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행복, 인간관계 회복이 우선(상)
최장 80년 해로 부부, 갈등 땐 ‘나는 당신 편’이란 믿음 줘야
노후행복, 인간관계 회복이 우선(상)
최장 80년 해로 부부, 갈등 땐 ‘나는 당신 편’이란 믿음 줘야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03.16 15:35
  • 호수 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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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노년층, 부부동반 외출·대화 ‘한 달에 한 번 안돼’
평생 서로 의지한다는 정서적 유대감, 부부관계 개선
‘은퇴준비’하면 대부분 ‘노후자금마련’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경제력’보다 더욱 중요한 선결과제가 있다. 은퇴 후 20년 이상을 함께 지낼 배우자, 자녀, 며느리 등 가족과의 관계회복이다. 특히, 은퇴 후에는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 과거엔 느끼지 못했던 소외감이나 상실감도 강하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은퇴준비의 첫 관문을 부부 유대감 형성 및 관계회복에서 찾는다.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자녀를 비롯해 친척, 사회적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와의 동거를 꺼리는 성향마저 짙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구속받지 않는 노후를 꿈꾸는 예비노년층에게 부부관계 회복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본지는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활기찬 노후와 여생을 꿈꾸는 장노년층이 선결해야 할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2회(상편-부부갈등, 하편-자녀·고부갈등)에 걸쳐 살펴본다. 이번 호는 부부갈등 원인과 해소방법을 분석한다.

 

▲ 은퇴 후 20년 이상을 함께 지낼 배우자, 자녀, 며느리 등 가족과의 관계회복이다. 특히, 은퇴 후에는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 부부 및 자녀 등과의 관계계선이 중요하다.
▲노인부부가구 200만…은퇴 후 19.4년 ‘해로’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세대주가 65세 이상 노인인 가구의 비중은 17.4%, 298만 가구에 이른다. 홀몸노인을 제외하면 약 200만 세대가 노인부부인 셈이다. 최근 자녀의 결혼 후 분가를 당연시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장혜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100세 시대 가족’을 주제로 한 여성정책포럼에서 “이전 세대는 자녀를 여러 명 낳고 수명이 짧아서 자녀가 독립한 뒤 남편과 아내 단둘이 사는 기간이 짧았지만, 자녀수가 줄고 기대수명이 늘어난 예비노년층 세대는 부부만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은퇴 후 최소 10년, 최대 30년 이상 부부가 함께 살아야한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체 부부 가구에서 노인부부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9%였지만 2030년에는 절반 이상인 54.2%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불과 10년 뒤인 2020년에는 5가구 중 1가구가 노인들만 사는 가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노인가구 수의 증가만큼 은퇴 후 노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시간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서울대학교가 조사한 가족관계 통계를 살펴보면 베이비부머들은 평균 24.95세에 결혼했고, 평균 2명(1.92명)의 자녀를 낳았다. 자녀 수가 적어 양육기간이 짧아지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면서 자녀 독립 후 부부끼리 생활하는 시간(빈둥우리 기간)은 19.4년으로 늘었다. 이는 이전세대의 빈둥우리 기간(1.4년)에 비해 14배나 긴 것이다.

▲은퇴 부부 가장 큰 고민은 ‘경제력’
지난해 발표된 ‘한국의 베이비부머 연구’(Korean Baby Boomers in Transition)에 따르면 은퇴를 준비하는 베이비부머 부부의 가장 큰 갈등영역은 경제문제(75.6%)였다. 성격차이(66.9%), 자녀문제(61.8%) 등이 뒤를 이었다. 은퇴와 자녀 결혼 및 독립 등이 맞물리면서 경제적 부담이 가장 중요한 부부간의 갈등 영역으로 부각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목할 점은 부부간의 성격차이에 따른 문제가 66.9%에 달한다는 것이다. 10명 중 약 7명이 부부갈등을 겪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학교 한경혜 박사는 “베이비부머의 가족생활 주기는 전 세대와 매우 다르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세대이면서 과도한 교육비와 자녀결혼비용,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낀 세대’다. 이 때문에 가정보다는 직장, 부부보다는 부모와 자녀에게 쏟는 시간이 많아 부부간의 갈등이 가장 큰 인구집단”이라고 설명했다.

베이비부머 연구결과에서 응답자의 45%는 ‘결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부부동반 외출과 부부 간 대화를 ‘한 달에 한 번도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각각 27%와 9%로 나타났다. 부부관계 단절의 심각성에 주목할 만하다.

