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서울노인영화제>
어르신들의 진솔한 삶 투영, 어엿한 노인문화축제 자리매김
<제5회 서울노인영화제>
어르신들의 진솔한 삶 투영, 어엿한 노인문화축제 자리매김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10.26 16:37
  • 호수 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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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주관한 ‘제5회 서울노인영화제’가 10월 22~25일 4일 간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이번 영화제에는 어르신 감독이 제작한 자유주제 부분 영화 18편과 젊은 감독이 제작한 노인주제 부문 17편 등 총 35편이 상영됐다. 본선작 35편은 공모를 통해 응모된 141편의 작품 중 예선 심사위원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올해로 5회를 맞은 서울노인영화제는 공모작의 수준 높은 작품성과 함께 노인이 직접 기획, 제작한 영화를 내세워 어엿한 노인문화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월 22일 뜨거운 열기 속에 치러진 개막식부터 출품작 등 이번 서울노인영화제를 들여다본다.
글=이다솜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 서울노인복지센터장 청원스님이 10월 22일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제5회 서울노인영화제’의 개막을 선포하고 있다.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서울노인영화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입증하는 듯 했다.

‘제5회 서울노인영화제’의 개막식이 10월 2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서울노인영화제는 2008년부터 개최돼 어르신 감독에게는 소통과 자아실현의 장이 되고, 젊은 감독에게는 노인 및 노인의 삶에 대한 고민과 공감의 계기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어르신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영화제는, 영화 ‘은교’(연출 정지우)에서 노시인 역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씨가 홍보대사를 맡아 화제가 됐다. 그간 서울노인영화제의 홍보대사는 주로 연륜 있는 중견배우들이 맡아왔던 것과 대조적으로, 20~40대에게 선호도가 높은 젊은 배우가 위촉됐기 때문이다.

서울노인영화제 관계자는 “이번 영화제의 홍보대사가 박해일씨로 임명돼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어르신들을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축제로 발돋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한극장은 개막식 시작 30여분 전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영화표 예매 및 구매를 돕는 테이블 앞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무료로 지급된 간식을 들고 들뜬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한껏 멋을 내 옷을 차려 입고 축제에 참석한 어르신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축제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카펠라 그룹 ‘엑시트’의 감미롭고 흥겨운 공연으로 문을 연 개막식에는 KB금융지주 윤종규 부사장,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 초청개막작 ‘은교’의 주연배우 박해일, 김고은 등의 축사와 출품작의 하이라이트 영상 상영이 진행됐다.

서울노인복지센터장 청원스님의 개막선포에 이어, 개막작 ‘은교’가 상영됐다. ‘은교’는 마음속에는 여전한 욕망과 청춘이 살아있음에도 껍데기인 육체만이 늙어가는 노년의 적막과 쇠락을 표현한 작품으로, 박범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로 소통할 수 있어 행복”

▲ 박형준(18)
개막식에 참석한 감독들을 만나 영화와 본선진출 소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이번 영화제의 최연소 감독인 박형준(18)군은 영화 ‘당신의 조각’을 출품했다. 그는 “영화는 한 할아버지가 힘들게 살아가면서 손자를 추억하는 내용”이라며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군은 “사실 처음 찍은 영화여서 출품 전에는 설렜다. 그래서 본선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양청자(69)

다큐멘터리 ‘나들이’를 연출한 양청자(69)씨는 서울노인영화제 공고를 보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공모 마감일 열흘 전이었다.

양씨는 “영화의 소재를 고민하다가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해 무작정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27년 전 부산에서 상경한 뒤 고향에 마음처럼 자주 내려갈 수 없는 현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어릴 적 친구들 중 한 명이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암수술 후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고향 친구들이 더욱 보고 싶었다. 양씨는 친구들과 부산 곳곳으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났고, 이를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본선에 진출한 소감을 묻자, “그저 내가 영화를 만들어서 출품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또, 영화를 통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기뻤다”며 “영상을 배울 곳이 마땅찮아 10년전 문화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모아 영상 촬영을 계속 해나갔다. 그들과 영화를 통해 관계가 이어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 이윤수(78)

이윤수(78) 어르신은 다큐멘터리 ‘꿈’을 통해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신생아부터 시작해 초·중·고교생, 대학생, 30대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 인터뷰들 사이에 이 어르신의 사진을 병치했다. 예를 들면, 20대 시절의 어르신 사진과 20대 청년의 인터뷰를 나란히 놓는 식이다.

