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교 동창생
[기고] 학교 동창생
  • 관리자
  • 승인 2012.03.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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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석 경북 상주시 외남면 분회장

 사람은 환경에 따라 자기가 흘린 땀과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된다. 특히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청운(靑雲)의 꿈을 이루려는 학업에는 분명한 때가 있다. 삶의 기본은 부모님에게 배우지만 인생의 항로는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통해 형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승과 벗은 인생의 소중한 방향키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학원이 없었기에 학교가 유일한 배움의 전당이었다. 때문에 선생님과 학생들은 마음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에 빠졌다. 선생님들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고, 아이들은 열심히 가르침을 따랐다. 함께 울고, 웃으며 둘도 없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쌓았다.

필자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 생생하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막 사범학교를 졸업한 젊은 선생님이셨다. 그 때는 많은 숙제와 방과 후 자습이 그렇게 싫었지만 방과 후에도 항상 학생들 곁을 떠나지 않으셨던 참 교육자다운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돌이켜보니 그 때 배운 모든 것들이 인성의 뿌리를 내리는 밑거름이 됐다. 또한 죽마고우(竹馬故友)로 지냈던 동창생들은 아직도 인생의 동반자로 남아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기억되는 학창시절은 꿈 많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기근과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작가의 꿈을 황혼에 비로소 이뤘기 때문에 그 때가 더욱 그립다. 이를 잘 아는 동기동창생들이 모임에서 올해 우수 작가상을 경하(慶賀)해주는 특별한 수상 기념품을 받기도 했다. 백발의 동창생들이 건네 준 ‘한고청향’(寒苦淸香)은 홍매화의 아름다움이 생화처럼 보이는 병풍만한 족자였다. 이 뜻은 심한 추위의 갖은 고초를 다 견뎌내고서 맑고 깨끗한 향기를 풍긴다는 의미다. 이는 영남의 거장 백봉 서예가의 작품으로 현재 필자의 좌우명으로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추억을 나눈 동창생들이 아니라면 결코 해줄 수 없는 크나큰 선물이다.

하지만 21세기 우리나라 교육은 오히려 역행하는 느낌이다. 만들어서는 안 되는 학원법이 법제화되면서 공교육은 점점 등한시되고 있다. 각종 학원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학교보다 학원이 더 우위에 있는 것 같다. 인성교육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직 명문대 입시를 향한 무한 경쟁만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사제(師弟)간의 정은 사라지고, 동창생들은 입시 경쟁자가 돼 버렸다. 물질만능의 경제적 변화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공교육마저 멍들게 하고 있다. 이제 학생들은 학교폭력으로 등하교 길을 두려워하는 현실이 됐다.

또한 어려움을 당하는 저소득층의 사정은 또한 어떠한가. 가계수입의 반수를 사교육비 부담으로, 생활의 고충을 당하는 가구는 얼마나 많을까. 학부모들의 모성애는 노후대책을 생각 할 겨를도 없다. 개인적 이기주의만 팽배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필자는 며칠 전 초등학교 모교의 80회 졸업식에 참석했다. 모범이 되는 후배들을 선정해 선행표창을 6년째 수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년 졸업생들은 65회 후배 동창생들이지만 같은 학교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정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생 4명뿐인 쓸쓸한 졸업식은 농촌 몰락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해 너무나 한스러울 뿐이었다. 1929년 개교해 한 때는 학생이 1000명을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교생 20명이 고작이다. 안타깝게도 15회 졸업생 동기 모임도 금년을 기해 해체 됐다. 모진 세월에 하나둘씩 다 떨어지고 몇 명 남은 동창들도 추억담을 나눌 기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저 한탄과 그리움만 남는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유식하다고 해도 우리들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백년대계의 학교교육도 그 많은 과외학원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지난 날처럼 자녀들을 마음 놓고 학교를 보내려면, 풍요롭고 올바른 민주사회 교육인 정규학교의 참신한 공교육이 되살아나야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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