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이성 만남, 황혼의 행복(상)
“새로운 이성 얼굴 보며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설레”
노년의 이성 만남, 황혼의 행복(상)
“새로운 이성 얼굴 보며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설레”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07.06 15:21
  • 호수 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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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이성간 짝을 맺어주는 공개미팅, 이른바 ‘황혼미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남자와 여자는 일곱 살만 돼도 붙어 앉으면 안 된다는 옛 이야기를 따르자면 참으로 망측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같은 유교적 이념만 붙들고 살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도 많이 변했습니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해 홀몸이 된 어르신들이 새로운 짝을 만나는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노인단체나 관련 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도 있고, 더러는 어르신들 스스로 짝을 맺기도 합니다. ‘황혼미팅’을 원하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아직은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말처럼 쉽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습니다. 무엇이 걸림돌이고, 그 장애물을 극복한 어르신들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찾아왔을까요. 백세시대이 사랑을 쫓는 어르신들의 좌충우돌, 그 설렘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편집자주>

▲ 어르신들이 이성과의 만남에서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임 가운데 대화를 나누고 젊은 시절 설렘의 감정을 다시한번 느끼는 것이다. 사진은 실버미팅에서 웨딩드레스와 정장차림의 어르신들이 일대일로 교제하는 모습. 사진=광진노인종합복지관
만화와 영화로 소개된 ‘그대를 사랑합니다’란 작품에서 ‘고집쟁이 영감님’과 한 많은 생을 살아온 ‘이쁜 할머니’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황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어르신들의 현실을 잘 보여준 사례다.

이른바 ‘황혼미팅’은 대체로 인구보건복지협회를 비롯해 노인회나 노인복지관, 관련 기관이 마련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광진노인종합복지관이 서울시 사회복지기금 지원사업으로 지난 4월 6일부터 6월 29일까지 3개월 동안 ‘한(single) 어르신의 한(大) 사랑을 위한 착한만남’을 주제로 진행한 ‘최고의 사랑’ 행사다. 남녀 어르신 각각 15명씩, 총 30명이 세 달 동안 매주 금요일 만남을 가졌고, 그 결과 2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이 복지관은 오는 9월 문을 여는 ‘최고의 사랑’ 2기 프로그램 참가자를 7월 9일부터 8월 24일까지 모집한다.

▲“잠깐의 대화에도 답답함이 풀렸다”
참여 어르신 대부분의 기대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것이었다. 커플로 맺어져 사귀지는 않더라도 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이성과의 어울림 속에 얼굴을 바라보고 대화하며 설렘, 감정의 교류를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이다.

한 여성 어르신은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고 남자친구에게 할 말이 따로 있는데 주변에는 여자밖에 없어 해소할 수 없는 말들이 쌓여왔고, 내 한 부분은 그렇게 죽어있었다”며 “이 자리에 와서 (남성 어르신과) 말을 하니 소통 되며 풀렸다”고 전했다.

한 어르신은 살짝 살짝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얹는 등 가벼운 스킨십 위주의 ‘포크댄스’보다는 여성과 일대일로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즐겼던 ‘실버미팅’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성과의 대화에 얼마나 갈증이 심했던지 14회라는 제한되고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0명의 참여 어르신들은 초·중등 학창시절 소꿉동무의 우정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관절염으로 몸이 조금 불편한 상태에서 참가했다는 한 남성 어르신은 커플이 되지 못한 것에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커플이라는 형태의 교제보다는 모임 속 이성과의 어울림이 즐거운 듯했다. 포크댄스 시간에도 여성어르신의 춤을 보며 “내가 봐줄게” “잘 하는데”라며 연신 웃고 즐겼다. 어르신들은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대화, 그리고 남이섬 여행 등 여러 활동 가운데 만남을 즐거워했다.

여성 어르신들은 이성과의 가벼운 스킨십에도 설렘을 느꼈다. 한 여성어르신은 “처음 봤을 때는 서먹서먹하기만 하고 ‘내가 왜 왔을까’ 후회도 했는데 포크댄스를 추며 남자 손을 잡기에 앞서 설레는 감정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60대 중반의 김모 어르신은 “내 평생에 남자 손을 그렇게 많이 만져본 기억은 없었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전했다.

