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여성 노인들 “가난·질병에 고통… 그래도 인정은 있어”
쪽방촌 여성 노인들 “가난·질병에 고통… 그래도 인정은 있어”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3.07.19 10:07
  • 호수 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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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안기덕 교수팀 ‘쪽방촌 여성 독거노인의 삶’ 보고서
▲ 쪽방촌은 건물이 낡고 시설이 노후해 생활하기에 몹시 불편하다. 여름철엔 실내 온도가 체온만큼 올라 견디기 힘들 정도다.

남편과는 대부분 이혼·사별… 자식과는 연락하며 살아
가족과 단절된 남성 노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활
“자식 있다고 기초수급 제외… 복지 사각지대 개선해야”


쪽방에 사는 여성 독거노인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쪽방촌을 ‘차별이 없고 인정 넘치는 곳’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은 당국에서 복지정책을 펼 때 쪽방촌을 무조건 없애려고만 할 게 아니라 거주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현주 성균관대 겸임교수(사회복지대학원)와 안기덕 인천재능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쪽방에 거주하는 여성 독거노인의 삶’에 대한 공동연구 보고서(보건사회연구 2013년 6월 33권 2호)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우리사회에서 ‘쪽방’은 ‘노숙인’과 함께 가난이나 실패, 고독을 연상하게 하는 대표적인 단어다. 넓이가 반 평이나 한 평(3.24㎡) 정도로 성인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공간에 세면이나 취사를 위한 공간이나 화장실 등의 부대시설이 없다. 그만큼 취약 계층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쪽방 사람들의 실제 삶은 어떠할까. 이현주·안기덕 교수팀은 “쪽방하면 대개 노숙인이나 실직한 중장년 남성만을 떠올리고, 그곳에 여성 독거노인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고 연구에 나선 동기를 설명한다. 연구팀은 2012년 8월 대전광역시의 한 쪽방촌을 방문해 여성 독거노인 7명을 한 달간 수차례 개별적으로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쪽방촌에 오게 된 계기=연구자들의 인터뷰에 응한 7명은 현재 ‘남편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7명 중 5명은 이혼 또는 별거상태였고 2명은 사별한 상황이었다. 이혼의 이유에 대해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력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노름을 일삼거나 외도에 빠져, 아내의 돈을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한 경우도 있었다.
C씨(69)는 “가게 할 때 가게 좀 보라고 하면 돈을 감춰 갖고 가서 다 써버리고 술 먹고 계집질하고 집에 와선 행패를 부렸다”고 말했다.
이혼 또는 사별로 남편을 잃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정착한 곳이 쪽방이다. 이들에게 쪽방촌 정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삶은 매우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은 “쪽방촌에 오게 된 계기를 살펴볼 때 남녀 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남성의 경우 가정이 완전히 해체되고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는 등 절망적 상황에서 쪽방을 선택한다. 특히 남성 노인은 가족과 관계가 끊어진 경우가 많아 ‘마음 둘 곳이 없는 외로운 신세’이다. 반면, 여성 노인은 자녀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은 받지 못하더라도 심리·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쪽방촌의 삶=이곳 여성 노인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하게 된 일은 쪽방 관리였다. 쪽방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청소, 빨래 등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받는 수입으로 살았다. 게다가 쪽방을 관리해 주는 대가로 임대료를 면제받았다. 연구팀은 “임대료 부담이 없다는 게 여성들이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이유가 됐다”고 해석한다.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힘은 ‘자식’이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 것. 이는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바로 ‘모성애’라고 할 수 있다.
C씨는 “그것(자식)들 먹여 살리는 거 그것뿐이지. 어떻게 해서든지 먹이고, 가르치고 해야 했지”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노년이 되어 홀로 살아가는 쪽방촌 여성의 삶에 대해 ‘고락상생’(苦樂相生)이란 말로 압축해 표현한다. ‘고(苦)’는 노인성 질환과 가난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허리디스크 질환, 관절증 등을 앓고 있고, 오랫동안 육체노동을 한 탓에 ‘몸 이곳저곳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고 탄식한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들게 살아간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그나마 나은 편. 단지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자식들도 힘든데 자신을 도와주는 것은 무리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나마 자식이 뭘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실제로 헌 옷을 주워 입거나, 난방비가 없어 연탄불로 생활하며, 폐지 줍는 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이러한 심각한 가난은 손자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요인이 된다. A씨(74)는 “우리는 능력이 없어서 손주를 안 만난다. 손주가 어디를 간다 하면 할머니로서 뭔가 줘야 하니까 안 만난다”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이들의 삶에는 낙(樂)이 있다. 우선 떨어져 사는 자녀들이 별 탈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낀다. 가끔 주는 용돈으로는 생활하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위로가 된다.
게다가 쪽방촌의 삶에 넌더리를 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B씨(67)에게 쪽방촌은 ‘차별 없고 인정이 넘치는’ 관계망으로 인식됐다. C씨는 이곳의 이웃을 ‘밥을 함께 먹는 관계’라고 표현한다. D씨(74)는 쪽방촌에서의 삶이 ‘아파트 생활보다 낫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이제 쪽방촌은 고향과 같은 공간이 됐다.

복지정책에의 시사점=연구팀은 “쪽방촌을 무조건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한다 해도’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안락한 삶의 터전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설 지원을 하더라도 공동 부대시설을 마련하는 등의 방안이 좋다고 말한다. 창문이나 보일러 교체 등 주거환경 개선사업도 좋지만, 이는 자칫 세입자가 아닌 건물 주인에게만 유리한 것이 될 수 있고 임대업만 지원하는 꼴이 된다는 것.
이 연구를 주도한 이현주 교수는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에서 제외돼 열악한 삶을 사는 복지 사각지대의 노인들을 도울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양의무자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쪽방촌 같이 빈곤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취약 계층에 대해 연구와 조사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실태조사를 통해 적합한 사회복지정책 수립과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는 쪽방 거주자의 70~80%를 차지하는 중장년의 독신 남성에 집중돼 왔다”면서 “이번 연구가 여성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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