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색 얻기 위해 30년 바친 이병찬 선생, “젊은이들, 옛 색 지키려는 노력해줬으면…”
자연의 색 얻기 위해 30년 바친 이병찬 선생, “젊은이들, 옛 색 지키려는 노력해줬으면…”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4.19 10:57
  • 호수 3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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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염색가 이병찬 선생이 4월 11일 국립민속박물관의 공방을 연출해 놓은 기획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천연염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관람객들이 이병찬 선생의 기증 특별전 ‘자연을 물들이다’에서 공개된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 전시장에 놓여 있는 복주머니와 비단 모자(왼쪽), 부채(가운데), 보자기(오른쪽). 이병찬 선생이 직접 천연염색한 작품들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전에 비해 대부분의 것들을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염색도 마찬가지다. 직접 갖가지 식물을 채취해 색을 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몇 가지 화학염료를 섞으면 금방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색일지라도, 화학염료가 만들어낸 색과 자연이 만든 색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작은 차이지만, 소중한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이전처럼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이 차이를 지키고 싶어 하지 않게 됐다. 이 같은 세태 속에서도 천연염색가 이병찬(82·여) 선생은 30년간 천연염색 연구에 매진해왔다. 5월 20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를 통해, 자연의 색을 지키기 위한 뜨거운 열정을 들여다본다.

▲ 천연염색의 원료가 되는 양파, 괴화, 정향이다.

색은 사람의 심성, 마음가짐, 안목의 결정체

“우리 색은 옛날에는 단순해 가지고 지금처럼 복합적인 색이 없었어. 단순해. 노란 거믄 노란 거, 주홍이면 주홍, 이렇게 단순했지. 지금처럼 복합적인 색은 안 썼다고. 그러니까 오히려 더 간결하고 맑고 그랬지 않았을까.”
정년퇴임 이후 우리 색을 재현하겠다는 마음으로 1982년 염색에 입문, 30년간 각종 식물을 통해 꾸준히 천연염색을 연구해온 염색연구가 이병찬 선생의 기증 특별전 ‘자연을 물들이다’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5월 2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1990년 ‘제15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천연염색실’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병찬 선생이 기증한 염색 관련 작품과 연구 자료 등이 공개된다.
이 선생은 4월 11일 박물관 내 공방에서 진행된 ‘염색 시연’ 행사에서 양모를 소목으로 염색했다. 자주색에 가까운 적색을 내는 소목은 콩과에 속하는 관목의 일종이다. 선매염을 거쳐 본격적인 염색 과정이 진행된 2시간 동안 이 선생은 염색기술뿐만 아니라 자신의 염색 인생에 대해 말하고, 관람객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염색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급히 서두른다고 해서 염색이 되는 게 아니며, 염색할 때 그 사람의 심상, 마음가짐 등이 합쳐서 색이 나온다”며 말을 시작했다.
이 선생이 염색을 시작하게 됐을 당시의 각오는 의외로 소박했다. 그저 정년퇴임 이후 2~3년 정도 염색을 배워 이를 통해 생계를 꾸려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 분야에 뛰어들고 보니 예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아니, 훨씬 힘들었다. 염색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술은 1~2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겹겹이 쌓여야만 가능하다는 것도 이때 깨닫게 됐다.
그는 “처음 10년은 그냥 덮어 놓고 산에 가서 식물 채취하고 실험하고 종이 공장가서 얻어 와서 또 실험하고 그랬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발표한 게 대통령상을 탔다”며 1990년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에는 책임감이 생겨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더 열심히 염색했다. 그렇게 염색에 입문한 지 30년이 흐르니 이곳에 서있게 됐다고.
이 선생의 연구는 치열했다. 그는 19세기 화학염료가 만들어지기 이전, 인류가 자연에서 채취해 만들어낸 색을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의 문헌에 기록된 염색식물을 찾고, 그 성분을 바탕으로 또 다른 염색 방법을 밝히는 과정 등이 담겨 있는 연구노트가 이런 노력을 증명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생이 표현해내는 색은 부드럽고 온화해 우리의 심성과 문화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1부 ‘色, 스며들다’ △2부 ‘色, 담기다’ △3부 ‘色, 발산하다’ 등 총3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에는 이 선생의 염색 입문 배경과 함께 1990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천연염색실’이 소개된다. 2부는 식물표본, 서적, 연구노트 등이 놓인 연구실을 연출해 오랜 염색 실험의 결과물로 구성된다. 3부에는 염색 공방을 연출, 우리 색의 발현 과정을 소개하며 선생과 제자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 선생은 이날 시연회를 찾은 젊은이들에게 “요즘은 세태가 너무 변해서 돈이 되지 않는 염색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합성염료로 너무나 쉽게 염색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옛 것을 많이 보고 색에 대한 안목을 익혀 옛 색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선생의 염색 시연은 전시기간 중 매주 목·일요일 오후 2시, 어린이박물관 전시연계교육 ‘풀꽃에서 찾는 우리색’도 4월 28일, 5월 12·19일 오전 10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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