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는 삶, 행복한 삶 ②
기부하는 삶, 행복한 삶 ②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12.09 12:36
  • 호수 2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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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르신들은 일·자원봉사와 더불어 기부를 통해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나눔을 통해 삶의 질과 만족감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금전 및 물질적 기부와 더불어 최근에는 자신이 가진 소질을 남을 위해 사용하는‘재능기부’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사회에는 어르신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는 기부대상이 너무도 많다. 과거‘부양 받는 대상’에서 탈피, 앞으로‘사회를 책임지는 당당한 노인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남과 나누며 사는 삶을 생각해 볼만하다. 백세시대은 연말을 맞아 전국 어르신들의 기부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함께 동참하자는 취지로 ‘기부하는 삶, 행복한 삶’을 주제로 3회에 걸쳐 [연말기획]을 마련한다. 이번 호에는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기부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통해 나누는 삶의 즐거움을 엿본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현죽재단 서원석(85) 이사장

효행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형편이 어려운 이웃 등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고 있는 기업가가 있다. 대한노인회 중앙회 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현죽재단 서원석(85) 이사장이다.
서원석 이사장은 성원제강그룹을 이끌며 50여년 동안 국내 철강산업을 일군 기업인이기도 하지만 1999년 현죽재단을 설립,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는 2006년부터 매년 전국에서 효행자를 발굴해 ‘현죽효행상’을 시상하고 있다. 해마다 수천만원의 사재를 털어 수상자 전원에게 상금을 전달하며 경로효친사상과 효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어버이 날에는 효자 효녀를 선발해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소외된 어르신들의 쉼터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몇 해 전 고향 전북 김제에 세운 경로당은 지역 어르신 500여명의 보금자리로 이용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자택 인근에도 ‘인왕산정’ 경로당을 건립, 수시로 경로·생일잔치를 열고 있다. 경로잔치에는 매년 종로지역 어르신 1200여명이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 20여 년 전부터 눈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의 개안수술도 지원해 지금까지 1000여명이 눈을 떴다. 이처럼 다양한 사회사업과 기부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5년 대통령표창, 2008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내미는 손으로 인해 밝게 웃고, 한 사람 얼굴에 근심 한 번 걷어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짜릿한 일이 어디 있겠냐”며 “기업인으로서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마땅한 도리”라고 말한다.
서 이사장은 근검절약하는 생활습관이 몸에 밴 기업인으로도 유명하다. 불과 3년 전까지 성원그룹의 직원들이 낡은 철제 책상을 썼을 정도다. 혼자 있을 때는 자장면이나 라면을 먹는 등 일체의 낭비를 삼가면서 회사의 수익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고 있다.
서 이사장은 “돈 많은 기업인으로 기억되기보다 검소한 사회사업가로 기억되길 바란다”며“사회의 어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존중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륜과 지혜까지도 함께 나누는 노인기부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에 13년 간 4만벌 옷 기부
의류 노점상 임문식(70) 어르신

“고생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젊은 시절이 생각납니다. 제가 드리는 옷이 유명 브랜드거나 비싼 옷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경기 안성 석정동 중앙시장 인근에서 의류 노점상을 하는 임문식(70) 어르신은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 달라’며 지난 7월 28일, 안성시청에 의류 4000여벌(도매가 1500만원 상당)을 전달했다.
그는 시장 도로 옆 작은 천막 아래에서 노점을 운영한다. 1990년부터 경기도 안성의 석정동 중앙시장에서 옷 장사를 해오고 있다. 그의 의류 기부 활동은 13년 전부터 시작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환경미화원의 허름한 옷차림을 안타깝게 생각해 옷을 선물한 게 시작이었다.
임 어르신은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늘 가족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며 “처음 환경미화원에게 옷을 선물하기 시작한 것도 고생스러웠던 젊은 시절이 떠올라서였다”고 말했다.
나눌수록 기쁨은 커진다고 했던가. 우연히 환경미화원과 인연을 맺은 임 어르신의 기부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 현재는 시청 소속 환경미화원 130여 명에게 매년 1~2차례에 옷을 선물하고 있다.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는 숨은 일꾼들에게 주민들을 대표해서 고마움을 표현했던 작은 정성이 큰 기부로 연결된 것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나눔을 실천하던 그의 사랑은 2006년부터 안성지역 불우이웃에게까지 번졌다. 벌써 6년째 3000여점의 의류를 매년 안성시에 기탁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선물한 옷이 3만점이 넘는다. 넉넉한 살림이 아니기에 그의 나눔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평범한 의류노점상의 기부 요령은 간단하다. 매일 장사를 하면서 옷 1~2벌을 따로 빼놓았다가 3000~4000점이 모이면 시에 기탁하고 있다. 당장 팔아도 손색이 없는 제철 옷, 그 중에서도 좋은 옷들이 매일 차곡차곡 쌓이는 셈이다. 청바지, 티셔츠, 조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임 어르신은 “기부는 형편이 넉넉해서 하는 게 아니다. 충분히 쓰고 남은 것을 적선하듯 주는 것도 아니다. 현재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그 일부를 보다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눠 쓰는 것이다. 난 옷 장사를 하기 때문에 옷을 기부할 뿐이다. 창고에 기부할 옷들이 쌓일 때마다 보람과 기쁨도 마음에 함께 쌓인다”고 나눔의 의미를 설명했다.

