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봉사·이야기로 세상과 ‘소통’… 우리사회 책임지는 어르신들
음악·봉사·이야기로 세상과 ‘소통’… 우리사회 책임지는 어르신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02.17 16:08
  • 호수 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연령, 계층, 지역을 막론하고 어디를 가나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다. 오죽하면 ‘소통이 만사형통의 지름길’이란 말까지 등장했을까. 사회적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갈등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는 풀이다. 사회적 소통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어르신들만큼 적임자는 없다. 사회의 웃어른으로서,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쌓은‘인생 선배’로서 어르신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인생 100세’시대를 준비하며 음악과 봉사활동, 이야기를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며 우리사회를 책임지는‘아름다운’어르신들을 만나본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홀몸노인 복지시설 어르신, 미혼모시설 육아 봉사
“예쁜 우리 손녀, 할머니 왔다. 그새 더 많이 컸네(웃음).”
김호영(가명·81) 어르신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한 걸음에 달려가 일주일 만에 만난 손녀를 보듬어 안는다. 입가엔 그윽한 미소가 가득하다. 친손녀는 아니지만 사랑이 그리운 이들이 가슴으로 맺은 가족의 인연이라 더욱 애틋하다.

김 어르신은 “처음 봤을 땐 갓난아기였는데, 혼자 몸을 뒤집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며 “날 알아보고 웃어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 어르신은 경기 성남시에 있는 홀몸노인 주거복지주택 ‘아리움’(아름다운 우리들의 보금자리)에 거주하는 어르신이다. 그가 미혼모 시설 ‘새롱이 새남이 집’을 찾아 아기들을 돌보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7월. 홀로 외롭게 지내는 어르신들을 위로할 방도를 찾던 아리움 시설장이 같은 고민을 하던 ‘새롱이 새남이 집’ 원장을 만나 “서로 가족을 만들어주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다. 외로움이 맺어준 새로운 가족인 셈이다.

현재 미혼모 아기 돌보기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모두 4명. 이들은 ‘손주’들과 만나는 매주 화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덕분에 20~30대 미혼모들은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을 덜게 됐고, 어르신들은 새로 생긴 ‘손주’ 덕에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반년 이상 왕래를 하면서 이들은 ‘진짜’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지난 설에는 젊은 엄마들이 세배를 하러 할머니들을 찾아가 떡국을 대접했다. 할머니들도 손수 뜨개질한 수세미나 양말 등을 선물했다. ‘새롱이 새남이 집’ 이선자 원장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위축돼 있던 미혼모들이 어르신들을 만나 큰 위안과 희망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어르신들에게도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서로 ‘손주’ 이름을 따 ‘○○ 할머니’라고 부르고, 함께 밥 먹을 때도 서로 ‘손주’ 이야기로 대화 꽃이 활짝 핀다. ‘아리움’을 운영하는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의 조 레오카디아 수녀는 “가슴에 한과 상처가 많은 분들인데, 아기들을 돌보면서 그런 아픔을 치유하고 마음의 여유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여성 음악 봉사단…‘광음크로마하프연주단’
“크로마하프는 여성스러운 악기에요. 크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아서 연세 드신 분들도 배우기 좋지요. 특히 아기를 안은 자세로 악기를 잡고 심장 가까이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마음을 순화시키는데 그만입니다.”

요양원, 복지관 및 노인대학, 교도소 등을 찾아다니며 천상의 멜로디를 선물하는 ‘음악치료사’들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 돕고, 위로하기 위해 결성된 ‘광음 크로마하프 연주단’이다.

광음 크로마하프 연주단은 2008년 11월 이춘실(72) 단장이 크로마하프를 좋아하는 주부들을 모아 만든 음악봉사단이다. 현재 9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평균연령은 65세다. 특히 단원들은 하프 경력이 5년 이상 된 베테랑 연주자들로 아쟁, 클라리넷, 오카리나 등도 다루는 다재다능한 실력파들이다.

그들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대구의료원 호스피스병동과 정신과병동을 비롯해 시온요양원, 노인복지관, 교회 내 노인대학,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어르신들과 환자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음악선물을 전하고 있다.

