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책 읽을 때 돋보기 필요없어요”
“이젠 책 읽을 때 돋보기 필요없어요”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12.05 17:29
  • 호수 29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부·도서관협회, 글씨 큰 대활자본 도서 제작 보급

“따다다다다.” 김현순 어르신이 입으로 총소리를 내자 곧 바로 최봉란 어르신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비! 대비하세요!”라고 외친다. 아기 역을 맡은 조영자 어르신이 “응애 응애 응애”하고 울음소리를 내자 한분례 어르신이 “우지마라. 우지마라” 구슬픈 목소리로 아기를 달랜다. “윙~” “두두두 쾅!” 비행기와 폭탄소리가 요란하게 뒤엉킨다. 음향효과를 돋보이기 위해 준비된 도구들과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더해져 한편의 연극이 만들어졌다.

11월 29일 오전 서울시립송파도서관 대강당에서는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각색한 ‘라디오 드라마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가 어르신들의 독서 장려를 위해 제작된 대활자본(큰 글자) 도서 가운데 하나다.

이날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대활자본을 이용한 노인 독서 활성화 사업’이 어르신들에게 처음 선보인 날이기도 하다.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는 독서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글자 크기가 큰 대활자본 21종 6600책을 제작, 전국 150개 도서관에 보급했다. 기존 도서의 글자 크기가 9~10포인트라면 대활자본은 16~20포인트까지 커졌다. 기존 도서보다 2배 가량 크게 제작됐다. 글자 크기가 커지다보니 책의 판형도 늘어나 가장 큰 사이즈는 A4용지만하다. 사진=임근재 기자

대활자본의 도서는 말 그대로 글자 크기가 기존의 크기보다 크게 제작된 책이다. 기존 도서의 글자 크기가 9~10포인트라면 대활자본은 16~20포인트까지 커졌다. 글씨 크기가 기존 도서보다 2배 가량 크다. 글자가 커지다보니 책의 판형도 커져 가장 큰 사이즈는 A4용지만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어르신은 모두 40여명. 대부분이 65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됐다. 어르신들은 대활자본을 읽고, 7~8명씩 4개의 그룹으로 나눠 각 상황에 맞춰 대본을 작성하고 직접 라디오 드라마에도 도전했다. 다들 처음 접해보는 활동이지만 어느 때 보다 적극적이다. 책을 읽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 내용을 응용해 독서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자는 취지다.

종이를 말아 만든 확성기, 쌀이 든 페트병, 손자손녀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등 음향효과를 내는 소품을 활용하지만 주연은 단연 어르신들의 목소리다.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동화가있는집연구소’ 이송은 소장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최수진 강사,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정지연 연구원, 신은옥·한선예 동화연구가, 박순하 노인복지사 등 전문강사들도 투입됐다.

이날 행사는 대활자본 도서 활성화를 위해 ‘소설로 라디오 드라마 만들기’ 외에도 시로 음반 만들기, 치매예방 책 만들기 등으로 꾸며졌다.

정정자(70) 어르신은 “글자가 작은 책은 돋보기가 없으면 보기 어려워 불편한 적이 많았는데 큰 글자 책을 보니 반가울 따름”이라며 “앞으로 노인들을 위한 큰 글자 책이 많이 제작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분례(72) 어르신도 “큰 글자로 책을 보니 한결 쉽게 읽혀 좋다”며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는 독서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2년 연속 시력이 좋지 않은 ‘어르신을 위한 대활자본 도서 보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글자 크기가 큰 대활자본 21종 6600책을 제작, 전국 150개 도서관에 보급했다.

대활자본 도서는 지난 3월부터 공공도서관과 대형서점에서 서면을 통한 선호도 조사를 비롯해 노인복지시설에서 2차 선호도 조사를 각각 실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제작됐다.

이들 도서는 공모에 응한 출판사가 발간한 책 가운데 선정했다. 선정 도서는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웅진지식하우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어르신사랑연구모임/궁리)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오시마 기요시/전나무숲)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열림원)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두란노)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오래된미래) 등 현대문학을 비롯해 건강, 고전, 역사, 취미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됐다.

한국도서관협회 관계자는 “대활자본 도서가 제작되기까지 저작권 문제 등 어려움도 많았다”며 “앞으로 큰 글자 도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서관 비치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경로당이나 복지관 등을 찾아가 토론 등을 통해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