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희 대한노인회 이사,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나눔은 주고받는 이가 함께 행복해지는 가장 밝은 빛”
윤순희 대한노인회 이사,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나눔은 주고받는 이가 함께 행복해지는 가장 밝은 빛”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06.22 15:55
  • 호수 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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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20년도 넘은 낡은 냉장고와 TV를 사용하고, 옷도 손수 꿰매 입는다면 이를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이런 검소한 삶을 살면서 수십년 동안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면, 이보다 더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있을까.

하지만 이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덕과 교훈을 전하며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를 삶에서 실천해 온 이가 있다. 낡은 내복을 손수 꿰매 입으며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도 30년 넘게 수억원에 달하는 기금을 남몰래 기부해 온 윤순희(84) 대한노인회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주위를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그의 선행은 감추려 해도 감출 수가 없었다. 최근 한 지인에 의해 그의 기부활동이 알려지면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까지 수상했다. ‘자신에게 철저하되 남에게는 너그럽게 베푸는’ 진정한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윤순희 이사를 만나 지금까지 감춰왔던 그의 따뜻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민훈장, “남들 다 하는데, 부끄러울 뿐”

윤순희 이사는 불우이웃돕기 등 서민생활 안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월 15일 김황식 국무총리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문화훈장국민장에 해당하는 동백장은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큰 상이다.

국민훈장 수상소감을 묻자 그는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뜻하지 않은 큰 상을 받게 돼 기쁨보다는 책임감이 더욱 크다”며 “남들 몰래 조용히 하려던 일인데 훈장까지 받게 되니 그저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누굴 돕겠다는 생각보다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이 눈에 보이니까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라며 “세상에 알리려고 한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말없이 남몰래 돕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그는 자신의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다. 지인들이 그를 훈장 수상자로 추천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상 전 날에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 잠까지 설쳤다. 김황식 국무총리로부터 훈장을 받을 때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왈칵 눈물도 쏟았다.

하지만 윤 이사는 훈장을 받은 이후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훈장을 받았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시는 더 훌륭한 분들을 대신해 수상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을 뿐이다. 더 낮은 마음가짐으로 ‘국민훈장’이라는 이름과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얼굴 없는 천사… 30년 간 10억여원 쾌척
윤 이사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보면 마음보다 행동이 앞선다. 전쟁을 겪으며 모진 고생 끝에 작은 중소기업을 일궈 냈기 때문에 누구보다 어려운 이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따로 기부를 결심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어려운 이웃의 마음을 잘 알기에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연말연시 또는 명절 때가 되면 그의 마음은 소년소녀가장, 홀몸노인 등 불우이웃들을 향한다. 1995년부터 18년 동안 성금을 비롯해 쌀, 연탄, 의류 등을 매해 기부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는 떡, 과일, 음료 등 명절맞이 음식들도 손수 마련해 함께 전달하고 있다.

윤 이사의 선행은 국가재난 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2001년, 2002년, 2007년 극심한 수해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는 자비를 털어 지자체와 군부대에 부족한 수방자재를 공급했다. 뉴스에서 모래를 넣는 포대가 부족해 수해방지용 둑을 쌓을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곧바로 행동에 옮긴 것이다. 당시 경기 시흥, 서울 종로를 비롯한 4개 지자체와 군부대에 43만장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시가로 8000만원에 달했다.

윤순희 이사는 “나눌 때의 기분을 알면 베풀지 않고는 못 산다. 주고서 바라는 건 진정한 나눔이 아니다. 물질이든 사랑이든 고여 있으면 썩는다. 작은 물줄기라도 흘러야 더 큰 강을 이룬다”며 자신의 기부철학을 밝혔다.

특히 그는 홀몸노인 등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늘 경로효친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엄격한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그래서 그는 30여년 전부터 종로구 내 불우노인을 위한 경로잔치를 매해 열고 있다. 겨울이 되면 홀몸노인들에게 월동용품과 생필품 등도 지원한다. 또 형편이 어려운 지역 경로당 3~4곳에 월동 연료비를 수년째 지원하고 있다. 올 설에도 인근 경로당 3곳에 쌀 10kg들이 100포를 기증했다. 최근에는 불우노인을 돕기 위해 대한노인회에 2000만원의 성금을 맡겼고, 새로 출범한 노인지원재단에는 5000만원을 기탁했다.

