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이슈이슈] 금융권 은퇴설계서비스 ‘허와 실’
[쉽게 읽는 이슈이슈] 금융권 은퇴설계서비스 ‘허와 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06.15 15:33
  • 호수 3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험사·증권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은퇴 시장에 은행권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주요 은행마다 은퇴 관련 연구소를 설립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지점마다 전문 인력을 교육·배치해 은퇴자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단순 재무 상담을 넘어 행복한 노후 준비를 위한 실질적 해답을 드린다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를 직접 경험한 고객들은 은퇴설계보다 연금·투자 상품소개에 급급한 실망스런 서비스에 불만을 터뜨린다. 올해 첫발을 내딛은 금융권 은퇴설계서비스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은퇴시장 2020년 2000조 ‘급성장’
은행들이 최근 ‘은퇴 상담가’를 자처하고 나선 이유로는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화된 점이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 호황기를 거쳐온 세대인 만큼, 기존 은퇴자들과 달리 경제적 여유가 탄탄하다는 점이 주된 공략 요인이다. 또 전체 인구의 15%인 760만명(2011년 기준)에 이르고, 앞으로 3년 동안 50대 이상 퇴직자는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던 은행으로선 새로운 시장이 열린 셈이다.

무엇보다 은퇴시장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8년 뒤인 2020년에는 현재의 3~4배 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은 200조원(퇴직연금과 개인연금 포함)에 달하는 시장이 2020년 680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국민연금을 포함할 경우 올해 은퇴자산 규모가 841조원에 이르고 2020년에는 1920조원으로 팽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은행들은 최대 강점인 ‘안정성’을 앞세워, 세대별 맞춤형 은퇴설계 서비스와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퇴직상품 영업대전’이 예상되기 때문에 은퇴 연구조직 신설 및 은퇴설계 서비스 강화 등 이미 소리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은행업계 ‘소리없는 영업대전’
KB국민은행은 오는 8월 말까지 ‘신(新) 은퇴설계시스템’을 개발해 영업점과 인터넷, 모바일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KB금융지주 산하 은퇴연구소 설립도 준비 중이다. 또한 은퇴설계서비스의 대중화를 위해 1200여개 영업점포에서 직원 1명씩을 선발해 ‘은퇴설계리더’로 육성키로 했다.

하나은행은 은퇴설계 브랜드를 ‘행복디자인’으로 정하고 단계별 은퇴 준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은행은 고객의 비재무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노년 설계를 완성하겠다는 포부 아래 은퇴설계 전문가인 ‘하나행복 디자이너’를 매년 100명씩 선발할 계획이다. 지점방문 고객은 누구나 간단한 설문조사를 통해 현재 재무상태를 토대로 한 은퇴 부족자금 산정, 상품 추천 등 연령대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우리은행은 고객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를 위한 전담팀인 ‘자산관리 클리닉’(Wealth Clinic)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산관리 서비스 대상인 고객을 기업체, 최고경영자(CEO)와 임원(가족), 종업원으로 세분화해 각 고객층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고액 자산가가 아닌 30∼50대 고객을 타깃으로 한 자산관리시스템인 ‘S-솔루션’을 통해 은퇴설계를 돕는다. 지금 시점에서 소득과 연령 등을 종합해 노후에 필요한 생활비를 산출하고 각 고객에게 맞는 연금상품을 추천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퇴설계프로그램과 시스템 개발 후 올 하반기부터 사실상 은퇴 자산시장의 영업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기존의 증권사와 보험사가 이미 시장 선점 전략을 펴고 있는 만큼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은퇴설계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은퇴설계·상품판매·서비스 품질향상 시급
은행들이 내놓은 은퇴설계 서비스를 보면 노후에 대한 걱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올해부터 시작된 은퇴서비스 품질은 아직까지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서울 관악구의 정 모(54·여)씨는 은퇴상담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얼굴만 붉히고 나왔다. 전문가들에게 자산관리에 대한 재무설계 및 상담 서비스를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준비자산, 은퇴 후 희망 생활비 등을 묻는 간단한 설문을 작성한 후 자산관리에 필요한 연금·저축 상품만 잔뜩 소개받았다. 은퇴준비를 위한 부족자금과 재무상황을 진단하면서 필요한 은퇴설계 상품을 추천해주는 식이었다. 은퇴설계에 필요한 정보는 상담 후 건네받은 작은 가이드북에 더 자세히 소개돼 있었다.

정씨는 “언론에서는 체계적이고 특화된 은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광고했지만 상담시간보다 상품 소개 시간이 더 길었다”며 “은퇴 고객을 위한 특화 서비스가 아니라 자사 은퇴상품을 판매하려는 수단처럼 느껴져 다소 실망스럽다”고 털어놨다. 이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현재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고, 재산을 재배분해 은퇴 후 30여년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확인했다”며 “은퇴 전까지 다른 은행의 은퇴설계 서비스도 직접 경험해보고, 꼼꼼히 비교한 후 투자처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미 은행권에서는 ‘은퇴고객 모시기’를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은 시작됐다. 아직 사업 초기라고는 하지만 고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주먹구구식 서비스 행정은 개선이 시급하다. 은행들은 업계 경쟁과 단순 상품 판매 목적을 넘어 서비스 품질 향상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저축은행의 연이은 부도사태로 은행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요즘, 은행이 퇴직 이후 삶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줘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보다 나은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인생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예비노년층에게는 은퇴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은퇴설계 서비스가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