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이성 만남, 황혼의 행복(하)
황혼의 사랑, 나이는 스스로의 굴레일 뿐… 마음 열면 행복이
노년의 이성 만남, 황혼의 행복(하)
황혼의 사랑, 나이는 스스로의 굴레일 뿐… 마음 열면 행복이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07.13 16:32
  • 호수 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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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이성간 짝을 맺어주는 공개미팅, 이른바 ‘황혼미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남자와 여자는 일곱 살만 돼도 붙어 앉으면 안 된다는 옛 이야기를 따르자면 참으로 망측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같은 유교적 이념만 붙들고 살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도 많이 변했습니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해 홀몸이 된 어르신들이 새로운 짝을 만나는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노인단체나 관련 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도 있고, 더러는 어르신들 스스로 짝을 맺기도 합니다. ‘황혼미팅’을 원하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아직은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말처럼 쉽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습니다. 무엇이 걸림돌이고, 그 장애물을 극복한 어르신들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찾아왔을까요. 백세시대이 사랑을 쫓는 어르신들의 좌충우돌, 그 설렘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편집자주>

▲ 어르신 미팅 행사에 참가한 남녀 어르신 커플이 손을 맞잡고 활짝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연합>
인천시와 인천노인문화회관이 추진 중인 어르신 합독(合櫝)사업 ‘만남의 날’ 행사는 인천에 거주 중인 만 60세 이상 홀몸 어르신들에게 이성과의 인연의 장이 되고 있다. 합독(合櫝)은 부부의 신주를 한 독에 같이 넣는다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오는 8월이면 5회를 맞아 벌써부터 어르신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멀리 부산에서도 문의할 정도다. 하지만 남녀 어르신 20명씩 모두 40명이 참가하는 행사에서 커플로 맺어지더라도 만남의 지속 여부는 어르신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커플을 맺어 잘 만나다가 성격이나 사고방식, 생활습관 등의 차이로 결별하기도 한다.

지난 5월 30일 제4회 ‘만남의 날’ 행사 참여 후 커플이 된 김기덕(남·64·가명)씨는 합독행사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린 남성이었다. 그가 상대 여성(여·67)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동일한 인생관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신앙심도 두터웠다.

교제를 넘어 결혼을 생각한다면 두 어르신이 넘어야 할 산은 높다. 하지만 김씨는 “상대 여성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커플”이라고 강조했다.

▲“젊었을 때보다 더 설렜다”
김기덕씨는 “(젊었을 때보다) 더 설렜습니다. 지금 사귀는 여성은 지혜롭고 침착합니다. 처음 봤을 때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 내면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노년기에는 누구나 외롭지만 저를 비롯해 특히 홀몸노인들의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사람과의 지속적인 만남’ 자체가 어렵기 때문인지 젊은시절보다 이성 교제에 대한 갈망도 더 간절하다”며 “행사에 참여하며 20대, 30대보다 더 설렜다”며 꼭꼭 감추고 숨겨뒀던 ‘이성에 대한 관심’을 하나 둘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모두 20대와 30대 때의 사랑에서는 실연하고 실망하며 상처도 많이 받았다”며 “노년기에 들어 깊은 외로움 가운데 인연을 찾으며 새로운 느낌과 감동으로 더 설렜다”고 전했다.

젊은 날의 상처만큼 지혜도 쌓였고, 여생을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고 밝힌 김기덕씨는 자신의 인생계획에 동참하리라는 판단이야말로 상대 여성에게 프로포즈한 이유라고 밝혔다.

합독행사 당시 김씨는 상대 여성의 첫인상에 대해 지적이고 온화함, 그리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회상했다. 이미지가 기품 있고 편안했다. 행사장을 찾은 용기와 적극성도 좋았다. 김씨는 서로 다독이며 여생을 가꿀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루 동안 남녀 20명씩 각자 자기소개를 한 이후 허브체험, 미니 게임, 대화와 댄스 등에 참여하며 서로를 탐색하고 파트너를 정했다. 김씨는 행사 당일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그는 “알고 보니 8명이 나를 교제 희망 남성 1순위로 꼽았다”며 “인기를 짐작했지만 현재의 여자 친구만 눈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비슷한 인생관에 마음 빼앗겨”
“아직 결혼을 얘기하기는 이르죠. 하지만 삶의 가는 길, 방향이 같아 벌써 속내 다 털어놓고 단짝이 됐습니다. 노년기에 지혜로운, 정말 좋은 친구를 얻었어요.”