하프음악단이라고 조용한 분위기를 연상했다면 큰 착오다. 한국웃음문화협회 부회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이춘실 단장의 웃음치료와 레크리에이션으로 흥겨운 웃음꽃이 만발한다. 게다가 천상의 악기 하프로 대중음악인 ‘낭랑18세’ ‘찔레꽃’ 등을 연주해 관객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고 있다. 요양원이나 복지관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함께 손뼉도 치고 노래도 따라 부른다.

특히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이 연주가 끝난 후 온 힘을 다해 박수로 화답할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감동 때문에 광음 크로마하프 연주단은 대구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최근에는 가족들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을 위해 광음가족 음악회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하프, 색소폰, 오카리나, 드럼 등 다양한 악기로 음악잔치를 열어 소통하는 자리인 셈이다. 음악이 주는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랑을 전하는 연주단의 ‘음악치료’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손자손녀에게 情 통한 인성교육…‘이야기 할머니’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할머니가 수탉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홀로 외로이 살고 있던 할머니는 수탉을 아주 소중하게 키웠고, 수탉도 할머니를 아주 좋아했답니다.”

고영희(65)씨가 ‘할머니와 수탉’이란 전래동화를 들려주자 유치원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행여나 이야기를 놓칠까 할머니 곁에 바짝 붙어 앉는다. 고씨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때론 방정맞은 수탉의 울음소리로, 때론 욕심쟁이 부자아저씨의 심술궂은 목소리로 변한다. 아이들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다.

고씨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한 여성 어르신들이 유아교육기관을 방문해 교훈이 되는 옛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사업이다. 과거 조부모들이 손자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통해 인성교육을 시켰던 전통을 되살려 조손세대 간 소통과 유아인성을 키우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2009년부터 대구·경북권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2010년 영남과 서울지역으로 영역을 넓혔다. 지난해 제주도를 뺀 전국에서 300명의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가 선발됐다. 올해부터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600명을 선발한다.

‘이야기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통해 어르신들과 유치원 아이들이 대화하고 소통한다. 아름다운 옛 풍속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야기 할머니들은 사라져가는 구전문학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보람과 긍지로 봉사하고 있다. 특히 15분의 이야기 속에 가족애와 우정, 권선징악, 효 등의 교훈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는다. 특히 6개월간의 전문 양성교육과정도 힘든 코스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 할머니’들은 아이들과 대화하며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들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와 우리 것을 이해하는 매개체로 이야기 동화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 구전문학 전도사이자 전통문화지킴이로 활동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에는 지혜와 사랑이 담뿍 담겨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손녀가 함께 결성한 록 밴드
경기 의정부 송산노인복지관에는 아주 특별한 밴드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손녀와 함께 악기를 배우고, 공연 봉사활동을 펼치는 ‘1·3세대 나눔밴드’다.

이 밴드는 60세 이상 어르신 9명과 복지관 인근 지역의 중학생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드럼, 전자기타, 베이스기타, 바이올린, 키보드, 보컬 등으로 각자 역할을 나눠 매주 세 차례 연습한다. 그래서 송산노인복지관 강당은 매일 악기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평균연령 차가 50세나 나지만 연주에 들어가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하나의 팀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다.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모니를 이루다보니 자연스럽게 애정도 싹튼다. 이렇게 1년 넘게 손발을 맞춰 이제는 기성밴드 못잖은 실력을 자랑한다.

밴드 결성 초반에는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필요했다. 복지관에서 영화관람, 나들이 등 문화활동도 지원하고 청소년·노년기에 필요한 심리적·정서적 상담도 실시했다. 이렇게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연습 참여율은 90%에 달했다.

밴드는 혹한기를 제외한 4월부터 12월까지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위문공연을 펼친다. 더불어 의정부시 기예대회, 의정부시사회복지협의체, 의정부시여성회 등 지역 단체와 함께 합동공연을 갖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정기 공연을 구상하고 있다.

나눔 밴드의 성공은 작게는 개인의 자기개발과 취미·여가활동의 기회를 제공했고, 크게는 1·3세대의 소통과 지역 주민들과의 음악 교류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에게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청소년들에게는 자원봉사 의식과 효 의식을 고취시키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복지문화를 창출하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인격이 형성되는 3세대는 어르신들과의 관계를 통해 예의와 지혜를 습득할 수 있고, 1세대 어르신들은 봉사활동 등을 통해 역할 상실로 인해 느끼는 소외감을 해소할 수 있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다. 2012년 1·3세대가 소통하며 봉사하는 나눔밴드의 왕성한 활동을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