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편안한 죽음 맞이하는 ‘웰다잉’ 일상생활에 정착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 맞이하는 ‘웰다잉’ 일상생활에 정착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06.08 13:42
  • 호수 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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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이해하며 건강한 여생을 보내자는 취지로 행해지는 ‘웰다잉’(well-dying).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느덧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웰다잉은 삶과 죽음을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잘 죽는 법’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최근 국내에서 관련 단체 및 기관 등을 중심으로 웰다잉을 실천하는 어르신들이 급증하고 있다. 또, 새롭게 웰다잉을 접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어르신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많은 어르신들이 막연하게 느끼는 웰다잉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웰다잉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또,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이웃 일본에서 성행하고 있는 갖가지 웰다잉 문화도 함께 살펴본다.

▲ 각당복지재단이 웰다잉을 주제로 한 연극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사진=백세시대DB
죽음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죽음을 맞는 이유와 시기는 각기 다르지만 누구도 죽음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삶의 태도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이다. 죽음의 두려움에 떨며 여생을 나약하게 살다 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이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직결된다. 언뜻 모순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준비하는 방식에 따라 ‘현재’의 삶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죽는 법’(웰다잉)이 곧 ‘잘 사는 법’(웰리빙, well-living)이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 이전에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가진 하나의 생명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웰다잉에 대한 인식만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고 강조한다. 생각이 아닌 습관으로 이행되는 웰다잉을 갖출 때 비로소 죽음을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심적 불안을 유발한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덮어두고 모른 척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잘 죽는 법’ 또는 ‘잘 사는 법’을 탐구하고, 죽음 혹은 여생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아 있는 소중한 삶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 웰다잉을 실천해 보자. 그 시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웰다잉연구소’ 죽음준비교육 ‘인기’
‘웰다잉문화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웰다잉과 죽음준비교육 등과 관련, 오랜 시간 각종 연구와 집필, 강의를 이어오고 있는 김조환 소장이 7년 전 웰다잉 문화를 확산·교육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후 연구소는 최청자·이철영·장신화·조진영 교수 등 장례·노인 전문가들이 합류, 웰다잉 및 죽음준비와 관련한 다양한 교육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의 대상은 크게 두 부류다. 각종 단체·기관의 요청에 의한 교육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다.

우선, 관련 단체·기관의 경우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웰다잉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면서, 각종 기업·기관은 물론이고 연구자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 요청이 부쩍 늘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매주 1회, 4주차(1개월) 과정으로 교육이 이뤄진다. 전 과정을 모두 수강하지 않고 수강자가 원하는 강의만 선택할 수도 있다.

교육생들은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총 10주차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이 종료된 후에도 특정 과제를 통해 ‘웰다잉문화연구소’와 지속적인 교류를 맺는다. 연간 1회 정도 연구소를 다시 찾아 자신이 웰다잉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식이다.

교육 내용은 주제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죽음에 대한 인식 △유언장 작성 및 발표 △자서전 작성 요령 및 사례 △자서전 발표 순으로 이뤄지며, 교육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웰다잉문화연구소’ 홈페이지(www.well-dying.or.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보통 5~10명의 인원이 수강하며, 은퇴를 앞둔 장노년층부터 주부, 성직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모든 교육생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이 없는 상태로 교육에 임하지는 않는다. 일부는 죽음에 대한 심각한 거부감으로 인해 교육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라도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앞날을 다짐하거나 계획하고 교육을 접하기 이전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김조환 소장은 “많은 교육생들이 웰다잉 교육을 받은 후 왜 이런 교육이 필요한지 깨닫고 만족스러워한다”며 “죽음에 대한 생각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보거나 교육을 완료한 수강생이 다시 교육 받기 위해 연구소를 찾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엔딩노트’로 웰다잉 손쉽게 실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어 전문교육기관 및 단체를 찾기 어렵다면 홀로 ‘엔딩노트’(ending-note·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공책)를 작성하는 방법으로도 웰다잉을 실천가능하다.

엔딩노트는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재산 상황이나 상속에 대한 생각과 원하는 장례 형태, 하고 싶은 말 등을 기록하는 책이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유언장과 차이가 있다.

웰다잉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일본의 경우, 2010년 가을 출간된 엔딩노트가 불티나게 판매됐다. 출시 불과 세 달 만에 5만부가 팔렸다. 이 책의 성공 이후 비슷한 종류의 상품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는 엔딩노트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웰다잉문화연구소’의 홈페이지에서 ‘엔딩노트’ 또는 ‘메모리얼 노트’를 검색하면 김조환 소장이 집필한 엔딩노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구매한 책을 통해서만 엔딩노트를 작성할 필요는 없다. 엔딩노트 작성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대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는 것을 정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식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자유롭게 엔딩노트를 작성하면, 바쁘게 살면서 느끼지 못한 삶과 사람들의 고마움·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은, 모든 웰다잉의 실천이 그렇듯이, 조금 더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전환점을 제공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엔딩노트에서 더 나아가 법적 효력을 갖는 유언장 작성법이 궁금하다면 △굿바이메일닷컴(www.goodbyemail.com, 02-3776-9000) △마이윌(www.mywill.co.kr, 1588-3259)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www.kakdang.or.kr, 02-736-1928)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日‘슈카쓰’ 등… 앞서가는 웰다잉
일본은 이미 웰다잉 문화가 정착돼 있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먼저 진전됐기 때문에 웰다잉과 관련해서도 배울 점이 많다. 최근에는 웰다잉 문화 관련 신조어로 ‘슈카쓰’(終活·임종을 준비하는 활동), ‘하카토모’(墓友·수목장 친구)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슈카쓰는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일본의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단카이 세대’ (1947~1949년생)가 은퇴를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했다. 슈카쓰에는 장례식·상속을 준비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인생사를 정리한 홈페이지·블로그를 만들고 가족·지인에게 평소 전하고 싶었던 말이나 유언을 담은 ‘작별 영상’(farewell-video)을 찍는 등의 다양한 활동이 포함돼 있다.

경희대 송석원 교수(정치외교학)는 “오래 전부터 유교 문화권에서는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 미덕이었다”며 “슈카쓰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나를 기억해 달라’는 인사를 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카토모는 노년기를 함께 보내고 같은 나무에 묻히거나 뿌려질 친구를 뜻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말벗이 됨과 동시에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여행을 함께 가는 등 다양한 활동을 공유한다. 일본에서는 매년 3만명 이상의 노인이 홀로 죽음을 맞이해, 하카토모는 고독사(孤獨死·홀로 죽음을 맞음)에 대한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역시 홀몸노인이 올해 119만명에 달하고 2035년에는 현재의 약 3배에 달할 것으로 추측돼 고독사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다솜 기자 soyo@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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