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명수, 남상해를 아십니까?’
‘역전의 명수, 남상해를 아십니까?’
  • super
  • 승인 2006.08.24 22: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상해 하림각 회장 두번째 저서 펴내

“노인회서 받은 상에 가장 보람”

 

동양최대의 CHINESE RESTAURANT로 맛과 서비스에서도 최고의 중국음식점으로 평가받는 ‘하림각’은 남상해 회장의 피와 땀의 결정체다.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번도 한눈팔지 않고 오직 중국음식점 운영에만 힘써오면서 재산가가 된 그의 인생역정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화자 될 만큼 감동적이다. 중화요리의 대가, 역전의 명수 등으로 불리며 화제가 됐던 그가 두 번째 저서 ‘역전의 명수, 남상해를 아십니까?’를 펴내며 다시한번 감동을 선사한다.

 

그동안 자수성가했다는 인물을 여럿 만나봤지만, 반갑게 인사하며 맞아주는 남상해 회장의 첫 느낌은 사뭇 달랐다.

 

자수성가한 인물들에게서 보여지는 강인한 인상보다는 마음좋아 보이는 이웃아저씨 같은 인상과 억대의 재산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소탈했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서니 장식장, 벽 할 것 없이 방안 가득 빼곡하게 전시돼 있는 상패와 상장, 트로피가 먼저 눈에 띈다. “이렇게 많은 상장은 처음 보았다”고 하자, 남회장은 쑥쓰러운듯 미소를 짓는다.

 

특별히 의미 있는 상이 있냐고 묻자 “모든 상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지만, 그중 노인회에서 받았던 상이 가장 기분 좋았다”고 말한다. 그가 왜 노인회에서 받은 상에 가장 의미를 두는지는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여러 언론과 방송을 통해 중국집 배달부에서 ‘하림각’의 대표이사로 성공하기까지 그의 인생스토리가 공개되며 많은 화제가 됐었다. 특히 2001년도에는 MBC 성공시대에 출연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며 ‘다시 보고 싶은 감동적인 인물’에 뽑히기도 했다.

 

남 회장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단순히 재산가가 됐다는 점이 아닌, 그의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자신의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고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존경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1938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해 어린시설을 일본에서 보낸 그는 해방 후 귀국해 충남보령에 정착한다. 그러나 돌아온 조국에서 기다리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뿐이었다.

 

그를 포함한 11남매는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워 솔잎과 쑥같은 나물을 캐 먹어야 했고 이 때문에 채독이 올라 고생을 하기도 했으며, 채독과 굶주림 속에서 형과 동생 등 4명의 형제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도 경험했다.

 

남 회장은 “특히 여동생이 ‘쌀밥 한번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남긴채 유명을 달리 한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런 상황들은 당시 10살이던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는 계기가 된다.

 

무일푼으로 서울행을 감행한 촌소년에게 처음 와본 서울은 별천지였지만, 서울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처음 서울에 와 창신동 산비탈에 땅굴을 파고 생활하면서 신문팔이, 구두닦이, 물장수 등 안해본 일이 없어….” 어린소년이 감당하기엔 큰 고난이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꿋꿋이 이겨냈다.

 

계속되는 고달픈 생활에 지친 소년은 배고픔과 한뎃잠을 면하기 위해 중국집 뽀이로 취직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중국음식점의 사장이 되겠다’는 꿈이 생겼고, 주인의 배려로 야학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노력은 1962년에 국제관광공사에 입사해 워커힐호텔 조리부장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7년에 ‘동승루’를 열면서 그의 평생 꿈이던 중국음식점 주인이 되었고, ‘신해루’ ‘열빈’ ‘다리원’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집 ‘하림각’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사업의 성공, 부인과 잘 커준 세 자녀 그리고 5명의 손자·손녀들. 이제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그에게도 아픔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림각에서 회갑연이나 칠순 등의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럽다”면서, “부모님 환갑, 칠순잔치 한번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남 회장은 부모님이 생각날 때 마다 노인들을 모셔 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시작한 일이 노인정을 중심으로 차츰 인원이 늘어났다. 그래서 아예 1993년부터는 해마다 종로구의 노인들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경로잔치라야 사실 내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식사 한끼 대접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노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볼때면 부모님에 대한 회한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 하다”고 했다.

 

또 “노인 초청 행사를 하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끼니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인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 때문에 이제는 개인적인 그리움과 효, 불효의 문제를 떠나 이 일에 책임감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남 회장은 지난 2000년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IMF 시절이었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식당운영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줘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에 보답하는 의미로 그는  지난 10일 출판기념회를 갖고 두 번째 저서 ‘역전의 명수, 남상해를 아십니까?’를 펴냈다.

 

남 회장은 “이 책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면서, “인생에는 역전의 묘미가 있는만큼 죽는 한이 있어도 꿈을 버리면 안된다.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