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어르신들의 특별한 전시회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요양원 어르신들의 특별한 전시회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11.16 14:45
  • 호수 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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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통해 오해가 없다’는 의미의 ‘소통.’ 인간이라면 누구든 타인에게 이해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소통에 대한 열망은 보편적이다. 하지만 소통이 조금 더 간절한 이들이 있다면, 바로 요양원의 어르신들일 것. 특히, 요양원이라는 공간의 물리적인 폐쇄성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편견과 무관심 때문에 어르신들은 언제나 극심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그런 어르신들이 작품전시회를 통해 세상 밖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마음으로 빚어진 작품들은 어르신과 어르신을 모시는 가족들, 청년들, 어린이들 모두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래서 전시회도 ‘세통뎐’(世通展)이란 이름이 붙었다. 11월 9~18일 경기 광주 갤러리도도에서 열린 전시회를 찾아 어르신들의 작품과 그 안에 녹아있는 애절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11월 5일, 요양원 어르신들의 작품 전시회 ‘세통뎐’이 열린 경기도 광주시 ‘갤러리도도.’ 도로변을 사이에 두고 울긋불긋 물든 가을산을 마주 보고 있는 전시장에는 드문드문 발걸음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색채의 불빛들로 가득한 전시장 내부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소담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이번 전시는 광주지역 요양원들이 손을 잡고 기획했다. 이들이 전시회를 열기 위해 구성한 팀 이름이 재미있기도 하고, 의미심장하다. ‘마중물 노인문화기획위원회.’ 수동식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기 전 한바가지 붓는 물이 마중물이다. 요양원 어르신들의 문화를 세상으로 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겠다는 각오가 배어있다.

마중물의 한 사회복지사는 “우리나라에서 노인 관련 문화가 발달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노인의 이미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노년기가 피하고 싶은 시기가 아니라 더욱 성숙해지고 풍요로울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기 위해 여러 요양기관이 합심해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5~6개월 전,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각 기관의 사회복지사 등 실무자들이 만나 ‘마중물 노인문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의 상처, 작품으로 승화
아마도, 국내에서는 처음이 아닐까 생각되는 요양원 어르신들의 전시회. 대부분 치매에 걸린 이 어르신들의 내면은 어떻게 표현됐을까.

치매를 앓고 있는 오 어르신(84)의 작품 ‘내 손은 더러워’는 손의 모양을 점토 부조와 조소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밝고 화사한 색으로 칠해져 있는 손 모양의 작품은, 어르신이 생각하는 젊은 시절의 꿈 많고 활력 있는 손이다. 반면, 어두운 색으로 표현된 손은 어르신이 생각하는 현재 자신의 손이다. 이 작품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지난해까지도 오 어르신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손을 내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어르신은 자신의 손이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스킨십을 유도하는 치료사에게 “내 손은 더러워”라는 어르신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이후 치료사들은 어르신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다. 평생 성실하게 땅을 일구고 일곱 남매를 기른 손이 더러울 리 없었다. 어르신은 이제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종이에 아크릴로 그린 이 어르신(67)의 작품 ‘밤의 혼란’은 그가 느끼는 어둠과 불안이 스며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생활하는 이 어르신의 혼란한 마음을 마블링(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 미술기법)으로 표현한 것.

어르신은 작업을 하면서 흰색은 ‘자녀’를 의미한다며, 불분명한 인지 속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 어르신(83·여)은 종이에 파스텔로 ‘자화상’을 그렸다. 그의 부모님은 딸부자집 막내로 태어난 최 어르신을 어릴 때부터 아들처럼 키웠다. 그래서 늘 치마보다는 바지가, 고무줄이나 공기놀이보다는 책과 신문 읽기가 더 익숙했다. 최 어르신도 큰 불만 없이 살아왔다.

최 어르신의 심경이 변한 것은 요양생활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하루에도 두 세 차례씩 한 시간 넘도록 욕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굴을 매만지고 머리를 빗고 몸을 닦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몸단장을 즐긴다. 일찍이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여성성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 그렇게 응시하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작품으로 탄생했다.

어르신들은 내면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면서 관객에게 용기를 내 말을 걸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그리다
어르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또는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도 작품으로 표현됐다.

부채를 채색해 ‘꽃바람 부채’를 내놓은 박 어르신(85·여)에게 꽃은 남다른 의미다. 청력이 좋지 않아 다른 어르신과도 소통할 수 없지만, 그에게는 다행히 꽃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다.

어르신은 “나는 세상에서 꽃이 제일 좋아” “꽃을 볼 수 있으니까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좋지”라고 말한다. 부채살 위에 꽃을 하나하나 수놓으며 작업할 때도 행복해 했다.

‘열정’은 종이에 물감과 필기구를 이용해 열정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Passion’을 새겨 넣은 송 어르신(84)의 작품이다.

송 어르신은 젊은시절 학생들을 지도했던 영문과 교수였다. 그는 비록 많은 것을 잊어가고 있지만 ‘Passion’이라는 단어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어르신은 지금도 분명한 어조로 열정에 대해 강조하며,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져야함을 상기시킨다.
한 평생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왔을 송 어르신의 삶이 작품을 통해 어렴풋이 그려진다.

작품 ‘시간여행’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생 농사만 지어온 이 어르신(76·여)의 판화다. 평소에는 할 말도, 그릴 그림도 없다며 조용히 지내지만, ‘바다’라는 주제 앞에서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어르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들과 서해대교 구경을 갔던 일. 삶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어르신의 얼굴은 잠깐이지만 밝게 빛났다고 한다.

▲“어르신들께 감동 받아”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관객들의 반응을 물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어르신들의 사연을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 작품의 사연을 소개하거나 읽어주길 당부했더니 더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며 “특히 20~30대보다는 중장년층의 관람객들이 높은 호응도를 보였는데, 자신들의 미래나 부모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직접 남긴 방명록에는 진솔한 감상평이 기록돼 있었다.

한 관람객은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감동 받고 갑니다. 정말 찡했습니다. 힘내세요!”라는 메모를 남겼다. “나의 미래,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런 전시회를 개최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동스럽다”는 내용의 쪽지도 눈에 띈다.

또 다른 관람객은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며 “노년을 앞두고 치매, 질병 등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예술이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 집니다. 은퇴를 하면 예술활동을 무엇이든 한 가지는 해야겠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마중물 기획위원회 관계자는 “어쩌면 이번 전시회에서 어르신들의 사연은 부수적인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이 무엇이 됐든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요양원 어르신들이 전시회에 도전했고, 그것을 이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어르신들의 전시회와 같은 문화활동이 활성화되지 않지만 점차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마중물기획위원회의 이번 전시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글=이다솜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 꽃바람 부채
▲ 내손은 더러워
▲ 내손은 더러워2
▲ 밤의 혼란
▲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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