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아픔 털고 농부 변신 ‘구슬땀’
노숙 아픔 털고 농부 변신 ‘구슬땀’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3.03.29 10:31
  • 호수 3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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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자활프로그램 양평 ‘서울 영농학교’ 탐방

▲ 푸른 빛깔의 계란을 낳는 청계(靑鷄) 사육은 고소득 영농이다. 부화기에 넣기 전에 계란을 담는 법을 익히고 있는 서울영농학교 교육생들. 사진=조종도 기자 jdcho@100ssd.co.kr

올 35명 입학…우수 졸업생엔 농지·농가 제공
60대 5명 참여…8개월간 훈련비 받으며 재활

서울역, 영등포역을 전전하던 노숙인들이 농부로 변신하고 있다.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진 노숙인들이 자립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곳은 서울시립 양평쉼터 내 서울영농학교. 서울영농학교는 서울시가 노숙인들의 자립, 자활의지와 역량을 함께 키워주기 위해 시작한 맞춤형 자립프로그램이자 교육시설이다.
지난해 개교해 첫 졸업생 21명을 배출한 데 이어, 지난 3월 6일에는 2회 서울영농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이번 입학식을 통해 서울시내 노숙인 시설과 쪽방촌, 거리 등에서 생활하던 30~60대 노숙인 35명이 귀농을 위한 첫 걸음을 뗐다. 서울시가 홍보를 통해 모집된 50명 가운데 면접을 통해 건강상태, 의욕 등을 평가해 선발했다.
이들은 10월까지 8개월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주3일 간 합숙교육을 받는다. 이는 지난해의 7개월 교육보다 1개월 늘어난 것으로서 농사주기에 맞춘 것이다.
교육 내용은 오전 이론교육, 오후 농사 실습으로 짜여 있다. 이론교육은 특용작물, 채소, 과수, 축산, 식량작물 등 5개 분야의 전문 강사진이 담당한다. 교육과목은 서울시농업기술센터, 양평농업기술센터, 한국농수산 대학 등 영농 전문 기관의 자문을 거쳐 구성됐다. 농산물 생산에서 유통, 마케팅까지 커리큘럼에 담았다.
서울영농학교는 경기도 양평읍에서 약 15km 떨어진 용문면 화전리에 위치한다. 야트막한 산이 울타리처럼 둘러진 조용한 마을 언덕배기에 있다.
강의실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수강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 교육을 담당하는 유정란 운영위원은 “60대가 5명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는 유기농업에 대한 강의가 진행 중이었다. 강의 내용 중에 셀룰로오스, 탄소, 당(糖) 등 어려운 용어가 많이 등장했으나 예비 농사꾼들은 끝까지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환경농업의 이해’를 강의한 이상범 박사(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는 “교육생들이 전혀 졸지도 않고 강의를 잘 듣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함 모씨(64)는 “임실에 700평 땅이 남아 있는데, 거기서 양계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어서 운전직과 자영업에 종사했고 농사 경험은 전혀 없다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해 서울역 등에서 3년 가까이 노숙을 했다는 박 모씨(41)는 “강의가 재미있고 유익하다”면서 “전남 영암에 사는 작은 아버지와 과수 농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점심식사는 동태찌개에 반찬 3~4가지가 더 나왔다. 어느 구내식당과 겨뤄도 손색없을 만큼 맛이 괜찮았다. 교육생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일주일 내내 이런 식사와 숙소를 제공받는다.
교육이 없는 목요일~일요일에는 인근 농장 등에 취업할 수도 있고, 자격증을 따거나 다른 외부활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농장에서 일할 경우 하루 5만~6만원의 추가소득을 올릴 수 있으며, 월 15만원의 교육생 훈련비는 별도로 지급된다. 게다가 운전면허 등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드는 교육비도 서울시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점심식사 후 오후 2시까지는 휴식이다. 교육생들은 오후 1시 30분을 넘어서자 마당으로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한다.
오후 실습은 주로 교육관에서 약 700m 거리에 있는 1만8000㎡의 영농실습장에서 이뤄진다. 영농실습장에는 비닐하우스 3개동이 세워져 있고, 실습용 과수원도 있다. 교육생들은 파종에서 수확까지 직접 구슬땀을 흘리며 체험하게 된다.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은 교육 수료생들에 대한 사후 지원이다.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어렵게 다시 잡은 희망의 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영농학교 졸업 이후 취업 알선 등 일자리 대책을 다각도로 강구하고 있다.
우수 졸업생에게는 전국 희망 지역의 농지·농가를 직접 알아봐 주고 농사짓고 살 수 있도록 임대료를 지원한다. 희망지역에서 적당한 농지를 구하지 못할 경우 영농학교에서 다른 곳을 추천하기도 한다. 지난해 졸업생 중 네 명이 이런 절차를 통해 임대 토지를 지급받아 귀농했다.
졸업생들은 영농자활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영농자활단은 다음해 교육생들이 수료할 때까지 1년간 재교육을 통해 인큐베이팅하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졸업생 중 현재 6명이 자활단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약 3300㎡의 영농자활지를 무료로 대여해, 농산물 판매수익금 전액을 갖도록 했다. 수익금 외에 월 35만원의 영농자립비가 지급된다.
김동성 서울영농학교 팀장은 “앞으로 졸업생 가운데 예비 사회적기업 참여자를 선발해 귀뚜라미 등 곤충사육 사업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김경호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서울영농학교가 지난해에 이어 더 큰 성과를 이루어 노숙인 자활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며 “앞으로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서울영농학교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자활사업을 시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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