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게 바로 꿈이 없다는 것”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게 바로 꿈이 없다는 것”
  • 대구광역시 취업지원센터 백 웅 팀장
  • 승인 2013.06.14 13:11
  • 호수 37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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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농군학교 입교 체험기
▲ 이번 교육에 입소한 취업지원센터장 80명이 이 심 중앙회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번 기회를 통해 회장님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규칙 없이 못 먹는다는 가나안 농군학교 식사시간 기억에 남아
구인처 발굴, 사후관리 방법 등 노하우를 배우려 눈들이 ‘반짝’
새벽 5시, 신선한 새벽공기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나를 깨워

대구광역시 취업지원센터 직원 4명은 워크숍 참석을 위해 탁 트인 고속도로를 3시간쯤 달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하는 경계선에 위치한 가나안 농군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역사의 한편을 보여주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환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나를 빨아들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커다란 비석이었다. 사람의 두 배쯤 되어 보이는 큰 비석에 새겨진 문구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라는 약간의 위엄이 느껴지는 글귀로 이곳 생활의 기본 의식이 얼마나 근면할 지 말해주는 듯했다. 이후 하나둘 도착하는 여러 센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반가움이 무르익을 무렵, 어렸을 적 교실과 같은 분위기의 교육장에 80명의 인원이 입교를 하게 되었다.
먼저 관리부장의 안내에 따라 총반장, 반장, 부반장, 봉사부장 등을 선출하고 가나안 농군학교의 입교식 및 생활안내 시간을 가졌다.
가나안이란 뜻이 궁금했던 나는 관리부장의 말에 유심히 귀 기울이게 됐는데 ‘비옥한 옥토’ 또는‘신이 감독한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농군은 농사 ‘농(農)’에 군사 ‘군(軍)’을 결합한 한자로 60년대 농업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경제를 바탕으로 농민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뀔 수 있다는 취지를 말해준다는 점에 촌스럽게만 느껴졌던 가나안 농군학교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비록 그 시절 나는 없었지만, 국민 GNP 87달러인 우리나라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새마을 운동에 불을 지핀 것이 여기 가나안 농군학교라니 ‘난 지금 한 편의 역사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새삼 환경이 달라 보이고 고개가 숙여졌다.
첫째 시간에는 서울경영아카데미 구열회 소장님의 강연이었다. 너무 솔직, 담백하여 여러 교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이기도 하다.
특히 강조했던 부분이 ‘변화, 혁신, 관점’이라는 점에서 우리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와도 연관이 있고 또 우리가 가장 추구해야 할 목적임에 더욱 공감이 갔는지도 모른다.
총 반장의 대표인사 ‘개척’과 함께 시작된 강연을 통해 변화와 혁신의 의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또한 자기의 관점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며 그 생각으로 행동 또한 달라진다는 우리가 다 알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기본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
특히 헬렌켈러의 ‘보지 못하고 듣지 못 하는 것보다 더 슬픈 게 바로 꿈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대목은 영적(정신적)인 것이 육적(육체적)인 것보다 중요하다는 세상의 흐름을 말해줬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꿈을 가지는 것이 우리 취업지원센터가 가져야 할 가장 근본이 아닌가란 생각이 사뭇 들었던 것 같다. 한 시간 반 남짓 되는 길지 않은 강연이었지만 피부로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드디어 가나안 농군학교의 규칙 없이는 못 먹는다는 식사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우선 교육장 밖 작은 공터에 2열종대로 줄지어 대열을 맞춰야 했고, 제자리 뜀박질을 하며 밥을 먹기 위해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구호 소리가 작으면 단체 벌을 받기도 하고 대열에서 이탈해 밥을 제일 마지막으로 먹기도 했다. 사람은 단순하다 했던가? 지금 생각이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매 식사 때 마다 점점 커졌고 일체 간식 반입이 금지된 학교규칙에 서로 간 눈치는커녕 오직 식사만을 눈에 불 켜고 기다렸던 것 같다.
즐거운 식사시간을 마친 후 우리는 취업지원센터의 자체 학과인 분임토의에 들어갔다. 신입 취업지원센터와 우수기관, 통합취업지원센터로 조를 분류하고 서로간의 의견을 교류하며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신기했던 것은 보통 교육 또는 워크숍의 경우 이 시간이면(저녁 7시 이후) 식사 후 담소를 가지는 여유 있는 자리가 되었으나 밤 9시가 넘어서까지 강행되는 토의에 누구하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지역 센터장 및 실장, 팀장들은 늦은 시간의 이런 회의가 조금의 생소한 기색도 없이 운영방식, 구인처 발굴, 사후관리 방법 등의 순서로 이어진 토의에 서로 간의 노하우를 조금이나마 배우려는 자세가 역력했고, 특히나 시간이 제일 길었던 신입 센터장의 토의는 답을 찾으려 하는 눈빛이 반짝였으며, 그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 역시 사람은 생각의 동물이란 것을 실감하며 관점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는 것을 몸소 느끼는 시간이었다.
분임토의를 마친 후 우린 취침 전 세면을 하기 위해 운동장 옆 샤워장으로 향했다. 물론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샤워기가 여러 개 설치되어있는 것만 해도 감사 할 따름이었다. 정말이지 생각이 바뀌면 마음도 바뀌나 보다. 샤워기가 있으니 엎드려 씻을 필요 없고, 슬리퍼가 있으니 운동화가 젖을 일 없다. 게다가 따뜻한 물까지 나오니 감기 걸릴 일 없고, 치약과 비누가 비치되어 있어 세면도구를 들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 또한 최소화 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절약 정신을 바탕으로 아껴 써야 하는 규칙이 존재한다. 놓여있는 나의 환경에 감사할 줄 알고 신뢰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가치를 쌓아간다면 우리 사회도 가나한 농군학교처럼 진정성이 보이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직원의 코에서 나오는 3D입체 음향이 질린다 싶었을 때 기상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벽 5시. 설마 했는데 정말 새벽 5시에 기상이다.
피곤함을 뒤로 하고 주섬주섬 숙소 문을 나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록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나였지만 코로 들어오는 신선한 새벽공기는 지금까지 맛봤던 공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공기였다.