이 어르신은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 사이에 나의 과거 사진을 배열한 것은, 노인을 대표해 내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며 “따라서 관객들이 이를 보고, 개인의 과거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전체 노인들의 삶을 대변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노인영화제 2회, 4회에도 본선에 진출한 바 있는 베테랑 감독이다. 70세부터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해 이제는 기획, 촬영, 편집 등 영화제작 전 과정을 스스로 해내고 있다.

▲ 류종식(45)
▲ 한명집(80)

류종식(75) 감독과 수목장에 관한 영화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함께 연출한 한명집(80) 어르신은 “본선 진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며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3개월 간 영상교육을 받고, 자기가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라는 숙제를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며 “류종식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목장 등 장묘문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만화 ‘소녀이야기’ 대상 수상
10월 25일 폐막식 및 시상식 결과, 이번 영화제의 KB골든라이프상(대상·상금 500만원)은 ‘소녀이야기’의 김준기(41) 감독이 차지했다. ‘소녀이야기’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정서운 어르신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만화)이다.

대상을 받은 김 감독은, 1991년 故 김학순 어르신의 ‘커밍아웃’으로 위안부 문제가 공식화 됐을 당시 만화를 그리는 학생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언젠가는 위안부 문제를 꼭 다뤄보고 싶었다”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가 위안부 어르신들의 녹취록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김준기 감독은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슬럼프에 빠져 있었는데 반성했다”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했다.

우수상(상금 200만원)은 ‘나들이’의 양청자 감독과 ‘엄마와 어머니의 나들이’의 손진경 감독이, 장려상(상금 50만원)은 ‘할머니와 육아’의 조정희 감독을 비롯해 ‘수선화’의 이현명 감독, ‘산골할배와 트위스트’의 양연희 감독, ‘욕쟁이 할머니’의 고은설 감독이 수상했다.
또, 60세 이상 어르신 감독의 활발한 영상제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처음 시도하는 JTI제작지원 공모 당선작에는 전양수 감독의 ‘엄마의 반지’가 선정됐다. 이들에게는 영상제작전문가를 연결하는 멘토링 지원, 제작비용을 지원하는 물적 지원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들 수상작은 영화감독 김수용 심사위원장을 필두로 하는 심사위원 5인의 심사를 통해 선정됐다.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들이 직접 뽑은 관객상은 이윤수 감독의 ‘꿈’이 차지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장 청원스님은 “많은 관객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영화제 기간 동안 하루하루가 즐거운 여정이었다”며 “앞으로 서울노인영화제가 보다 발전해 더 많은 관객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노인’에 대해 다양한 고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 소녀이야기(감독 김준기)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정서운 어르신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일본군에 의해 집안이 몰락하게 되는 경위, 그리고 내 몸을 빼앗아도 마음은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틴 인도네시아에서의 비인간적 삶 등 일본군의 만행을 담담하게 고발한다. 뛰어난 만듦새와 할머니의 차분한 실제 육성이 결합해 만들어낸 호소력 강한 작품이다.

⇨⃞ 나들이(감독 양청자)
남편의 직장 때문에 나고 자라던 고향 부산을 떠났던 주인공이 그곳으로 오랜만에 나들이를 간다. 그리고 어릴 적 친구를 만나 부산 곳곳을 여행한다. 이 여행이 친구와 보내는 마지막 여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 순간이 애틋하다. 촬영과 편집, 그리고 영화의 전체 톤을 끌어가는 연출력이 뛰어나다.

⇨⃞ 엄마와 어머니의 나들이(감독 손진경)
30명이 넘는 대가족 살림을 평생 해온 친정 엄마와 과거에는 무서운 시어머니였지만 이제는 엄마와도 같은 시어머니, 그리고 딸이자 며느리다. 가족관계에서 부과되는 서로의 직책은 벗어버리고 세 여자의 즐거운 나들이가 시작된다. 평생 지고있던 가족의 짐을 벗어버리고 이제야 찾는 즐거운 인생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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