 

노인들 손수 도서관카페 건립
추진위원장 임인택(69) 대표

노인복지관 노인들이 십시일반 성금과 재능을 기부해 작은 도서관을 짓고 카페까지 만들어 화제다.
광주 광산구 노인복지관(관장 강위원)의 ‘작은 도서관 더불어 락(樂) 카페’는 일종의 ‘북 카페’다. 하지만 일반 북 카페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300여명의 복지관 회원들이 도서관건립 추진위원으로 가입해 자발적으로 성금도 모으고, 자재구입, 디자인, 실내 인터리어 등 모든 공사에 직접 참여했다. 도서관에 구비된 3000여권의 책과 작은 소품까지 어르신들이 십시일반 모은 것들이다.
카페 건립추진위원회 임인택(69) 공동대표는 “설계부터 자재선택, 전기·바닥·배선 공사, 책 기부까지 도서관 곳곳에 노인들의 땀과 수고가 묻어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라며 “어르신들의 경륜과 재능을 살려 설립된 전국 최초의 ‘기부카페’이기에 자부심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락 카페란 이름처럼 단순히 노인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함께 교류하는 장소, 1·3세대가 함께 소통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카페의 운영 및 관리도 모두 복지관 어르신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락 카페’는 임인택 대표를 비롯한 20명의 노인들의 작은 의지로 시작됐다. 광산구 노인복지관에 새로 취임한 강위원(40) 관장이 능동·참여형 복지를 추구하며 ‘노인복지관’ 간판을 ‘더불어 樂’으로 변경해 힘을 실었다. 이에 보답하듯 300여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재능’과 ‘노동’을 봉사로 기부해 도서관 건립에 동참했다. 카페 설립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비롯해 일일호프와 바자회 등을 열어 5개월간 3500여만원의 기금을 마련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예정 공사비 1억2000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때부터 노인회원들의 재능기부가 빛났다. 인테리어 시공 실력과 건축 경험을 갖고 있는 회원들이 먼저 나섰다. 직접 설계하고 자재를 사러 다녔다. 그러자 다른 회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나와 벽돌을 나르고, 자재를 옮겼다. 쓰레기 청소 및 주변정리 등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복지관 1층에 125㎡ 규모의 카페가 최근 완공돼 오는 12월 19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카페 안에는 3000여권의 도서를 진열할 수 있는 책장과 테이블이 갖춰져 있다. 거동이 불편한 회원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책장은 바퀴를 달아 이동이 자유롭게 만들었다. 특별한 날에는 회원들의 장기가 펼쳐질 공연장도 마련됐다. 카페의 음료를 담당할 바리스타도 노인 회원 중에서 선발할 계획이다.

 


기초수급비 아낀 전재산 기부
시각장애 이덕순(83) 어르신

“수십 년 동안 정부가 준 생활보조금을 아껴 모은 돈인데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주시구랴.”
두 눈이 보이지 않고 귀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는 83세 시각장애 어르신이 국가지원금을 아껴 모은 전 재산을 불우한 이웃에게 전달해 큰 감동을 줬다. 충남 천안시 직산읍에서 홀로 사는 이덕순(83) 어르신은 지난 7월 5일 자신의 전 재산인 1000만원을 천안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돈 1000만원이 우스운 세상이 됐지만 이 어르신에게 이는 큰 돈이다. 1급 시각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국가 지원금은 월 40만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두 눈과 귀마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마땅한 수입도 없는 처지다. 결국 40만원이 그의 수입 전부다. 때문에 이 어르신이 기탁금 1000만원을 모으는 데 꼬박 40년이 시간이 걸렸다. 지금이야 보조금이 월 40만원으로 많이 인상됐지만 초기에는 몇 만원에 불과했다.
젊은 시절 이 어르신은 토목업에 종사하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30대 초반.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을 잃고 말았다. 이후 제대로 된 안과 치료를 받지 못해 35세 때 나머지 눈도 시력을 잃게 됐다.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게 되자 그를 받아주는 직장이 아무데도 없었다. 그는 두 눈과 함께 가난과 사회적 편견까지 얻게 됐다. 가정 형편은 점점 기울었고, 2008년엔 유일한 혈육인 아들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든을 넘겨 홀로 지내는 그를 찾는 이는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찾아오는 천안노인종합복지관 자원봉사자들이 유일한 손님이다. 최근에는 귀에도 문제가 생겨 큰소리만 겨우 알아들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하지만 그는 난방비를 아끼고, 조금 덜 먹으면서도 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지원금을 저축했다. 이 어르신은 “정부 생활보조금에 의지해서 홀로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며 “더군다나 몇 년 전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만약 자원봉사자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며 “내게 용기와 힘을 줬던 이들처럼 생을 마감하기 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기부를 결정했다”고 기부 동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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