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현장] “우리들에게는 마음 든든한 선물이지요”
[이색현장] “우리들에게는 마음 든든한 선물이지요”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03.16 15:27
  • 호수 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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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폐지수집 어르신에 ‘희망손수레’ 210대 전달
거리에서 폐지를 수집해 되판 돈으로 생활하는 어르신들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부각된 지 오래다. 폐지를 수집하는 목적이 다를 수 있어도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거리에 나서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손수레 마련 비용이 없어 버려진 유모차나 휴대용 운반기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더러는 자루에 폐지를 담아 모으기도 한다. 이 어르신들의 폐지 수집은 순전히 개인적인 일로 치부돼 왔다. 그런데, 경기도가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폐지 수집 어르신들을 위해 특수 제작한 손수레를 제공하는 이색적인 복지사업을 마련했다.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 노인회와 함께 폐지 수집 어르신들에게 제공키로 한 것. 수레를 받은 어르신들은 “큰 힘이 된다”며 반색하고 있다.

 

▲ 파주시 월롱면에 거주하는 유정강 어르신이 희망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지하철이나 거리를 돌며 모으는 폐지는 하루 평균 100kg 안팎. 고물상에서 1kg당 매기는 가격은 150원 가량. 폐지 50kg을 모아봤자 7500원이 주어진다. 하루 평균 60~75kg의 폐지를 모아야 1만원 안팎을 벌 수 있다. 하루 7~8시간 꼬박 돌아다녀도 1만원도 채 못 벌 때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들에게 이 돈은 천금과도 같다.

열악한 환경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최저생계비(2011년 1인 기준 53만2853원) 이하의 생활을 면치 못하는 절대 빈곤층에 속한다. 특히, 폐지로 생계를 잇는 어르신 중에는 기초수급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의 부양도 받지 못하면서 주민등록에 자녀가 등재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폐지 수거 어르신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몸싸움으로 다치는 경우도 다반사. 최근에는 70대 남성 어르신이 지하철에서 폐신문지를 모으다 40대와 말싸움이 생겨 폭행을 당했다. 다른 70대 여성 어르신은 마을 40대로부터 폭행당해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위험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물상에서는 폐지의 총 무게를 따져 매입 금액을 산정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하루 통상 100kg에 육박하는 폐지를 여기저기 끌고 다녀야 한다. 어르신들은 단지 운반도구가 잘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인도에서 내려가 위험한 도로를 이용하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 어르신들이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지원하면 좋겠지만, 제도상 다양한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 차라리 폐지 수거 전용 손수레라도 지원하는 것이 절실했다.

▲폐지 수집 노인 ‘자활’ 위한 사업

경기도가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나섰다. 경기도는 3월 11일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 어르신 대상으로 ‘희망 손수레’ 210대를 자체 제작해 전달하는 시범사업을 완료했다. 어르신들의 교통안전을 위해 300만원을 별도로 들여 구입한 야광조끼 200벌과 함께 도내 43개 시군구 노인회를 통해 보급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수레를 끌고 차도로 다니시면 상당히 위험하다”며 “그래서 야광 조끼도 함께 보급하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유모차를 개조한 실버카 110대를 포함, 총 8300만원의 추경예산으로 시작된 이번 사업은 지난 2월말 도내 전역에 보급하며 완료됐다. 수레 예산만 6000만원. 특수 제작하다보니 당초 보급 예상 시기보다 지연돼 해를 넘겼다는 게 도의 설명이다.

