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부터 약값 인하, 국민부담 덜고 건보재정 보탠다
4월 1일부터 약값 인하, 국민부담 덜고 건보재정 보탠다
  • 장한형 기자
  • 승인 2012.03.23 14:44
  • 호수 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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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부터 약값이 내려간다. 보건복지부는“4월부터 2012년 1월 1일 이전 건강보험에 등재된 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의약품 가격 조정은 지난해 8월 12일 발표된‘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에 따른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1만3800여개의 약 중에서 값이 비싸지만 다른 약으로 대체 가능한 6500여개의 약이 대상이다. 이들 약값의 평균 인하율은 21%, 전체 약값으로 보면 평균 14%가 내려간다. 복지부는 이번 약값 인하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그 동안 의료현장에서 관행적·음성적으로 만연한‘리베이트’의 원천인 약값 거품을 제거, 의약질서를 바로잡는 한편 제약산업을 선진화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노인성 질환 등으로 약을 많이 복용하는 어르신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 보건복지부가 터무니없이 비싸게 책정된 약값을 4월부터 내리기로 했다. 이번 약값 인하로 국민부담을 덜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국내 제약산업의 선진화도 앞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고가판매 복제약, 거품 없앤다”
정부가 약값 인하를 추진한 첫 번째 이유는 약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약은 크게 △특허신약 △특허만료 오리지널약 △복제약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막대한 연구개발 및 임상시험 비용이 들어가는 특허신약을 비롯해 특허기간(20년)이 종료된 오리지널약은 대부분 외국계 제약사가 만들어 국내에 공급한다.
규모가 영세한 국내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특허기간이 만료된 특허신약 성분을 복제한 ‘복제약’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복제약은 연구개발 및 임상시험 비용이 들지 않고 원료 및 생산비용만 들어가기 때문에 생산원가가 저렴한데도 지금까지 높은 약값을 지불해 왔다는 것이 복지부의 판단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8년 기준 국민의료비 중 약품비 비중은 22.5%로, OECD 평균 14.3%의 1.6배 수준이다. 또, 건강보험 지출에서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9%대에 달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가 16개 선진국의 복제약 값을 비교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복제약 값을 1이라고 했을 때 스웨덴 0.395, 노르웨이 0.369, 이탈리아 0.643, 일본 0.784, 대만 0.955, 미국 0.937 등으로 가장 비쌌다.

비싸고 불필요한 약 처방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상반기 복제약 처방량을 처방금액으로 나눈 지수(1에 근접할수록 고가 복제약 처방)에서 우리나라는 0.93으로 영국 0.42, 네덜란드 0.41, 독일 0.55, 프랑스 0.53 등보다 높았다. 처방전 당 약품수도 미국 1.97개, 독일 1.98개, 독일 1.98개 일본 3.0개 등에 불과했지만 우리나라는 4.16개에 달했다.

특허만료 오리지널약도 우리나라는 특허만료 전 약값 대비 80%를 산정하고 있지만 네덜란드 60%, 오스트리아 70% 등이었다. 최초 복제약도 우리나라는 특허만료 전 약값 대비 68%를 적용하고 있지만 프랑스 50%, 네덜란드 60%, 오스트리아 52% 등이었다.

▲“제약사·의사 리베이트 원천 차단”
약값 인하의 두 번째 이유는 후진적인 국내 제약산업과 이에 따른 ‘리베이트’ 영업 때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완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 총 483곳 가운데 2010년 기준 생산규모가 1000억원 이상인 업체는 38곳(7.8%)에 불과하다. 134곳(27.7%)은 100억원 미만이고, 도매업체만 2500여 곳에 달한다.

