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세대를 이해합시다④_ 1020세대
경쟁으로 외로운 1020세대, ‘공감’ 원해… 대안 사회 꿈꾸기도
자녀세대를 이해합시다④_ 1020세대
경쟁으로 외로운 1020세대, ‘공감’ 원해… 대안 사회 꿈꾸기도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06.22 15:58
  • 호수 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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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힘들지만, 경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세대

 

인구고령화로 최근 평균수명이 급격히 늘면서 인생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인구 사이에 많게는 30~40년의 연령차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흔히 생물학적 관점에서 아이가 성장해 부모가 될 때까지의 기간으로 구분하는 30년의 세대(generation)가 전기노인과 후기노인 사이를 벌려 놓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70~80대 어르신들에게 40~50대는 ‘철없는’ 자녀세대의 범주에 속합니다. 특히 1960~70년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한국사회의 격동기 당시 40~50대였던 70~80대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헌신으로 가능했던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과실을 먹고 자란 40~50대와 세대차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본지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노년세대간 또는 노년세대와 자녀세대간 소통과 공감의 장을 마련하고자 70~80대 어르신들이 40~50대 자녀세대와 10~20대 손자손녀세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각각 2회씩 모두 4회에 걸쳐‘자녀세대를 이해합시다’란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 1020세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모세대의 높은 교육열 속에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편 부모의 헌신에 대해 일종의 부채감을 갖고 있다. 사진은 학생들이 입시를 준비하며 공부하는 모습.
1020세대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경쟁’이다. 그들은 학업·외모 등 모든 분야에서 앞서야 한다는 압박감을 지녔다. 이런 그들의 심리를 헤아릴 수 있다면, 1020세대의 다양한 특징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엄친딸’(‘엄마 친구의 딸’의 줄임말),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의 줄임말)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완벽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부모님 친구의 자식’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1020세대 부모의 대부분은 “엄마 친구 딸 ○○는 이번에 또 전교 1등을 했다”는 식으로 자식과 타인을 빈번히 비교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는 자식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통해 학업에 대한 동기를 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엄친딸’ ‘엄친아’라는 말이 1020세대를 중심으로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 자주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의도가 무엇이든 그들은 늘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때로는 직접적인 요구 속에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감은 그들의 심리와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전체 사회구성원이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소위 말하는 성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배 가능한 재화와 자원은 한정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 운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적 특성상 이미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높다.

이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 중 하나다. 그리고 1020세대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환경)에 의해서든, 이러한 진실을 부정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무한 경쟁… 부모에 대한 ‘부채감’
1020세대 대부분은 상위 1%, 5%, 10% 진입을 목표로 끝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이처럼 과도한 경쟁은 그들이 당면해 있는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다. 1020세대의 부모인 4050세대는 자식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비의 많은 부분을 자녀 교육에 할애했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정체된 소비, 증가 여지는 크다’는 주제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가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 6.7%로 미국(2.4%), 일본(2.1%)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또한 대학진학률도 1990년 33%에서 2009년 81%까지 증가, 등록금은 필수적인 지출 항목이 됐다. 이처럼 부모가 1020세대의 교육을 위한 지출을 아끼지 않을 때, 1020세대는 부모세대에게 감사와 동시에 큰 압박감을 느끼며 성장했다.

올해 4월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학생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학생과 교수 등 5명이 자살한 후 1년 만에 다시 벌어진 비극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의 잇따른 자살 이유는 학점에 따른 징벌적 수업료 제도, 전면 영어강의 실시 등 지나친 경쟁 위주의 학내 제도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재학생들의 총장 퇴진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카이스트 자살 사태’는 현 한국사회와 1020세대의 단면일 뿐이지만, 의미심장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수재라고 여겨지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카이스트 학생들조차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목숨을 끊고 있는 지경이라면 사태는 심각하다.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1020세대의 열등감은 더욱 심각하다. 부모가 자신에게 쏟은 헌신만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들 대다수는 늘 마음 한 곳에 부모세대에 대한 ‘부채감’을 갖고 살아가기도 한다.

경희대 4학년 백진주씨는 “한 학기 300여만원의 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이 늘 바쁘게 사신다”며 “나 때문에 부모님이 여유 없이 각박하게 사시는 것 같아 늘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고 말했다.

▲모바일 장치로 주고받는 ‘공감’
1020세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tablet·손가락이나 터치펜으로 조작할 수 있는 소형 컴퓨터) 등의 모바일 장치(휴대하기 간편한 컴퓨터 장치)로 세상과 소통한다. 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근황도 알린다. 일상뿐만 아니라 관심이 있는 뉴스와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기도 한다. 즉,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게시하고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중 1020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공감’이다. 이런 경향은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글을 공유하게 해주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사회적 연결망 서비스) 중 하나인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페이스북은 국내에서만 700만 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1020세대가 전체 사용자의 33% 이상(랭키닷컴 분석)을 차지한다.

이처럼 젊은층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페이스북에는 ‘좋아요’라는 버튼이 있다. 친구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 버튼을 눌러 자신이 이 내용을 좋아하거나 공감한다는 뜻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감을 중시하는 문화는 다른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다음(daum)’ ‘네이트(nate)’ 등에는 사이트 측에서 관리하는, 자신의 생활담·목격담 등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다. 이곳은 아주 사소한 생각부터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다. 역시 글쓴이들은 최다 추천을 받기 원한다. 많은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20세대는 왜 ‘공감’과 ‘소통’에 집착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개인화된 생활양식을 지니고 있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타인에게 정서적인 공감과 지지를 받고자하는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등의 저자이자 철학자인 제레미 리프킨 역시 2010년 출간된 ‘공감의 시대’를 통해 “적자생존 대신 공감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타인의 정서적 공감과 위로를 원하는 1020세대의 바람이 그들에게 가장 친숙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안을 꿈꾸는 청년들
지금 1020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1등이 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행복은 부와 명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와 조화하는 과정을 통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된, 경쟁만을 위한 경쟁은 1020세대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물론 모든 청년들이 이 같은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0년 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의 평범한 재학생이었던 김예슬은 자퇴를 선언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김예슬 선언’을 통해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 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중략)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라고 심정을 밝혔다.

이어 지난해에는 서울대생, 올해는 연세대생이 공식적인 자퇴 선언을 했다. 세 사람은 무한 경쟁의 트랙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 물론 소수 청년들의 움직임만으로 사회가 쉽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다수의 1020세대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크다.

경쟁이 힘들지만, 경쟁으로부터 빠져나올 방법을 모르는 세대. 첨단 모바일 장치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사회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앞으로도 늘 외로울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1020세대뿐만 아니라 부모와 조부모 등 모든 세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끝>
이다솜 기자 soyo@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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