이처럼 수많은 기부를 실천해 온 윤순희 이사. 그가 지난 20년 동안 남몰래 베푼 기부금 총액은 지자체 및 기관에서 확인 가능한 것만 합쳐도 4억원에 달한다. 지인들은 소년소녀가장·불우청소년 돕기 후원금, 화재민 돕기 성금 등 기부 액수를 확인할 수 없는 것들까지 모두 합치면 족히 1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윤 이사는 “기부는 내가 했다고 알리는 순간 그 가치와 의미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라며 “나눔을 통해 내가 준 것보다 받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그의 완고한 뜻을 꺾지 못하고 모든 기부금과 물품은 시청·구청·동사무소를 통해 수혜자들에게 기증자 이름 없이 전달됐다.

▲돈의 참가치 아는 진정한 사업가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윤순희 이사.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만큼은 매우 엄격하다. 현재 주거용 건물 개발 및 공급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대표로 일하고 있지만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종로구에 자리한 작은 단독주택이다. 사업 시작 전 전세 4만원에 살던 집을 구입해 52년째 살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집에는 그 흔한 소파 하나 없다. 20년된 시커먼 냉장고와 구형 칼라TV가 그의 근검절약하는 생활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침대도 없이 맨바닥에서 생활하는 그는 덮는 이불도 손바느질을 해 손수 만든 것을 사용한다. 심지어 내복이 해지면 기워 다시 입을 정도다.

이러한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물질과 돈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내 것은 아무 분별없이 내어주고 나 이외의 것에 따스한 눈길을 보내면 원망과 불안이 사라지고, 평화와 편안함,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불경의 가르침이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는 “물질은 쓰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며 “돈은 우리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물질이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그 가치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다. 윤 이사는 어릴 적부터 나눔과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6·25전쟁 당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는 난민구제 봉사활동에 참여해 어려운 이웃을 돌봤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는 이미 20대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대(代) 이어 나눔실천하는 가풍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회로부터 얻은 소득은 얼마라도 반드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어머니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그가 아들 형제의 장남 홍영준(50), 차남 홍영대(47)씨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현재 대학교수와 의사로 사회활동하는 형제는 이러한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다방면에서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수년전부터 쌀 수백 포씩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고 있다. 대를 이어 사회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윤순희 이사는 “나눔을 통해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어미의 뜻에 따르는 아들들이 내게는 가장 귀한 재산”이라며 “남을 도왔다고 생색내지 말고, 사랑을 나누고 흘려보낼 곳이 없는지 주위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

나눔의 기쁨을 공유한 윤순희 이사의 가족애는 지역에서도 칭송이 자자하다. 매주 일요일마다 두 아들 내외가 모여 즐거운 가족모임을 갖는다. 부녀간에 자필로 쓴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한다. 국민훈장 소식을 전해들은 중학생 손자(홍지수·14)가 할머니에게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했을 정도다. 올 여름에는 훈장수상을 기념해 3대가 함께 동남아로 첫 가족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다.

‘작은 것도 나누면 더욱 커진다’는 진리를 가풍으로 이어가고 있는 윤순희 이사. 그는 “자손들에게 나눔의 기쁨을 유산으로 물려 준 것이 훈장보다 더 값지다”고 말한다.

▲“노인요양병원 건립이 마지막 꿈”
윤순희 이사의 나누는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대한노인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병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과 함께 오갈 데 없는 가난한 노인들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는 요양병원을 건립하는 것. 현재 경기 시흥시 조남동에 부지를 매입했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토건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윤순희 이사는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했지만 고령의 어르신들을 위한 전문요양병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외롭고 돈 없는 홀몸노인들이 마음 편히 쉬며 치료받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을 짓고 나면 작은 공간을 마련해 직접 접은 종이학 수천 마리와 옛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항아리, 장독대, 장작, 하루방 등이 꾸며진 풍속전시관을 만들고 싶다”며 “입원한 어르신 환자들과 함께 나도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부천사 윤순희 이사. 그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르신들과 함께 희망을 노래할 날을 꿈꾸며 며칠 전부터 피아노로 ‘아리랑’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툴게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윤 이사의 모습을 보며 그가 국민훈장을 받게 된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매 순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모습이 수억원의 돈보다 더 가치있게 느껴졌다.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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