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 성찰하는
국내 최초 웰다잉 박람회 ‘성황’
삶과 죽음의 경계 성찰하는
국내 최초 웰다잉 박람회 ‘성황’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12.28 13:46
  • 호수 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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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현실은 직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죽음, 이를 의식하는 삶과 개의치 않는 삶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준비 없이 맞이하는 갑작스런 죽음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다. 이 때문에 최근 노년층은 물론, 젊은층에서도 죽음을 준비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자고 역설하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죽기 전 은인에게는 감사를, 원한과 상처로 반목했던 사람에게는 화해와 용서를 구해 일상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죽음을 성찰하는 것, 그리고 삶의 끝자락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노력은 더 나은 생을 가꾸는 바탕이 된다. 최근 국내 최초로 ‘웰다잉 박람회’가 마련됐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성찰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논의의 장이 마련돼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


MBC+ 미디어가 주최·주관, 1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삼성동 코엑스 B홀에서 열린 ‘2012 MBC+ 웰다잉 페어’ 박람회장. 젊은이들에게는 입관체험 등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깨닫게 하고, 노년층에게는 지금까지의 삶을 반추하면서 여생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가꿀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웰다잉은 힐링이다’란 주제로 열린 이번 박람회는 사전의료의향서를 포함해 유서작성법, 지인에게 편지쓰기,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작성 등 여러 가지 가상의 웰다잉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관람객들은 죽음에 직면한 삶의 마지막 단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원한관계는 화해와 용서로 풀고, 지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등 간접적으로 죽음준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죽기 전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을 적어보는 위시보드, 수의를 입고 관에 누워보는 입관체험 등 특별한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은 이상 평범한 일상에서 깨닫기 쉽지 않은 임종의 순간을 가상한 체험 프로그램이 즐비했다. 웰다잉 전문가들은 “이러한 체험은 일상을 진정 원하는 삶으로 변화시키고 가꾸는 계기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모리’체험
원망과 원한을 풀지 못한 관계는 화해와 용서로 회복하고, 소중한 사람과 은혜에 감사하는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여생을 마무리하는 작업이자, 동시에 삶을 충실히 가꾸는 출발이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새생명 체험관’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앙드레김, 개그맨 김형곤, 성철 스님 등 이미 고인이 된 유명 인사들의 죽음을 통해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죽음도 자각하고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이른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이 단어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망각하지 말고,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프로그램은 우선, 아쉽거나 보람된 일 등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준비교육’을 마친 뒤 간단히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마지막 글을 남기는 ‘유언장’을 작성한다. 다음으로 수의를 입고 촛불을 켠 채 유언장을 읽고, 춥고 어두운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입관체험’을 하게 된다. 관 속의 느낌을 정리하고 향후 할 일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뒤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등 ‘마무리 교육’으로 구성됐다. 한 시간 남짓한 체험이지만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면서 여생을 긍정적으로 반전시키는 계기로 충분했다는 게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한결같은 소감이다.

‘웰다잉 체험관’은 이외에도 죽기 전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을 보드에 직접 써보는 ‘위시보드’를 비롯해 연인과 가족에게 전하고픈 말을 적은 엽서를 작성, 원하는 주소로 1년 뒤 예정된 이 박람회의 초대권과 함께 전달하는 프로그램 등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자신이 하고픈 일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됐다.

우주장 등 이색장례·유명 이색조문사례도
종교와 문화별 장례문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웰다잉 갤러리’도 볼만했다.

이 자리에서는 명사들의 ‘웰다잉’에 대한 견해가 소개됐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비롯해 스티브 잡스나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어록도 전시됐다. 조문객들이 그 자리에서 각자의 넥타이를 잘라 마지막 선물로 주기도 했던 백남준씨의 장례식, 고인이 평소 부르던 ‘나그네 설움’으로 조문객들이 노래자랑을 벌이기도 했던 ‘욕쟁이 스님’ 춘성스님의 장례식, 조문객이 18번 홀에서 드라이브 샷을 날렸던 미국 손해보험사 ‘뢰스’의 설립자 로버트 티시의 장례식 등 ‘즐거운 환송 잔치’라 불릴 만큼 이색적이고 특이했던 명사들의 장례식도 소개됐다.

한쪽에는 힌두교 화장문화를 비롯해 이슬람교,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별 장례문화를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다.
이외에 돛감 소재의 가방에 시신을 넣고 해저로 가라앉히는 ‘해양장’부터 유골을 상업용 위성에 탑재해 우주로 쏘아 올리는 ‘우주장’, 동굴에서 장례를 치르는 하와이의 전통 ‘동굴장’, 마치 축제와 같은 발리의 장례식도 이색적인 장례식으로 소개됐다.

