정된 기존사안이다. 현재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약속한 20만~30만원 인상안을 지금부터라도 지켜야 한다.

한국판 50인의 여전사 ‘덴데라’가 태백산맥 어딘가에서 생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권은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적어도 미래의 한국 노년층은 더욱 똑똑하고 목소리를 낼 줄 알며 그들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 몸으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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