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과다한 시대… 마음 치유하는 ‘힐링’이 대세
스트레스가 과다한 시대… 마음 치유하는 ‘힐링’이 대세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3.06.24 15:49
  • 호수 3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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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 ‘힐링을 힐링하다’ 보고서 발표
▲ 심신의 치유를 뜻하는 힐링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6월 17일 밤 11시에 방영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 닉 부이치치가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웰빙’은 경제·사회 안정기에 붐… 힐링은 침체기에 유행
힐링 푸드, 청소년 힐링 음악회 등 관련 상품·서비스 봇물
직장·학교에 밀착형 정신건강시스템 구축해야 지속 발전

바야흐로 ‘힐링’(healing) 열풍이다. 1997년 D일보를 통해 일본의 새로운 트렌드로 소개된 이래 이제는 ‘힐링’이라는 표현이 없이 한국의 사회·문화를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새로운 문화 또는 복지 아이템을 추진할 때도 여지없이 ‘힐링’ 개념이 들어가고 힐링 도서로 소개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2013년 1~3월 베스트셀러 집계 자료에 따르면 혜민 스님의『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비롯해 힐링을 다룬 책 7권이 10위 안에 들었다. 특히『멈추면…』은 최단기간인 7개월만에 밀리언셀러(100만부 이상 판매)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힐링을 테마로 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역시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연예인 뿐 아니라 정치인들까지 등장해 숨겨진 아픈 사연, 고민 등을 털어놓고 있다. 6월 17일 방영된 프로그램에서는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임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행복을 전파하는 닉 부이치치가 출연해 시청자를 감동시킨 바 있다.
최근 공개된 삼성경제연구소의 ‘힐링을 힐링하다’ 보고서를 중심으로 힐링 열풍의 배경과 발전방향을 살펴본다.

웰빙은 뭐고 힐링은 또 뭔가=힐링 열풍이 불기 전 우리나라를 먼저 평정한 건 웰빙(well-being) 바람이다. 웰빙과 힐링, 둘 사이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웰빙의 뜻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삶의 문화 또는 양식’이라고 풀이된다. 경제 성장기에 오직 물질적 부(富)를 창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왔다면, 웰빙은 물질보다 삶의 질을 강조하는 생활 방식이다.
원래 웰빙은 미국의 중산층이 첨단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주의, 뉴에이지 문화 등을 받아들이면서 선택한 삶이다. 이 웰빙 문화가 2003년 이후 국내에 수입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침 건강과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욕구와 맞물려 확산된 것.
웰빙 바람이 긍정적인 모습만 보인 건 아니다. 고급 스파와 피트니스 클럽을 즐기면서 유기농 식단이나 전통식을 고집하는 상류층 문화로 변질되기도 했다. 빈부격차와 과소비를 부추기는 역기능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에 비해 힐링은 마음을 위안하며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 웰빙과 힐링은 둘 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통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웰빙이 건강과 삶의 만족도를 강조하는 반면, 힐링은 마음과 정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초점을 둔다.
국제힐링코칭협회 이현주 대표는 “웰빙이 잘 먹고 잘 사는 라이프사이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힐링은 외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뿐 아니라 내면의 상처, 다른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꾀하는 더 발전된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힐링 열풍의 배경=삼성경제연구소는 힐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시기의 특성을 경제난 및 1인당 국민소득과 연관시켜 한국과 일본, 미국을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힐링이 유행한 시기는 거품이 붕괴되면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잃어버린 10년’(1991~2002년) 기간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었으나 실질GDP 성장률은 1%이하로 떨어지고 자살률은 급증했다.
2008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도달한 한국에서도 2010년 이후 금융위기로 저성장 우려가 커질 무렵 힐링이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자살이 급증하는 등 치유의 필요성이 커졌으나 이 당시는 소득수준이 낮아 힐링이 본격화될 분위기가 아니었다.
미국은 1988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돌파한 뒤에도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힐링보다는 웰빙에 관심이 집중됐다.
한·미·일 3개국을 종합해보면 힐링 열풍은 적어도 2만달러의 소득을 달성한 상태에서 경제침체가 닥칠 때 확산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1인 가구가 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돼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배려와 위로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분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비관론 확산 및 정신과적 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의 정신질환 진료자는 2005년 170만명에서 2010년 231만명으로 35.9% 늘었고, 자살률은 10만명당 33.5명으로(2010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정이다.
이처럼 힐링 열풍은 2010년 이후 경기부진이 장기화되고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취업난 등 생존 경쟁에 내몰린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공감·위로·치유에 대한 욕구가 급증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힐링, 어디까지 왔나=힐링 열풍은 힐링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90년대 후반 힐링 비즈니스인 ‘릴랙세이션’ (relaxation) 산업이 본격화됐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또는 퇴근 후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릴랙스 살롱, 고농도 산소를 마실 수 있는 산소 바 등이 대표 휴식공간으로 떠올랐으며, 일본의 릴랙세이션 산업은 2020년경 12조~16조엔(약 144조~19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의 한 돌고래 클럽은 야생 돌고래와 바다에서 함께 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수영 투어 서비스를 선뵈고 있다. 조련사의 안내를 받아 고래를 만지거나 먹이를 줌으로써 돌고래와 친밀감을 느끼는 프로그램으로 자폐증 어린이나 우울증 환자들에게 상당한 치유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의료, 소비재, 서비스, 문화 영역에서 다양한 힐링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스트레스 관리와 피부미용 효과를 겸비한 에스테틱 스파(aesthetic spa)가 붐을 이루고, 산사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보내는 템플스테이도 인기몰이 중이다.
롯데백화점은 피로회복, 신진대사 개선, 심리적 안정 등에 도움을 주는 식품 80여 종을 한데 모은 힐링 푸드관을 설치한 바 있다. 대전·충남지역 소주 회사인 선양은 ‘에코 힐링’(자연 속에서 마음과 몸을 치유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자)이라는 기업철학 아래 대전 계족산에 황톳길을 조성해 개방하고 매년 숲속 맨발걷기 축제를 열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밖에 지휘자 금난새씨가 이끄는 청소년 힐링음악회를 비롯해 치유를 표방하는 음악회·전시회·영화감상·세미나가 줄을 잇는다.