세계의 이색 장례문화로는 유골을 갈아 만든 분말과 유화물감을 섞어 고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그림장’, 유골을 봉인한 뒤 바다 밑에 안치하는 유럽의 ‘산호장’, 시신을 독수리에게 바치는 티벳의 ‘천장’, 유골에서 추출한 탄소로 다이아몬드를 제작하는 홍콩의 ‘다이아몬드장’, 유골을 폭죽과 함께 쏘아 올리는 미국의 ‘폭죽장’, 태평양 중서부 키리바시공화국의 ‘두개골장’ 등이 전시됐다.

‘유언상속우선의 원칙’ 등 유서 강연도
웰다잉 특별강연에서는 ‘유산, 마지막 이별선물’이라는 주제로 정상기 강사가 유언 작성법을 강연했다. 그는 “무엇보다 ‘본이 되는 삶’이야말로 가족과 이 세상에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정상기 강사는 법정상속은 2차적이며, 유언상속이 우선된다는 ‘유언상속우선의 원칙’ 등 상속의 주요사항을 짚어보는 한편, 자필증서, 녹음유언, 비밀증서 유언 등 유언의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도 다뤘다.

또, 임종시 의료적 처치에 대해 건강할 때 입장을 밝혀두는 사전의료의향서(문의: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02-2228-2670)를 비롯해, 사후 자신의 시신처리에 대해 미리 의사를 밝혀두는 사전장례의향서(문의:골든에이지포럼 02-333-5071)도 소개됐다.

장기기증(문의: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02-363-2114)이나 조직기증(문의:인체조직기증본부 02-794-2640) 의사를 어떻게 밝히는 지도 중요한 관심사로 다뤄졌다.

관람객들은 특히, 자필증서 유언장을 직접 작성해보기도 했다. 유언장은 배우자나 자녀 또는 친지, 친구들에게 남기고 싶은 유언을 자유롭게 작성하되 법적인 효력 요건에 유의해야 한다. 효력요건은 모두 자필로 써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작성일자 △작성장소 중 어느 항목이라도 누락돼서는 안 되며, 반드시 도장으로 날인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내용은 자유롭게 쓰되 배우자나 친지 등에게 남기는 말과 자신이 죽은 후 장례식이나 유산처리 등에 대해 하고 싶은 말, 그밖에 남기고 싶은 말을 쓰면 된다.

이밖에 올바른 상·장례에 대해서도 강연이 마련됐고, 8년 동안 3000회 공연된 웰다잉 연극 ‘염쟁이 유씨’를 통해 염의 과정, 주인공 유씨가 염쟁이가 된 과정 등을 통해 ‘웰다잉’의 참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도 마련됐다. 죽음을 앞둔 말기암 환자가 ‘엔딩노트’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통해 죽음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할 수 있는 영화 ‘엔딩노트’ 등 죽음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기도 했다.

무료장례·자연장지 등 장사문화 한눈에
이번 박람회에서는 수의 및 유골함, 장례메이크업서비스, 장례포털서비스 등 각종 장례문화산업과 고령친화산업도 한 자리에 소개됐다.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85세 이상 독거노인의 무료 장례식을 대행하는 (사)대한장례인협회(1588-4987)였다. 지난 8월 출범해 다문화가정 등 복지소외계층의 무연고 사망에 대해 무료 장례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85세 이상 독거노인에 대한 장례를 신청할 경우 이 단체가 맡아 치러준다. 또, 추가비용 없이 소정의 출자금을 내면 모든 장례절차를 함께 진행하는 한마음장례사회적협동조합(02-529-0090)도 눈여겨 볼만하다.

박람회장에서 장례관련 기업들의 공간인 ‘기업존’에서는 가족에게 죽음과 관련된 메모를 전할 수 있는 ‘메모리얼 노트집’이 눈길을 끌었다. 이 상품은 관람객에게 판매도 했는데, 신상을 적고 가장 기뻤거나 참기 힘들었던 추억, 또 슬펐거나 즐거웠던 추억 등 삶의 희로애락과 작은 기억을 정리할 수 있는 메모장이다. 이 메모에는 가족력과 함께 작성시점의 건강상태를 기록하고 자신이 수발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간병자와 간병 장소에 대해 미리 의사를 밝힐 수도 있다. 사전의료의향서가 첨부돼 연명치료에 대한 의견도 정리할 수 있고 장기 기증방법, 기증 장기 등 장기나 시신기증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유서나, 장례식 장소, 시신처리에 대해서도 적어놓을 수 있다. 지인에 대해서는 고마움이나 화해와 용서의 글, 자식과 후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글도 남길 수 있다.

서울시설관리공단(02-2290-6114)도 최근 장례문화로 부각되고 있는 자연장의 일환으로 수목장을 소개하고 산림청 수목장림 등 서울의 장사시설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룩셈부르크의 함화장장, 핀란드 헬싱키 히에타니에미 묘지를 비롯해 수목형 자연장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요코하마 메모리얼 그린묘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북묘지 등 세계의 자연장지도 소개됐다.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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