한 대당 예산은 20만원대. 돈으로 치면 얼마 안 되지만 폐지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저소득층 어르신들에게는 적지 않은 지원이다.
이와 관련 경기도 관계자는 “폐지 수집을 일거리로 삼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보탬이 되자는 취지”라며 “이 어르신들은 기초수급대상자로 대부분 생활고를 겪고 있어 시범사업 결과가 좋다면 사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도의 관련 예산도 부족한 상태. 당연히 희망 손수레 210대로는 대상자의 절반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 경기도내 폐지 수집 어르신 2800명 중 2011년 1월말 기준으로 형편이 어려운 기초수급 대상자는 373명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연말에는 573명으로 거의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도 관계자는 “사업을 계속하더라도 지원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어르신들이 계속 폐지를 수집할 수 있도록, 자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 내용을 결정한 것”이라며 “노인회 등 여러 의견을 반영해 손수레 제작 보급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는 이들 어르신의 영세한 거주지, 협소한 보관장소를 고려해 손수레를 접이식으로 제작했다. 손수레 디자인과 사양은 도가 마련했고, 조달청 입찰로 제작업체를 선정했다.

도 관계자는 “어르신들부터 호응이 크면 개선점 등을 반영해 노인회와의 공조, 무료 보급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번 손수레 보급 사업을 추진한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관계자는 “생계가 곤란한 어르신들의 의사를 반영하면서 생활에 직접적인 보탬을 주도록 도비로 진행된 사업”이라고 전했다.

수레가 아닌 현금지원 등 사업내용에 대한 일각의 반론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대부분 현금을 주면 그냥 써버리게 된다. 우리사회는 복지 개념부터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면서 자활 중심의 복지 프로그램을 수용할 만한 문화나 사회인식 부족을 노인복지의 최대 현안으로 꼽았다.

이어 그는 “복지에서는 무엇보다 복지 주체의 자활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회 저변의 인식개선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 “대환영”
손수레에 대한 어르신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노란색 철제 접이식 손수레는 손잡이와 짐칸 벽을 접고 부피를 줄여 손쉽게 보관하거나 옮길 수 있게끔 고안돼 있다.

파주시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특수 제작된 손수레를 받고 싱글싱글한다.

유정강(여·72) 어르신도 그중 한 명이다. 유 어르신은 벌써 몇 번이나 손수레를 사용해 봤다. 도가 제공한 수레는 집 옆 공터에 세워 놨다. 어르신은 평소 즐겨 쓰는 외발 수레에 작은 폐지를 모은 뒤 많은 양이 모이면 희망 손수레를 사용해 운반한다. 철제라 크고 무거워 보였지만 앞쪽에 보조바퀴가 달려 있어 일반 수레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다.

유 어르신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고, 크기도 적당해 폐지 수입용으로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며 “이런 손수레가 꼭 필요했다”고 말했다.

유 어르신은 “바로 아래 골목 정 할머니도 이번에 함께 수레를 받았고, 윗집 할머니도 잘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대한노인회 파주시지회를 통해 총 12대를 보급했다. 유 어르신이 거주하는 영태리에는 월롱면사무소를 통해 총 5대가 전달됐다. 경기도내 노인회 지회별로 적게는 3대부터 많게는 12대까지 배부됐다. 월롱면사무소는 지난 2월 29일 손수레를 조립 후 전달하며 접고 펴는 방법 등 어르신들께 사용법을 교육했다.

정선기(여·76) 어르신을 비롯해 손수레를 보급 받은 영태리 어르신들은 아침과 저녁 두 차례 폐지 수집을 위해 집을 나선다.

유 어르신은 “지금은 폐지가 많지 않고 요즘 들어 경쟁이 치열해 많이 모으지 못하고 있다”며 “가을에는 비교적 폐지가 많고 무게가 별로 안 나가는 신문 대신에 박스 위주로 모은다”고 했다.

유 어르신은 현금 지원은 어떻겠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르신은 “수레가 돈으로 몇 푼하겠느냐만 우리들에게는 매우 필요한 도구”라고 말했다.

이어 “수레를 받을 때만 해도 이처럼 좋은지는 몰랐는데 가격은 차치하고, 두고 볼수록 맞춤식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손수레가 든든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가 폐지 수집 어르신들께 좋은 선물을 제공한 셈이다.
글=이호영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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