또, 2010년 기준 상장 제약사 74곳의 지난 10년간 매출액은 268% 늘었고, 영업이익도 전체 산업 평균 6.9%보다 높은 10.9%에 달했다. 그러나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총매출의 7.4%에 불과, 상위 20개 다국적 제약사 15.7%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규모가 영세한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개발보다 복제약 생산,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복제약은 건강보험에 등재되는 순서대로 최초 생산 복제약부터 다섯 번째까지는 특허신약 가격의 68%, 여섯 번째 등재 복제약은 61%, 일곱 번째는 55% 등으로 값을 내리는 계단형 가격구조를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제약사들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해야 하는 신약 개발보다는 경쟁적으로 복제약 생산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신약개발보다는 복제약을 생산, 등록한 뒤 병원 등을 상대로 한 판매·영업에 과당경쟁하는 폐해가 생겼다. 영업활동을 통해 복제약 판매를 늘리는 것이 기업이윤을 실현하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이 같은 경쟁적 영업활동 과정에서 제약사들은 처방전을 발행, 약품 품목을 결정하는 의사를 상대로 사례비, 할인 및 할증, 후원금 등 갖가지 명목의 리베이트와 세금계산서 허위작성 등 불법적인 장부정리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공공연한 관행으로 여겼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리베이트의 정확한 규모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제약사 총 매출의 평균 20% 정도가 리베이트 비용이며, 제약업계 전체 매출액으로 환산할 경우 총 리베이트 규모는 연간 2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청된다.

특히, 약을 많이 쓸수록 리베이트로 인한 이익이 커지기 때문에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는 약을 많이 처방, 재정 낭비는 물론 국민의 건강도 위협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제약사 판매관리비는 35.6%로, 제조업 11.16%의 3배 이상이고, 전체 산업 평균 14.32%보다 높은 구조를 갖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10년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동시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리베이트의 근본적인 원인은 약값 거품을 걷어내지 않고는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가에 유통되는 약이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는 것이 약값 인하의 세 번째 이유다.

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지출은 △기본진료료 및 재료대 33.6% △진료행위 37.1% △약품비 29.3% 등으로 각 부문별로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그러나 약품비 절대금액이 2005년 7조2289억원에서 2011년 13조4290억원으로 5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민의료비 중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2008년 기준 22.5%로 OECD 평균 14.3%의 1.6배 수준에 달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값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억제하지 않고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더구나 약품비가 정당한 대가가 아닌 거품과 리베이트로 구성됐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이 정부의 정당한 책무”라고 밝혔다.

▲대상 품목, 평균 21% 가격 인하
정부는 이번 약가 인하에 따라 복제약의 가격구조부터 손을 봤다. 올해 1월 이후, 이전의 단계형 가격구조를 폐지하고, 특허가 만료되면 오리지널약이든 복제약이든 특허신약 가격 대비 53.55%의 동일한 가격을 적용키로 했다. 복제약은 동일한 효능과 효과, 안전성이 입증돼 등록 순서에 따라 약값에 차등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개별 약값도 낮아진다.

복지부가 약값 인하 대상으로 정한 품목은 총 1만3814개 약품 가운데 47.1%에 달하는 6506개다.

다만,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특허신약을 비롯해 퇴장방지의약품, 저가의약품, 희귀의약품 등은 인하 대상에서 제외됐다. 퇴장방지의약품은 필수 의약품이지만 값이 싸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생산원가를 지원, 공급을 유지하는 의약품을 말한다.

대상 품목 약값은 평균 21% 낮아지고, 인하 제외 품목을 포함한 건강보험 적용 전체 약값은 평균 14% 내려간다.

예를 들어, 제약사 30여곳이 복제약을 생산하고 있는 고지혈증약 ‘리피토정 10mg’의 경우 1정당 917원에서 663원으로 약 28% 인하된다.

간염 치료제인 ‘헵세라정 10mg’은 1정당 5775원으로 연간 210만8000원(본인부담금 63만2000원)의 투약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 따라 1정당 3866원으로 약값이 인하되고, 연간 투약비용도 141만1000원(본인부담금 42만3000원)으로 낮아진다. 이에 따라 환자는 연간 본인부담금 20만9000원을 덜 내게 된다.

이 같은 약값 인하로 인해 전체 약품비 1조7000억원(건보재정 1조2000억원, 본인부담 5000억원)이 절감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료 인상율도 지난해 5.9%에서 올해는 2.8%로 낮아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류양지 과장은 “지금까지 약값은 소비자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은 채 제약사, 의사·약사, 도매상이 결정해 왔다”며 “이번 약값 인하로 인해 소비자의 선택권이 강화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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