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 뒤틀린 사회구조 감내한 채 생존 위해 신음
조손가정, 뒤틀린 사회구조 감내한 채 생존 위해 신음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02.03 15:03
  • 호수 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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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는 고사 진학도 포기… 학습·가사와 함께 심리지원 병행해야
지난 1995년 3만5194가구였던 조손(祖孫)가정이 십여년 동안 두 배 가량 늘었다. 2010년 기준 이들 조손가정은 6만9175가구로 집계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는 출산율 2명 미만의 저출산 및 고령화가 지속돼 노인가구의 증가가 예상되는 데다, 핵가족화 및 개인주의 확산 등과 맞물려 급증하는 이혼율로 인해 조손가정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 조손가정은 경제 능력이 현저히 낮은 65세 이상 조부모와 만 18세 이하의 손자손녀가 가족을 이루면서 75% 가량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조손가정, 국가와 사회의 손길이 절실하다. 조손가정의 현실과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책을 살펴봤다.

▲ 맞벌이 가정이 늘고, 고령화와 함께 핵가족화가 급진전되면서 조손가정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2009년 8월 경기 이천 부래미 마을에서 마련한 ‘손자·손녀와 함께 1박2일’ 캠프에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참가한 어린이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힘찬 새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백세시대DB
조손가정이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는 손자손녀 양육 및 학습지도와 이로 인한 경제적 빈곤이다. 특히 조부모는 손자손녀 양육으로 가난과 질병이 가중되고 있고, 손자손녀는 생활고로 학업을 부차적인 문제로 여기면서 가난을 대물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조손 가족의 지원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 정부 차원에서 ‘조손가족 통합지원 프로그램’을 마련, 지난해 인천, 부산, 충남, 전북 4개 시도 중심의 시범사업에 이어 올해부터는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할 예정이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현재 조손가정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성가족부가 전체 5만1800여 조손 가구 중 1만275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손가족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조손 가족의 최대 현안은 ‘빈곤’이다. 이들 가족의 월평균 소득은 59만7000원으로 2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인 85만8747원에도 못 미치고 있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속한다.

▲생활고에 손자손녀 진학 의지도 꺾여
조손가정의 생활비는 평균 63만5000원으로, 소득보다 약 3만8000원 가량 지출이 더 많았다. 이로 인해 매달 적자가 누적돼 가계는 악화일로다.

이들 가정의 80% 가량이 조부모 중 조모나 조부 등 한 부모로 구성돼 있는 데다, 조부모의 평균 연령은 72세의 고령으로 생계비를 정부 지원에 의존 중인 조손가정 비율이 절반 가량(46.7%)이었다. 이외 가구도 단순노무직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친부모들도 단순 노무직 등에 종사하는 등 생활고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이들로부터 생활비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생활 자체가 버겁다보니 ‘손자손녀의 학업’ 문제도 이들 조손가정에게는 큰 짐이 되고 있다.

현재 손자손녀의 60% 이상이 가사나 동생 돌보기,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데 이들의 희망하는 외부 지원도 생활비나 주택 마련 등에 집중되는 등 가정의 기본적인 생활 기반조차 불안정한 상태다.

이로 인해 중·고등학생인 경우 40% 가량이 진학 대신 취업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중학생은 진학 의지가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학업 부족으로 빈곤을 대물림하거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릴 것으로 보여 이에 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고등학생은 아예 원하는 외부 지원으로 ‘취업 관련 지원’이라고 밝혀, 진학보다는 취업을 선택한 후 이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유대관계 두터워… 심리지원 병행해야
다행히 조손가정의 손자손녀와 조부모간 유대관계가 끈끈해 정책적으로 가족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재정적 지원 등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들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가족의 유대관계는 두터운 편으로 가족해체나 인위적인 복지시설은 문제 해결에 별반 도움이 안 된다”며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지원 방향을 잡고, 비용 등 물질적 지원과 함께 학습지도 등의 서비스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손자손녀 교육 등 복지 서비스 강화를 중심으로 지원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부산과 인천, 충남, 전북 등 4개 시도 4개 가족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조손가족 통합지원 프로그램’의 시범 운영을 마쳤다. 올해는 16개 시도 31개 기관으로 확대 시행한다. 하지만 아직은 출발 단계로, 현재 조손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사업은 배움지도사 파견을 통한 손자손녀 학습지원 및 정서지원과 조부모 생활가사지원 등 직접적인 생활지원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실시 결과 호응도나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파악하면서도 지원 서비스 시행예산 부족을 걸림돌로 꼽고 있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실시한 인천시 관계자는 “사업 시행 과정 중 참석했던 정부 회의에서 조손 가족의 경제 지원과 관련, 각 시도별 실무진 차원에서는 지원액을 상향 조정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며 “아직은 사업 초기 단계로 자리를 잡아가며 점차 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전라북도도 “월동비나 수학여행비, 교복비 등 현금 지원에 그쳤던 지금까지의 지원과 비교해 도내 26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주1회 2시간 지도교사가 직접 나가 손자손녀 학습을 지원하고 가사돌봄, 문화프로그램 서비스 등 5개 사업을 실시하면서 호응이 컸다”며 “지난해는 1억6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됐는데 내용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대상 확대에 제약이 따르는 게 아쉽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각 시도 지자체도 정부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해 별도 자체 지원사업 등으로 지난해 상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지원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는 지난 1월 29일 저소득 한부모가족 중 조손가정 또는 25세 이상 미혼 한부모가족에 5세 이하 아동 양육비로 1인당 5만원을 추가로 지급키로 했다.

부산시의 경우 지난해 개정된 ‘한부모가족지원법’에 근거해 한부모 및 조손 가족 등 지원에 있어 올해부터는 조손가정 5세 이하 자녀에 대해 1인당 월 5만원의 양육비 등을 추가로 지원키로 했다고 1월 30일 밝혔다.

제주도도 1월 25일, 올해부터 적용되는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 확대방침을 밝혔다.

한부모가족 보호대상자에게 지원하던 기존의 비용 이외에 추가아동양육비, 중고등학생 학용품비 등을 확대 지원키로 했고, 저소득 조손가정 등의 5세 이하 아동에게는 월 5만원을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다. 이들 가정의 중학생 및 고등학생에게는 학용품비로 연 5만원을 더 지원한다.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에 입소한 저소득 조손가족 등에는 생활보조금으로 가구당 월 5만원을 지원한다.

▲“‘조손가족지원법’ 등 지원근거 시급”
지원책이 속속 발표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자체별로 조손가정 실태 파악조차 천차만별이어서 아직까지는 ‘탁상행정’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조손가정 지원이 한부모가족지원법 내에서 이뤄지는 것도 한계로 언급된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조손가족 특성에 맞는 ‘조손가족지원법’이 제도적인 차원에서 구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 한부모 가족은 부모의 취업이나 재혼 등으로 그나마 경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조손가정은 손자손녀가 성인으로 부양 능력을 갖출 때까지 개선을 바라기 힘들다는 점에서 동일한 법을 적용해서는 적절한 지원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조손가정에 대해 현금 및 서비스 지원 등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정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도 심리적 차원의 지원에 적극 나설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물질적인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되고 조부모와 손자손녀의 입장에서 심리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돌보는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며 “정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종교기관 등에서도 힘을 모아 양육 능력에 비해 양육 책임을 큰 부담으로 감당해야 하는 조부모에게는 용기와 위로를 주는 영적인 케어, 손자손녀에게는 고른 식단 등 영양 돌봄과 함께 정서적인 지원, 진로탐색 등 다차원적인 케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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