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에 대한 고정관념
노년층에 대한 고정관념
  • 관리자
  • 승인 2006.12.15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두 27명을 배출한 조선시대 왕의 평균수명은 43.3세라 한다. 일반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이보다 훨씬 짧아 40세 미만이라는 주장도 있고, 심지어는 27세였다는 충격적인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단명 시대에도 예외적으로 장수한 사람들은 있다. 황 희(89) 정승, 남구만(82), 퇴계 이 황(69) 등을 비롯한 조선시대 청백리의 평균수명은 68세였으며, 영중추부사 권 황과 청담파(죽립칠현)인 홍유손은 모두 99세까지 살아 최장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8.2세다. 앞으로는 평균수명이 더 길어져 2020년에는 81세가 되어 우리나라는 일본(84.7세)에 이어 세계 2위의 장수국가가 될 전망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고, 또한 보람 있는 후반기 인생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된 김준민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는 아주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는 93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들풀에서 줍는 과학’이라는 환경연구서를 냈다. 33년간 서울대 사범대 생물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9년에 65세로 정년퇴직을 한 그는 퇴임 후 지금까지 8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한다. 그는 왜 책을 쓰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젊은 후배들이 생명공학의 기초가 되는 생태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책을 쓴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김 교수의 이야기는 작년 11월, 96세를 일기로 타계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1909~2005)를 연상시킨다. 그에게는 60세부터 30년간이 생애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드러커는 평생 35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베스트셀러들이 거의 이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책인 35번째 책도 작년에 그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에 나왔다.

 

드러커가 별세하기 전 페루의 미술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 기자가 그에게 무엇 하려고 그런 연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람은 언제부터 늙는 줄 아시는가요. 그것은 호기심이 없어질 때부터지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뜰 때까지 왕성한 지적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드러커에게 언제 은퇴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나는 은퇴를 할 생각이 없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열정적인 삶이었는가.


김 교수나 드러커에 비해서는 한참 젊지만, 문학평론가이자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지난 11월, 72세에 첫 시를 발표했다. 그는 내년에는 시 20여편을 모아 시집도 낼 작정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이미 문단생활 50년을 정리하면서 30권의 전집을 냈지만 “앞으로 펴내고 싶은 것은 시집”이라면서, 시에 대한 애정과 의욕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가슴 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의 은총이라고 그의 시 안에 썼는데 이제 그 간절한 소망을 이룬 셈이다. 이 교수는 뒤늦게 시작을 시작한데 대해 “비평가가 쓴 시가 아니라, 오랫동안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사람이 쓴 작품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70세가 넘어서 시인이 된 셈이니 이 역시 멋진 인생 후반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노년층에 대한 고정관념이 심한 편이다. 70세가 넘었다고 하면 무조건 ‘퇴물’로 취급하거나 ‘한물 간 사람’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더구나 이념적인 면에서는 ‘보수 꼴통’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지난 2004년 3월 총선 때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실언이다.

 

그는 당시 대구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최근에 변화가 왔고, 촛불집회의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다.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고 말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꼭 그분들(60~70대)이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며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중에 말썽이 일자 이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했지만 이로 인해 큰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는 이렇듯 노년층을 퇴물시하는 경향 때문에 노인의 나이를 신문지상에 공개하지 않는 관행이 우리 언론계에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시형 박사는 지난 11월 중순 제주도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열린 ‘언론인의 빛나는 인생 후반전 만들기’ 세미나에 참석해 ‘노년파워’라는 주제로 발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아직 우리 사회에는 ‘노인은 퇴물’이라는 고약한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한창 활동하는 노년층의 나이를 보도하면 사업에 지장을 준다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이 박사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여자의 나이처럼 노인의 나이도 신문지상에 공개하는 것이 실례라는 인식이 생길 날도 머지않아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노년층은 무조건 퇴물이라는 관념은 이제 없어질 때가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