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삶 바꾸는 ‘웰다잉’(상)
“죽음은 두려움·공포의 대상 아닌 ‘성장의 마지막 단계’”
노년기 삶 바꾸는 ‘웰다잉’(상)
“죽음은 두려움·공포의 대상 아닌 ‘성장의 마지막 단계’”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03.30 16:08
  • 호수 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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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도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평균수명 증가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삶이 그렇듯 죽음은 연습도, 반복도 없다. 미리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며, 한 개인의 인생이 완전히 종결되는, 두렵고 외면하고 싶은 삶의 마지막 단계가 죽음이다. 노년기엔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설기만 한 죽음에 직면하는 시기다. ‘죽음’이란 경험은 기억할 수도 없다. 인간에게 죽음은 경험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특별한 과정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운 종결이 아닌 ‘성장의 마지막 단계’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무기력할 수 있는 여생을 활기차게 보내는 기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죽음을 향한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여생을 활기차고 뜻 깊게 보내기 위한 죽음준비교육,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이 화두가 된지 오래다. 본지는 이번 호에서 전문강사들을 통해 ‘죽음준비교육’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다음 호에는 아름다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뜻 깊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전환해 평안한 마음을 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죽음준비교육이다. 사진은 죽음을 성찰하기 위해 각당복지재단이 마련한 연극공연 모습.사진=백세시대DB
죽기 직전까지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오는지 성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누구나 갖고 있다. 노년기에 삶의 허무를 느끼거나 소극적인 여생을 보내는 것도 잠재적인 공포에 짓눌리기 때문이다.

웰다잉 전문가들은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막연히 바라보고 있는 어르신들이 ‘죽음’을 직시하는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죽음’은 삶 가운데 언제 어디서나 질병과 사고 등으로 상존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잘 죽는 것=여생을 잘 사는 것”
전문가들에 따르면 웰다잉 교육을 받는 어르신마다 교육에 대한 기대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대상 어르신은 65세 이상이지만 80세, 85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현재 각당복지재단에서 활동 중인 정상기 웰다잉 지도강사는 “처음에는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들이 ‘좋다’고 권유해 뭔지 모르고 수강하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며 “‘죽음’이라는 주제로 어르신들의 마음에 접근하려면 ‘죽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재미있게 다루면서 강의를 끝까지 듣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르신들에게 ‘죽음’만큼 난해하고 곤란한 주제는 없기 때문이다.

정 강사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죽음이라는 말 자체부터 부담과 거부감을 표현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언급 대신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메시지 전달에 주력한다”며 “초반에 ‘잘 죽는 게 뭐냐’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강의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교육 중 인생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느낀다. 더러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왜 이 정도 밖에 못 살았지’라며 스스로의 삶을 실패한 인생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죽음을 직시하는 과정을 돕고 알찬 여생을 위한 죽음준비교육은 어르신들이 고민하고 실천에 옮겨야 하는 중요한 과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흔히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다는 판단이 서면 ‘죽음’을 직시하고 여생을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 같은 성찰의 과정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았다는 허무함보다는 삶에 대한 확신으로 임종의 순간을 맞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죽음’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하다. 두려움이 아니라 경건하고 차분하게 생을 마감하며 잘 죽기 위해, 즉 ‘웰다잉’하는 마음의 지혜를 얻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교육의 결과, ‘잘 죽는 과정’은 곧 ‘여생을 잘 사는 과정’이란 역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용서와 화해 통해 응어리 풀어야”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과 평가는 개개인에 따라 매우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따라서 죽음준비교육을 하는 강사마다, 교육 대상과 교육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탄력적이다. 죽음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끝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4시간의 교육으로 족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8~16시간의 과정으로 죽음준비교육이 진행된다.

정상기 강사는 “어르신들의 소득 수준이나 생활여건에 따라 교육과 프로그램 내용이 달라진다”며 “특히 개인적으로 ‘용서와 화해’ ‘자서전 만들기’가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강사들의 교육에서 ‘용서와 화해’는 매우 중요한 주제다.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 가장 응어리진 과제가 바로 용서와 화해를 통해 해소되기 때문이다.

남정순 강사는 “한 복지관에서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용서와 화해’를 주제로 교육하던 중 일흔을 넘긴 여성 어르신이 남편의 외도가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면서 눈물을 흘렸다”며 “이렇듯 교육과정에서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여생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죽음을 전제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용서와 화해의 끈을 찾음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여생을 바라보는 혜안을 갖게 되는 과정이다.

남정순 강사도 ‘인생 곡선 그리기’로 구성된 ‘인생 회고’를 비롯해 여생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해 작성하는 교육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둔다. 이후 본격적으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집중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는 유언장 작성이 가장 주요하게 다뤄지는 교육이다. 또, 과거의 사진을 연령별로 나열해 만드는 자서전도 효과가 좋다. 글을 모르거나 글 솜씨가 없더라도 사진을 통해 자서전을 남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때문이다.

▲“종교, 죽음 이해·순응에 매우 중요”
특별히 기획된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죽음준비교육에서 신앙 또는 종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주로 병원에서 활동하는 박홍순 강사는 “어르신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어떤 종교든 신앙을 권유하는데, 그 힘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홍순 강사는 종교와 함께 사전의료의향서, 유산정리를 강조한다.

이와 관련, 정상기 강사는 “사회·경제적 지위나 여건이 좋은 어르신들에게는 재산정리나 유서 등을 강조하지만 홀몸노인 등 형편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종교를 가질 것을 권유거나 감정적으로 달래고 위로하는 등 접근 방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만큼 어르신들의 개별적인 여건과 성향, 강의의 수용 정도, 강의에 대한 기대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유념한다는 것. 특히 경제적 형편이 좋은 어르신일수록 유산상속에 관심이 많다. 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는 가치 있는 삶, 나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기도 한다. 반대로, 가족관계가 악화돼 있거나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어르신들에게는 종교를 통한 성찰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정상기 강사는 “홀몸 어르신 가운데 경제적으로 힘들고 자식이 부양을 외면한 채 돌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비하하며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자살충동도 높은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30명의 홀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는 일대일로 직접 찾아가 상담하며 은연 중 ‘아름다운 죽음’을 마음속에 심어주는 봉사활동을 5년째 지속하고 있다.

정상기 강사는 “홀몸 어르신들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안 죽지’라는 말을 불쑥 내뱉기도 한다”며, 이런 경우 어르신의 종교에 따라 ‘하나님’ ‘부처님’으로부터 죽음을 허락받았는지 되물으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어르신들 중에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하거나 자괴감에 사로잡혀 심적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이런 어르신들에게는 “현재 기억을 못할 뿐이지 의미 있는 일도 많이 했다”고 말하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 ‘반전의 기회’를 갖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죽음준비교육은 어르신들이 흔히 갖게 되는 ‘삶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뜻 깊고 가치 있는 삶’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면서 평안한 마음을 품도록 돕는 것이다.

정상기 강사는 죽음준비교육에 대해, “곧 떠나게 될 이 세상에서 나는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나는 이웃과 가족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 어르신들이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남정순 강사는 “홀몸 어르신들은 죽음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이 더욱 심하다”며 “강의를 통해 심리적 변화를 갖는 모습을 자주 접하고 있다”며 죽음준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계속>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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