부부갈등에 대한 위기의식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사회갈등’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여성의 71.9%가 ‘남편을 돌봐야하는 기간이 길어져 부부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는 “보통 남편의 나이가 많은데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평균 7년 높기 때문에 아내의 ‘남편돌봄’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나타난다”며 “부부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은퇴 후 남편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본격적인 은퇴를 앞둔 720만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부부문제는 경제문제 만큼 중대한 해결과제”라며 “오랜 부부생활을 통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 형태로든 굳어져 있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은퇴 후 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부부갈등 대처법 ‘낙제’… 40% 자녀출가 후 이혼 고려
베이비부머의 부부관계 문제는 갈등대처 행동에서 비롯된 결과다. 부부갈등이 발생했을 때, 남성과 여성 모두 말을 하지 않거나 그 자리를 떠나 회피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서울대 한경혜 박사의 ‘가족관계 통계’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남성의 41%, 여성의 48%가 부부 갈등 상황에선 ‘말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자리를 피한다’(남성 24%, 여성 16%)는 응답도 상당수 있었다. 남성의 경우 격렬하게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 등의 비이성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15%에 달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갈등 대처 방식은 오히려 부부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잔존할 가능성이 크다. 터지지 않고 가슴에 쌓아 둔 폭탄은 ‘황혼이혼’이나 ‘무관심’이라는 극단의 상황까지 치닫게 만든다.

실제로 베이비부머의 약 40%가 지난 5년 동안 이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다는 결과가 있다. 결국 은퇴 전 부부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면 극한의 갈등 요소가 발현될 수 있는 아주 불안한 상태로 노후를 보내야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행복한 은퇴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부부갈등 해소를 위한 긍정적인 해결방안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노후를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부부간의 대화법, 긍정적인 갈등해소 방법이라는 것이다.

▲부부갈등의 주원인…‘정서적 친밀감 욕구’ 불만
부부갈등은 상대에 대한 무관심과 포기에서 비롯된다. 부부 사이에는 심리적인 ‘정서적 친밀감의 욕구’가 내제돼 있다. 친밀감의 욕구란, 식욕·수면욕과 마찬가지로 그날그날 채우지 않으면 안 될 인간의 기본욕구다. 문제는 식욕과 수면욕은 스스로 채울 수 있지만 친밀감의 욕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채울 수 있다.

경기도가족연구원 안태윤 연구위원은 “따뜻한 친밀감 없이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못하듯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친밀감의 욕구는 생존의 필수요건이다. 특히 갱년기를 거치며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게 되는 노년기에는 부부간의 친밀감이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부부사이 정서적 친밀감은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무턱대고 화를 내든가, 아예 입을 다문다면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아내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남편은 인정받지 못한다고 오해한다. 사소한 일로도 죽이고 싶을 만큼 상대가 미워지기도 한다.

▲부부관계 회복, 격려·인정하는 말부터 시작
연애 시절 돈독했던 친밀감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을까. 그 첫걸음은 서로의 일상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맙다’ ‘수고했다’ ‘당신뿐이다’ 등 격려와 인정의 말은 막혔던 대화의 끈을 이어준다.

요즘과 다르게 가부장적 사회문화 속에서 배우고 자란 노년층에게 대화는 낯설기만 하다. 가부장적인 유교적 가정환경에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애정 표현은 고사하고 일상 대화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시도할 때 남편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가장으로서의 권위의식을 버리는 것이 우선이다. 사회적 체면보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갑작스런 변화가 힘들다면 아내를 가장 친한 친구로 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내는 늙으나 젊으나 ‘남편은 내 편’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남편과 아내가 평생을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정서적 유대감만 생기면 부부관계는 몰라지게 달라질 수 있다. 단, 부부 간 대화를 시도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절대 배우자를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만약 상대에게 소리치고, 무시하는 언행을 저질렀다면 최대한 빨리 사과하는 것이 좋다. 다툼은 위험요소가 아니라 막혔던 부부관계를 회복시켜주는 기회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소소한 다툼을 통해 과거보다 관계가 더욱 끈끈해지는 경우도 많다.

또한 대화는 언어적 소통뿐만 아니라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안태윤 연구위원은 “일상에서의 소통은 성(性) 생활의 이전 단계다. 흔히 성관계를 통해서만 성욕구가 충족된다고 생각하는 데, 이것은 큰 착각이다. 성 욕구는 손잡고 산책하며 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만 나눠도 해소될 수 있다. 대상이 부부라면 그 효과는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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