바람직한 발전 방향=삼성경제연구소는 “지속가능한 힐링 환경을 만들려면 의료 인프라의 효율성을 높여 예방과 통합의 힐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가정·직장·학교에 생활밀착형 정신건강 시스템을 구축해 정부 차원에서 힐링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치유 시설, 상담전문가, 항(抗)스트레스 상담센터 등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힐링 지원은 일상적 케어, 전문적 케어, 재활에 이르는 정신건강 전 영역의 서비스를 생활밀착형으로 관리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필요한 인력은 기존 정신과 의사 이외에 정신질환 전문 간호사, 심리학자, 정신사회복지사, 결혼·가족 치료사 등 정신건강 전문가 집단을 양성함으로써 충원한다. 또한 기존 의학 시스템에 한의학·농업·체육 등이 추가된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신건강 관리에 효과적이다. 특히 청소년 정신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교사가 학생 가정환경문제까지 적극 개입하고, 독일처럼 ‘갈등 중재 학생’을 양성해 학생 간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기업도 근로자의 힐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야간근로자, 기러기 부모, 가사부담이 큰 근로자 등 잠재적으로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직원들을 조기에 파악해 상담 및 맞춤형 치유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의 소니는 사내에 운동치료센터를 설치해 전문의를 상주시키고 내부 상담과 외부 전문기관 이용을 연계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인 애보트(Abbott Labs)는 정신건강이 악화된 직원의 성공적 복귀를 위해 기간과 횟수에 관계없이 면담을 실시하는 등 지속적으로 돌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승철 수석연구원은 “기업은 고객만족 차원에서 고객과 함께하는 힐링을 추구하고 정부는 정신건강 관련 R&D투자를 강화해 힐링의 과학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와 기업과 개인이 힐링을 추구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연세대 권수영 교수(상담코치학)는 케이블 채널 CBS의 힐링 프로그램 ‘솔로몬’에 출연, 힐링은 공감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힐링의 모델로 예수를 꼽은 권 교수는 “예수가 보여준 힐링은 자신이 곧 살려낼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린 공감에서 나온다. 예수의 공감은 당시 가장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밑바닥에 서는’(under-stand) 행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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