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모임’ 24년째 이끌어오는 김녕희씨
‘사랑모임’ 24년째 이끌어오는 김녕희씨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4.05 10:06
  • 호수 3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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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이웃 돕는 처녀 적 꿈 이뤄 행복해요”

 

▲ 가족 같은 우애로 뭉친 ‘사랑모임’ 회원들은 한 달에 5000~1만원씩 회비를 걷어 선행을 베푼다. 왼쪽부터 회장 최봉례, 명예회장 김녕희, 회원 김영순, 서태옥씨.

 

6명으로 출발, 현재 회원 194명…반목이나 갈등 한차례도 없어
각자 반찬 싸들고 김씨 집에서 정기적으로 식사하며 친목 도모

 

 

 

 

▲ 김녕희씨는 평소 마음에 드는 글귀를 모아 책자로 만들어 회원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처녀 적 제 꿈이 결혼보다는 사회사업을 하는 거였어요. 3층짜리 건물을 장만해 1·2층 가게세를 받아 그 돈으로 불쌍한 아이에게 기술을 가르쳐 학교를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꿈을 현실화하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몇 배 크고 훨씬 아름다운 일을 이룬 이가 있다. 불우이웃을 돕는 모임인 ‘사랑모임’을 창설한 주부 김녕희(73·서울 전농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24년 전인 1989년, 가까운 친지를 중심으로 적은 돈이라도 모아 불우이웃을 도와야겠다는 일념으로 모임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출발 당시 회원 6명이 5000~1만원씩 모은 회비가 총 10만원. 다리 없는 장애인 시설을 둔 부활선교회(경기도 하남시)에 전달했다. 3월 말 현재 회원 수는 194명. 매달 한 차례 걷는 회비는 100만원 선. 외형적으로 회원은 30배, 총회비는 10배 많아졌다.
“이 지역에 사는 이웃이 대부분으로 알음알음 늘었어요. 부모에 이어 자녀가 회비를 내고, 이민 가신 분도 변함없이 외국에서 회비를 내주시고 그러세요. 정말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임은 9명의 조장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조장이 맡은 조의 회비를 걷어 ‘사랑모임’ 통장에 입금하는 대로 지정한 불우시설단체에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지난해는 할머니 혼자 버는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 가족을 비롯해 구리샬롬의 집, 중화아동센터, 서원복지회관, 참나무집 등 13곳의 불우시설에 전달됐다.
김녕희씨가 남다른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고 김승옥)의 영향이 컸다. 김씨의 아버지는 전북의 한 여학교 설립자로 10남매를 두었지만 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다. 김씨는 가난한 아이에게 학비를 대주는 아버지를 곁에서 보면서 사회사업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김씨는 최근 회원들에게 뜻 깊은 선물을 나눠주어 회원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길을 걸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글귀를 적어둔 걸 ‘마음에 담고 싶은 글 모음’이란 제목의 자그마한 책자로 만들었다.
“좋은 글 몇 줄은 우리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줍니다. 모임을 위해 헌신하는 회원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책자를 만들어 한 권씩 전해드렸어요.”
‘사랑모임’ 초창기 멤버인 서태옥(74·서울 장안동)씨는 “우리 모임은 마약과 같아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너무나 좋은 모임”이라면서 “책자의 글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책자로 나오기까지 김씨 올케의 역할도 컸다. 시누이가 건네준 자료를 일일이 워드로 쳐 예쁜 책자로 완성한 윤세영(‘사진예술’ 편집장)씨가 그이다. 윤씨의 남편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김녕만씨다. 이들 두 사람 역시 ‘사랑모임’ 회원이다. 윤씨는 “평생 성실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남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는 시누이에게 책을 만들어주면서 아무 의미 없이 나이를 먹지 않고 스스로 사는 이유를 만들어가며 사는 것, 그것이 오늘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사랑모임’은 두 달에 한 번씩 김씨 집에서 ‘풍성한 만찬회의’를 연다. 조마다 돌아가면서 해오는 다양한 반찬과 김씨가 준비한 밥으로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회의도 하고 친목도 다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랑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봉례(57·서울 답십리)씨는 “회원들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회원 간 반목이나 갈라서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부터 회칙을 만들어 남녀노소, 종교 구분 하지 않고, 정치나 사업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어요. 그리고 정회원은 여자에 한한다는 내용을 넣었어요. 아마 지금까지 우리 모임이 별 탈 없이 지내온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회원의 남편은 아내가 하는 일에 무심하지 않다. 비록 준회원이지만 무거운 옷 보따리를 차로 실어다주거나, 도매시장에서 수건을 떼다 넘겨주는 등 눈에 띄지 않는 적극적인 후원자이다.
초창기 멤버인 김영순(69·서울 전농동)씨는 “사랑모임에 나간다면 남편이 적극 밀어 준다”며 “양말(조윤자)이나 의류제조업(이광분)을 하는 회원은 양말과 옷을 몇 상자씩 보내주시고, 과자 공장하는 분(최옥란)도 과자를 한가득 보내주신다”고 말했다.
김씨는 모임을 15년쯤 하다 나이가 들고 해서 중단하려 했지만 그동안 해온 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젊은 층에서 회장을 뽑아 이어오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언론에 알려지는게 조심스럽다는 김녕희씨는 “결혼도 했고, 건물도 없지만 처녀적 꿈을 이뤄 행복해요”라면서 “비닐하우스였던 시설이 나중에 벽돌건물을 짓고 좋아지는 걸 보면 보람도 느낍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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