남이섬 여행에서는 남녀 어르신들이 깍지 낀 두 손을 풀지 않았고, 6월초 여행 후에는 심심찮게 복지관 밖에서 식사나 차도 마시며 만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이성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최고의 사랑’을 기획한 광진노인종합복지관 황준식 팀장은 프로그램의 꽃이었던 ‘실버미팅’ 시간에 여성 어르신들의 들뜬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애초 예상한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여 넘게 모두 곱게 화장하고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었고, 남성어르신들도 정장차림으로 행복해하며 대화를 나눴다.

어르신들이 내심 요구한 또 다른 바람은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남성 어르신들보다도 성적으로 더 억눌렸던 여성어르신들은 프로그램 내내 표출되지 못했던 욕구를 쏟아냈다. 여성 어르신들은 남성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는 가운데 “내가 꼬드겨 만난 경우도 많다. 나이는 많지만 꽃뱀”이라며 농담하는 등 그동안 감춰왔던 욕구와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커플로서 사귀길 원하며 젊은이 못지않게 대담하고 적극적인 어르신들도 있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나눴던 첫 시간에 이미 마음에 드는 여성을 점찍어뒀다가 연락처를 알아내고 자신의 여자친구로 사귀면 안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이성만남 기회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매우 국한된 장소와 프로그램에 한정된다. 어르신들이 개방된 분위기 속에서 이성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관련 단체나 기관을 통한 만남 행사도 대한노인회 서울 강동구지회가 지난해 7월 마련한 ‘황혼의 멋진 만남-골드미팅’ 행사를 비롯해 인구보건복지협회, 서울 광진노인종합복지관과 인천시 노인종합문화회관의 프로그램 등이 전부다.

하지만 이들 행사도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으로 진행되는 한시적인 사업에 그치면서 기간이 너무 짧아 어르신들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광진노인종합복지관 행사에 참여한 어르신들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가장 아쉬워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에만 모임이 있었고, 총 14번 만났을 뿐이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만남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 현재 이성 만남을 원하는 어르신들의 불만이다.

어르신들이 이성과의 만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모임이 이뤄져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이성과 대화를 즐기는 한편 여행 등을 함께하는 공간과 여건이다.

자연스러운 모임을 주도할 프로그램도 부족하다. 어르신들은 대화든 감정의 교류든 이성과의 만남을 위해 고작 ‘콜라텍’에 들어가야 하는 현실이다.

어르신들의 건강도 간혹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모임 속에서 이성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당장 ‘커플’로 맺어져 이성교제를 기대하고 참여하는 경우 건강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은 상대 이성집단의 데이트 상대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절염으로 인해 다리가 불편해 눈에 띄게 절뚝거리며 걷는 남성 어르신에 대해 여성 어르신들은 잘 챙겨주는 듯 하면서도 정작 일대일 만남에서는 외면했다.

광진노인종합복지관 행사에서 한 여성어르신은 남성에 대해 “다들 보기 좋지만 ‘멋쟁이’가 한 명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만큼 이성의 외모와 건강에 민감하다.

광진노인종합복지관 측도 어쩔 수 없이 다음 행사부터는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은 신중하게 선발할 계획이다. 적어도 포크댄스 등 체력소모가 큰 활동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건강과 체력은 확인할 예정이다.

▲노인 인식 개선과 함께 ‘이성 만남’ 문화 형성돼야
새로운 이성을 만나기 원하는 어르신들은 우리사회가 황혼의 이성교제를 관대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아직까지 어르신들의 성적인 욕구나 이성에 대한 관심, 나아가 이성과의 만남을 금기시하거나 생소하게 여기는 사회 풍토가 매우 팽배하다.

이번 광진노인종합복지관의 행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홀몸 어르신들이 만남을 지속하려면 가장 먼저 ‘홀몸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아울러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이성 만남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이번엔 잘 꼬드겨 봤냐”는 등 비아냥거리는 듯한 농담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동안 어르신들의 만남 행사에서 일부 어르신들은 배우자가 있는데도 마치 홀몸노인인 것처럼 속이고 참가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 같은 일도 어르신들의 건전한 이성 만남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이 때문에 이성 만남 주관기관은 반드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받아 참여 어르신이 법적으로 ‘홀몸 어르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르신들이 자칫 간통이나 재산상속 등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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