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고령인력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기업, 채용과 함께 은퇴 앞둔 직원 전직교육 책임져야”
고령화 시대, 고령인력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기업, 채용과 함께 은퇴 앞둔 직원 전직교육 책임져야”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09.14 16:34
  • 호수 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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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에 따라 향후 고령인력의 활용 여부가 국가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또, 인구정책적 측면에서도 전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고령자에 대한 대응책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는 노인일자리사업이나 노인자원봉사를 통한 사회참여 유도가 미봉책의 전부인 실정. 중장기적 관점에서 고령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다각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백세시대은 ‘고령화 시대, 고령인력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총 5회에 걸쳐 기획 연재한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①고령인력 제대로 활용하고 있나
②선진국 고령인력 활용 어떻게 하나
③기업의 고령인력 활용 방안은 무엇인가
④고령자만 할 수 있는 일을 발굴하자
⑤고령자 능력개발 위한 제도정비 시급하다

▲ 연차제 및 서열제가 기업의 고령자 기피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노동시장에서 불고 있는 중장년층 채용열기를 지속하려면 능력별 임금제인 직무급 체제활성화와 은퇴 전직지원 프로그램 정착이 최대 과제로 꼽히고 있다.
보험판매원, 주택관리사, 주차 안내원, 일용직 이삿짐센터 직원. 이는 김성춘(65·가명)씨가 퇴직 후 차례로 거쳐 온 직업들이다. 그의 직업 인생은 기회도 적고 질도 낮은 중장년층 일자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녀 결혼자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지난 8년여 동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단순 일자리마저 끊길 위기다.

하지만 그는 30여년을 은행에서 근무한 금융전문가다. IMF경제위기 때, 52세의 나이에 조기퇴직을 경험했다. 경력을 살려 은퇴 후 보험판매원으로도 일했지만 59세의 정년에 걸려 일을 그만뒀다. 최근에는 주차 안내원과 이삿짐센터 일당 잡부로 일하며 근근이 생활비만 벌고 있는 처지다.

김씨는 “두 아들 장가보내고, 아내와 여생을 보낼 작은 집 한 채 마련하니 모아뒀던 돈도 이제 몇 달치 생활비 밖에 안 남았다”며 “아무리 능력있고, 건강해도 기업에서 채용을 꺼리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노하우를 살려 일할 수만 있으면 임금이야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으니까 걱정없이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노인구직자 120만… 정부일자리 25만
65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은 김씨처럼 생계를 위해 은퇴 후에도 계속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11년)에 따르면 전체 노인의 약 34%가 일을 한다. 이유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서’(79.4%)가 압도적이다.

문제는 65세 이상 노인 구직 희망자는 120만명을 넘어서며 계속 늘고 있지만 정부가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는 25만개에 불과하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1955~ 63년 출생자) 중 140만명이 본격적인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의 고령자 채용 활성화가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월 20만원의 급여를 제공하는 정부의 노인일자리사업은 질적인 면에서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2010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55~79세 고령 임금근로자의 28.1%가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고 있고, 이어 농업숙련(21.3%) 판매(11%) 순이었다. 특히 2005년보다 단순 노무직의 비율이 2.8%포인트나 증가했다. 예년보다 일자리의 수준이나 환경은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임금근로자의 연령별 사업체 규모만 보더라도, 50~59세 노동자의 1~9인 미만 영세 업체 종사자는 39.0%지만, 60세 이상 노동자는 55.5%가 이 같은 영세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즉 퇴직 후 일자리는 대부분 영세업체의 단순 노무직인 셈이다.

▲기업, “고령 근로자 부담”
노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취업의 벽은 높기만 하다. 낮은 임금의 노인일자리사업마저도 쉽게 구할 수 없다. 민간기업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채용 기업들이 고령층 근로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 기피 현상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연차제 및 서열제에 기인한다. 능력보다는 근무 연차가 높은 직원들에게 급여를 많이 줘야 한다는 인식이 한국 기업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고연령, 고경력자의 경우 사내 직원들과의 단합 및 관리가 어렵다는 선입견마저 갖고 있다.

