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로 몸 묶은 채 종일 버텨…유서까지
쇠사슬로 몸 묶은 채 종일 버텨…유서까지
  • 연합
  • 승인 2013.05.24 12:52
  • 호수 3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밀양 송전탑 현장서 노인들 ‘목숨 건 전쟁’ 벌여
▲ 한전의 765㎸ 송전탑 공사 재개 이틀째인 5월 21일 경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 뒷산 89번 송전탑 공사장으로 가는 산길, 70~80대 노인들이 몸에 쇠사슬을 묶고 공사장비를 막아섰다.

반대주민 대부분 70~80대, 충돌로 불상사 우려

한전의 765㎸ 송전탑 공사 재개 이틀째인 5월 21일 경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 뒷산 89번 송전탑 공사장으로 가는 산길, 70~80대 노인들이 몸으로 공사장비를 막아섰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속에서도 어르신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발을 녹였다.
하복련(82) 어르신는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 3시에 산에 올라왔더니 온몸에서 한기가 난다”며 덜덜 떨었다.
바로 옆 한전 협력업체 굴착기 아래에서는 칠순의 어르신 3명이 쇠사슬과 밧줄로 몸을 묶은 채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송전탑 공사현장에 투입된 굴착기 아래에도 70~80대 어르신 6명이 밧줄과 쇠사슬로 몸을 칭칭 감고 공사를 저지하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주민들과 함께 공사 저지에 나선 동화전마을 이선옥(48) 부녀회장은 “어르신들이 혹시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루하루 가슴을 졸인다”며 “정말 이러다 큰일이 날 것”이라며 애를 태웠다.
이곳 공사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하 어르신는 이날 오후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다.
송전탑이 들어설 밀양지역 4개 면 가운데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의 농성장 두 곳을 지키는 노인들은 가장 잘 조직된 ‘전투력’을 보일 만큼 강하기로 소문났다. 특히 상당수 노인은 자식들의 만류에도 유서까지 쓰고 송전탑 공사 저지에 나서고 있다.
노인들은 송전탑 공사장으로 향하는 마을 2곳에 대형 천막으로 농성장을 마련하고 트랙터, 경운기 등 농기계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고 결사 항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전이 경찰의 공권력을 동원해 공사를 강행하면 맞서고자 특별히 제작한 ‘소똥·인분 수류탄’을 앞치마처럼 매달고 있다.
이곳에서 시위를 벌이던 이금자(83) 어르신은 한전의 공사재개 첫날인 5월 20일 경찰의 공사장 진입을 막으려고 알몸시위를 벌이다가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마을 132번 송전탑 공사 예정지 인근의 한전 공사자재 야적장에서도 노인들이 온몸을 던져 공사 저지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9시께 한전 헬기가 이곳 자재 야적장에 접근하자 자재에다 미리 준비한 벨트와 밧줄로 몸을 묶고 저항했다.
우화자(72) 어르신은 “헬기가 오면 공사자재에 매달려 함께 하늘나라로 갈 각오로 이곳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분노했다.
주민들은 ‘765㎸ 아웃’이라고 쓴 파란색·붉은색 조끼를 착용한 채 신속하게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마을 노인들은 농성장에 자체 근무표까지 짜놓고 낯선 사람과 차량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고령자들이지만 모두 무전기나 다름없는 휴대전화는 필수품이다.
상당수 노인은 젊은 층이 즐겨 쓰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카카톡이나 문자를 주고받으며 상황을 전파한다.
124번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인 밀양시 상동면 여수리 마을 노인들도 공사 저지를 위해 똘똘 뭉쳤다.
이 마을 방동자(73) 어르신은 “후손들에게 남겨주지 못할 땅이라면 차라리 이곳에서 죽는 길뿐”이라며 한전의 공사 재개를 강하게 비난했다.
김우곤(75) 어르신은 “논밭이 송전탑 공사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데 오늘은 경찰이 막아서 내 땅조차 밟지 못했다”며 “이게 대한민국의 국책사업이고 공권력이냐”며 분개했다.
노인들은 한전이 공사를 본격 시작하기 위해 밀양을 찾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처럼 고단하고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처럼 노인들만 목숨을 건 저지에 나선 것은 현재 공사에 반대하는 4개 면 주민 대다수가 60세 이상 고령자이기 때문이다.
이계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4개 면 1484가구 3000여명 가운데 80%가량이 60세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아 대부분 신경통, 혈압 계통 질환을 앓고 있다.
공사 저지 과정에서 자칫 충돌로 큰 불상사가 발생할 소지가 그만큼 크다.
한전도 이를 의식해 의료진을 공사현장 곳곳에 투입하는 등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이날 경남을 방문해 공권력 투입 방침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세게 하기는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전의 이틀간의 공사 과정에서 노인 5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