▲ 강희성 본부장을 비롯한 가나안농군학교 입교자 80명이 운동장에서 국민체조를 위해 정렬하고 있다.

아침점호와 국민체조 후 세면과 함께 침구류를 정리하고 6시 30분 새벽교육을 듣기 위해 교육장으로 갔다. 자리에 앉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건장한 강사님 한분이 들어오셨다. 운동습관에 관한 강연이 하나, 둘 이어졌는데 난 개인적으로 운동 관련 교육을 그렇게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실습에 가까운 교육을 하는 강사님은 처음 봤다. 솔직히 말해 그 때 배우며 잠깐 했던 근육 운동이 아직까지 몸을 아프게 하는 걸 보면 명강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한국고령사회교육원 박종혜 대표의‘소통과 역량’에 관한 강의를 통해 노인관련 정부정책 및 업무형태 변화에 대한 조직 내 갈등 해결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가나안 농군학교 김평일 교장님께 ‘효(孝)’에 관한 진솔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점심식사 후 진행된, 이번 워크숍 기간 중 나 스스로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이 심 중앙회장님과의 면담시간은 이번 교육이 다소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자리여서 그런지 기대했던대로 회장님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새마을 운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취업지원센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강연을 하셨다.
특히 취업지원센터의 젊은 직원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돈에 관해 민감한 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돈이란 것은 월급을 모아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다보면 또 모든 것을 베풀다 보면 돈은 언젠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나 또한 30대 중반의 청년으로 돈에 욕심을 갖지 않고 생활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회장님의 말씀을 절실히 공감하고 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더 이상 돈을 쫓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보다 ‘지금 내가 돈을 쫓느라 허비한 시간이 현재의 내 몫을 갉아먹고 있다’라는 것이다. 돈을 쫓느라 내 앞의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난 어느 한쪽도 성취하지 못하는 실패한 인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내가 ~을 하겠다’라는 믿음으로 지금의 내 앞에 있는 나의 몫을 좀 더 확실히 성취할 수 있다면 회장님 말씀처럼 돈이라는 것은 언젠가 나에게 저절로 흘러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워크숍은 이처럼 나에게는 내 삶과 주변 환경 그리고 여러 가지 여건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비롯한 힘들고 어려운 위치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맡은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취업지원센터 직원들이 가나안 농군학교의 ‘개척’이라는 구호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앞으로의 취업지원센터 방향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 확신한다. 

▲ 대구광역시 취업지원센터 백 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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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뺑이 2013-06-23 04:23:58
나이76세이데 농군학교 입교가 안 될는지 부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