정부 고용정책도 문제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보다 성과위주의 생색내기식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현재 고령자 고용을 지원하는 제도로는 고령자고용촉진법과 고용보험의 고령자고용장려금 제도가 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은 “정년을 정할 때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권고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한 기업은 13.2%에 불과했다. 정년 60세를 권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터무니없이 낮다. 300인 이상 기업의 평균정년은 56.7세(실제 퇴직 연령은 53세)다. 쉰 살을 넘기면 회사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하는 상황이다.
고령자 의무고용 비율과 장려금지원제도 또한 형식적이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르면 55세 이상 노동자 의무고용 비율은 3%에 불과하다. 이것도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고용촉진장려금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전체 노동자의 6% 이상을 55세 이상 고령자로 고용하면 초과 근로자 수만큼 분기당 1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의무고용비율(3%)의 2배를 고용해야 하지만 분기 15만원, 한 달 5만원이 임금으로 지원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고령인력활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 60세 정년연장 의무화 추진
‘인생 100세 시대’를 준비하며 고령인력의 활성화가 사회적 과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지난해부터 다양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작년 10월, 중장년 새일찾기 프로젝트, 사회공헌일자리, 중소기업 현장연수 등 고령자 채용활성화 방안이 포함된 ‘베이비붐 세대 퇴직대비 대책’을 수립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에는 ‘제2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2012∼2016년)을 마련, △고령근로자 근로시간단축청구권 도입 △퇴직예정자에 대한 기업의 전직지원서비스 제공 의무화 △고령자(55세 이상)라는 명칭을 장년(50세∼65세)으로 개정하는 내용을 입법예고 했다.

최근에는 60세 정년 연장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고령·성주·칠곡)은 8월 22일, 지금까지 권고사항에 그쳤던 정년 60세 기준을 의무사항으로 개정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달라진 정책방향에 대해 “지금까지 정부의 중고령 근로자 활용대책은 경제적 측면과 기업의 인사관리 측면에서 현실과 부합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졌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실시한 베이비부머 고용촉진 계획과 고용연장 의무화 법률안 발의는 고령인력 활용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실질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인일자리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정년연장 및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 적극적으로 정책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능력별 임금제·전직지원 프로그램 활성화 필요
지난해부터 노동시장에 불고 있는 중장년층 채용 열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들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직무급 체제 활성화와 전직지원 프로그램 정착을 최대 과제로 꼽았다.

직무급 체제는 서열급여제 대신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주는 임금제도를 말한다. 이같은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가 형성된다면 고령자 임금문제 및 기업들의 채용 부담도 함께 해결될 수 있다.

강지화 서울시일자리플러스센터 고령자팀장은 “직무급 임금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업종별·직무별 시장임금 수준에 대한 주기적인 조사 및 공표, 각 직무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등 기초적인 통계 인프라 조성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와 공공기관, 공기업 등 연공급 성격이 강한 부문에서는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고, 민간부문에서는 연봉제 등 성과주의 보상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강조되는 것이 은퇴 전 전직지원 프로그램의 활성화다. 회사 내부에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외부 전문위탁기관에 의뢰해 은퇴 직전의 직원을 교육·관리하는 제도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국내 기업은 17.9%에 그치고 있다.
기업은 은퇴 시점을 근로자에게 미리 통보하고, 수개월 전부터 전직·창업 교육을 받도록 지원하면 된다. 교육은 전직 및 창업 관련 컨설팅은 물론 자산관리, 노후설계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미래에셋연구소 손성동 실장은 “한국 은퇴교육에서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전직지원 프로그램만 이뤄지고 있다”며 “기업의 고령인력 활용은 단순 채용뿐만 아니라 은퇴를 앞둔 사내 직원들의 은퇴교육을 균형있게 실시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 근로자에 부정적이었던 기업들의 인식이 자츰 변화하고 있는 만큼 전직교육이 근로자의 은퇴와 재취업을 돕는 일종의 사회적 책임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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