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문제 대부분 개인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
“노인 문제 대부분 개인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6.24 16:30
  • 호수 3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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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배웅’서 주인공 노인 연기하는 배우 오영수씨
▲ 연극 ‘배웅’에서 병실에 입원한 노인 순철을 연기하는 배우 오영수씨가 서울의 한 연습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무대 위 47년… 아쉬운 작품 더 기억에 남아
연기 인생 돌아보는 자전적 모노드라마 하고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익숙한 얼굴. 바로, 연극배우 오영수(69)씨다. 대중에게 그를 각인시킨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과 MBC 드라마 ‘선덕여왕’(2009), ‘무신’(2012)이 대표적이다. 세 작품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승려를 연기해 ‘승려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그러나 그는 승려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50년 가까이 연기해왔다. 특히 연극 무대에서는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리어왕’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파우스트’ ‘베니스의 상인’ 등 다수의 굵직한 작품에 참여, 배우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처럼 노익장을 과시하며 한 결 같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오씨가 올 여름에는 연극 ‘배웅’으로 무대에 선다. 7월 7일까지 서울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되는 이번 작품은 병실에서 만나게 된 70대 노인 순철과 봉팔의 이야기다. 오씨는 자신의 역할 순철에 대해 설명했다.
“70대 중반인 순철은 젊은 시절 배를 타는 선장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에요. 그러다가 중환자실에 입원, 병원에 갇힌 신세가 된 거죠. 병원을 나가도 갈 곳도 마땅치 않고요. 이로 인해,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그가 병실에 입원해 연배의 봉팔을 만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여생에 대해 대화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다투고 화해하며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서로 의지하게 돼요.”
연극은 두 명의 노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일화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오늘날 노인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70대가 되는 오씨도 순철을 연기하며,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요즘 노인복지정책에 대해 말이 많잖아요. 사실 지금 초래되고 있는 노인 문제의 대부분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갈 곳이 없거나 요양원, 병실 등에서 외롭게 지내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부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개인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정책을 집행해 해결해야겠죠. 이번 연극도 이런 세태를 반영하고 있어서 와 닿더군요.”
오씨는 올해로 연기 인생 47년이 됐다. 반 백 년을 연기한 베테랑 연기자지만, 그는 점점 더 연기가 어려워진다고 고백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연극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기쁨을 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연극을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연극에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과 가치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극 무대에 서는데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그래서 연극이 점점 더 어렵고, 어떤 때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원래 알면 알수록 어려워진다고 하잖아요. 이제는 경지를 생각하며 연기하다보니 더 힘든 것 같아요.”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에게 인생은 연극보다 더욱 어렵다고. 그는 ‘무대의 연극은 리허설이 있어 서툴지 않은데,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어 늘 서툴다’는 말을 인용하며, 지난 연기 인생을 회고했다.
“인생은 살아도, 살아도 서툴죠. 그렇다고 해서 연기가 쉽다는 얘기는 아니지만요. 연기를 하면서 불혹을 넘기고 이순을 지나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도 그래요. 뒤돌아보면, 연극을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낸 것 같아요. 이제는 연극인으로서나 저 자신으로서나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무언가(연기)를 계속하기 위한 삶을 살고 싶어요.”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오씨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작품도 여럿 있다. 헌데 그가 꼽은 작품들은 그에게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안긴 ‘백양섬의 욕망’(1979)이나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차지하게 한 ‘피고지고 피고지고’(1994) 등 영광을 준 작품들이 아니다. 오씨는 오히려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을 가장 기억에 남는 연극으로 꼽았다.
“제가 30대일 때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를 연기했어요. 그런데 많이 부족했거든요. 돌이켜보면, 그 역할을 소화하기에는 제가 너무 젊었던 거죠. 그래서 아쉬움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50대 후반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 출연했는데, 이때는 반대로 제가 리처드3세를 연기하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었더군요. 워낙 대작이기도 해서 소화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했고요. 사실 200여편의 연극에 출연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던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요.”
이처럼 연극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대단한 오씨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연극무대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왜 연극만을 고수하느냐고 묻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드라마든 영화든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거든요. 오히려 매체의 종류보다는 작품 자체를 보는 편이죠. 그러니까 연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하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나 영화라고 해서 다 거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좋은 작품을 선별해서 연기하고 싶은 거죠.”
사실상 거의 모든 역할을 다 해봤다고 말하는 그지만, 여전히 욕심나는 작품과 배역은 있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에서 주인공인 63세 윌리 로먼을 연기하고 싶다고.
“윌리 로먼은 보험회사의 세일즈맨인데, 대공황이 닥치기 전까지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었죠. 그러다가 몰락하면서 아들과 불화를 겪게 되고 결국에는 자살해요. 윌리 로먼의 삶 역시 오늘날 노인의 자화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연극 안에는 한 남자의 흥망성쇠, 즉 일생이 모두 녹아 있는 거죠. 이제 저도 나이가 들었으니 일과 인생에서 은퇴한 63세 남자의 심정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인간 오영수로서, 또 연기자 오영수로서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평생 연극을 해서일까요. 이제는 제 인생을 표현할 길은 연극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 인생 5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내거는 건 좀 거창해요. 그보다는 연기를 50년 가까이 했으니 자전적인 내용의 모노드라마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여느 신인배우보다도 손순하게 자신을 낮추는 오씨를 보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역시 옛말은 틀린 것이 없다고 했던가. 오씨가 오랜 세월 연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연기력뿐만 아니라, 이토록 겸손한 태도 때문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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