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부부 가정폭력 ‘위험수위’ 대책 시급
노인부부 가정폭력 ‘위험수위’ 대책 시급
  • 장한형 기자
  • 승인 2012.06.15 15:35
  • 호수 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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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기간 늘어 갈등도 증폭… 개인·지역사회·범정부 차원 나서야

 지난 3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아내 권모(60)씨가 은퇴한 뒤 수년간 직업이 없는 남편 양모(57)씨에게 “생활비도 벌어오지 못한다”며 잔소리를 하자 술에 취해 있던 남편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아내의 가슴을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서는 최근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 김모(71)씨는 지난 5월 27일 집에서 아내(69)와 말다툼을 벌였다. 아내는 남편에게 “날마다 술만 먹고 뭐하느냐” “나한테 해 준 것이 뭐 있느냐”며 구박했다. 분을 참지 못한 남편은 아내의 급소를 폭행해 살해했고,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해 자택 인근 공원 화장실 옆 공터에 유기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전남 여수에서도 지난 5월 7일, 80대 노인이 부부싸움 중 아내를 폭행한 뒤 스스로 음독해 숨진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이 같은 노인부부간 가정폭력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평균수명 증가에도 불구하고 조기은퇴와 실업으로 노인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부부간 갈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가족부의 ‘2011년도 가정폭력상담소 운영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전국 가정폭력상담소에 전화 또는 방문 상담한 60세 이상 피해자는 전체 상담자의 8.1%에 달하는 7863명으로 집계됐다.

가정폭력을 상담한 60세 이상 피해자는 2005년 2547명, 2007년 4462명, 2009년 5374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체 상담자 중 차지하는 비율도 2005년 3.4%에서 2007년 4.6%, 2009년 5.5% 등으로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04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가정폭력 전국실태조사에서도 노인부부의 신체적 폭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부부의 지난 1년간 신체적 폭력발생률은 7.1%로 조사됐다. 이는 노인부부 7쌍 중 1쌍이 1년에 1회 이상 배우자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하거나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 정서적 폭력(23.9%)을 비롯해 방임(15.4%), 경제적 폭력(5.3%), 성학대(3.1%) 등의 순으로 밝혀졌다.

특히, 2007년에는 노인부부간 폭력발생률이 15.3%에 그쳤지만, 2010년에는 31.7%로 늘어났다. 노인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유형은 정서적 폭력이 가장 빈번했다. 정서적 폭력발생률은 2007년 11.0%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23.9%로 크게 증가했다.
이처럼 노인부부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은 성격차이나 사소한 말다툼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급격히 변질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실태조사 결과, 2007년엔 남편의 아내폭력과 아내의 남편폭력 모두 사소한 말다툼(24.1%, 28.0%)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성격차이(21.5%, 23.7%), 상호이해부족(14.6%, 15.6%)이 뒤를 이었고, 경제적 문제는 각각 8.8%, 9.5%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2010년 조사에서는 성격차이(41.9%, 43.1%)에 이어 경제적 문제가 각각 23.2%, 29.6%로 껑충 뛰어올랐다.

평균수명 증가에 따라 부부의 동거기간도 그만큼 늘어나 노인부부의 갈등과 가정폭력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국민 10명 중 7명 가량은 평균수명 증가로 인해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부간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저출산·고령화 사회갈등·국민인식 조사’에서 여성의 71.9%, 남성의 66.4%가 ‘남편을 돌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져 부부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노년기에는 퇴직 후 경제력을 상실한 남편과 평생 남편에게 억압받으며 살아온 부인 사이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면서 갈등과 폭력이 심화될 수 있다. 노년기에 경제력과 권위를 상실한 남편이 의식주 대부분을 아내에게 의지하는 반면 여전히 가사에는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를 비롯해 다양한 지역사회 참여 프로그램, 노년기 부부관계 전문 프로그램 등을 적극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10년 현재 전체 부부가구에서 노인가구는 39%에 불과했지만 2030년에는 54.2%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지역사회·범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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