여생의 반려자를 찾아 기쁠 뿐이라고 밝힌 김씨는 상대 여성을 “지혜롭고 아름답다”고 재차 강조했다.

상대 여성은 세 살 위 ‘연상의 여인’이다. 김기덕씨는 대통령 경호원을 했을 정도로 키도 크고 건장한 체격이다. 상대 여성도 동년배 평균보다 큰 키다. 그는 “만날수록 인생관이나 예쁘고 바르게 살려는 마음가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김씨는 합기도와 검도는 권위자다. 배드민턴 등 운동을 즐긴다. 상대 여성도 운동이면 운동, 춤이면 춤, 다재다능하다.

14년 전 성격 차이로 이혼한 김기덕씨. 2남3녀의 자녀들과도 소원해져 상대 여성을 만난 현재까지도 그의 삶의 원동력은 스포츠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이제껏 외로움을 달래줬고 너무 큰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붙들어줬다.

조심스럽게 홀몸이 된 사연을 꺼낸 그는 “중요한 것은 현재가 아니겠느냐”며 이혼하며 모든 재산을 다 내줬지만 현재는 신경써주는 제자들도 많아 체육행사 심사 등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여생은 예쁘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도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한 홀몸이었지만 문화회관 등을 찾아다니며 정보도 얻는 등 적극적이었다”며 “더 많은 홀몸 어르신들이 나처럼 기쁨을 누리고 행복한 여생을 꿈꿨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좋은 사람과 인연 ‘인생 승리’”
“굳이 이성교제가 아니라도 생각이 같고 인성이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은 ‘인생의 큰 승리’라고 봅니다.”

김기덕씨는 돈이나 명예 등이 이성을 고르는 기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주변에서도 사귈 만한 사람을 소개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생각을 나누는’ 만남이었다.

그는 “여자친구의 마음이 변치 않는 이상 제 마음도 영원할 것”이라며 “슬기롭고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마냥 기쁘다”며 입이 귀에 걸렸다.

김기덕씨는 “제 주변에도 ‘이 나이에 다 늙어 무슨 이성교제냐’며 새 이성과의 만남을 포기하는 홀몸 어르신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깊은 외로움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특히 그는 “아직까지 어르신 세대 대부분 유교문화에 젖어 이성교제를 당당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특히 홀몸 어르신들의 경우 나이에 얽매어 속으로 삭이지 말고 마음을 확 열고 나처럼 행복한 여생에 도전해 환경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노인도 노력으로 만남 가꿔야”
어르신들의 만남도 다른 연령대의 만남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커플로 맺어졌더라도 만남을 지속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의 행사로 지난해 성사된 44쌍의 경우에도 현재까지 모두 만남을 지속하는 것은 아니다.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관계자는 “인천시와 문화회관 측도 결혼으로 이어지는 어르신 커플을 기대하지만 어르신들의 만남도 여느 연령대의 관계처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수”라며 “이별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르신들은 재산 문제를 둘러싼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제 지속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전했다.

커플로 맺어지더라도 서로 가족에게 소개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등 상대 가족과 만나기까지 부딪히는 심리적인 장벽은 만만치 않다.

성격이나 사고방식, 생활습관 차이 등을 이유로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남녀 구별 없이 데이트 비용을 대거나 여자가 데이트를 주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데이트 주도는 남자가 해야 한다는 여성 어르신도 있다. 후자의 경우 남성 어르신의 연락이 뜸하면 급속히 냉각기에 빠지는 등 감정적인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또, 만남에 대한 기대치의 차이로 결별하기도 한다. 만남 행사에서는 상대방의 경제력을 확인할 수 없고 만나면서 경제력이 자신과 다르거나 기대치에 어긋나면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이같은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만남' 행사를 통해 커플로 맺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은 더욱 중요하며, 특히 이성간 교제에 앞서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은 기본으로 지적된다.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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