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연주에 현이 풀리듯 관계는 변화하는 것”
“오랜 연주에 현이 풀리듯 관계는 변화하는 것”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7.19 10:40
  • 호수 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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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론 질버만 감독의 영화 ‘마지막 4중주’
▲ 영화 ‘마지막 4중주’의 한 장면으로, 현악 4중주단 ‘푸가’의 연주자들이 연습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25주년 앞둔 현악4중주단의 위기와 갈등 그려내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 모티브…명품연기 돋보여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 뉴욕타임즈 등 호평


세계적인 작곡가 슈베르트가 숨을 거두기 전 5일 동안 계속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명곡, 바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이다. 이 곡은 악보에 명시된 대로 쉼 없이 7개의 악장을 연주해야 한다. 그래서 40분을 내리 연주하다보면 악기의 현이 풀리고 연주자들의 하모니는 엉망이 된다.
이때 연주자들은 고민하게 된다. 중간에 멈춰서 조율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연주자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맞춰가며 끝까지 연주해야 할까.
클래식 애호가였던 야론 질버만 감독은 이 곡이 오랜 세월을 두고 맺어온 관계의 양상을 완벽하게 보여준다고 봤다.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 사이에는 복잡한 갈등과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며, 그 불협화음조차 인생의 한 악장이라는 것. 또, 관계는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하므로 끊임없는 조율과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곡을 모티브로 삼아, 긴 시간을 함께 해온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지막 4중주’를 만들었다.
영화는 결성 25주년을 맞은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푸가’의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랜 세월 환상적인 호흡으로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왔던 이들은, 팀 내에서 음악적·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크리스토퍼 월켄 분)가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으며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를 계기로 네 사람은 25년 동안 4중주단을 유지하기 위해 억눌러왔던 감정을 폭발해내며 위기에 직면한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이자 부부이며, 옛 연인이자 친구 등 복잡하고 깊은 관계로 얽혀있는 만큼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진다.
4중주단 내에서 늘 제2바이올린으로서 제1바이올린인 다니엘(마크 이바니어 분)을 훌륭한 실력으로 받쳐왔던 로버트(필립 시모어 호프만 분)는 피터의 은퇴를 계기로 제1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니엘 또한 양보할 생각이 없기에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거친 몸싸움까지 벌어진다.
심지어 다니엘은 로버트의 아름다운 딸 알렉산드라와 사랑에 빠지면서 로버트는 물론이고 로버트의 아내이자 4중주단의 비올리스트인 줄리엣까지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줄리엣은 다니엘의 옛 연인이기도 하다. 즉, 줄리엣의 입장에서는 옛 사랑이자 음악적 동료가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
한편, 파킨슨병으로 인해 평생 연주해왔던 첼로 연주를 그만두고, 동시에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피터는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강인한 내면을 가진 그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싸우기 시작한다. 또,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푸가의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할 것을 제안한다.
피터는 질병과 죽음 앞에 공포를 느끼고 나약해지는 순간까지도 4중주단의 멘토이자 동료로서 다른 세 명의 연주자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세 명의 연주자는 아직 젊다. 그래서 4중주단이 해체하더라도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의 양보를 꺼린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피터는 경우가 다르다. 그는 연주자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 배려하고 화합해 자신이 꾸린 ‘푸가’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멋진 연주를 하길 바란다. 그가 은퇴 공연에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공연하자고 한 것도, 연주자들이 이 곡을 연주하며 오래된 관계라면 봉착할 수밖에 없는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네 사람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애증,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의식은 영화의 말미, 묵직한 감동이 된다. 우직하게 밀어붙인 극의 사실성을 통해 이끌어낸 높은 공감도가 큰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 여기에 현악4중주단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져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풍부한 감성을 느끼도록 한다.
야론 질버만 감독은 “부모와 자식, 형제,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유대관계를 그려내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며 “현악4중주단원들 간의 긴밀히 맺어진 관계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일들이 그러한 드라마의 이상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토론토영화제, 벤쿠버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평단과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평론가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타임즈는 ‘명품 배우들이 빚어낸 감성의 걸작’, 롤링스톤스는 ‘빛나는 보석 같은 영화! 이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천국과 같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배우 지망생들이 교본으롯 삼아야할 영화’, 뉴욕타임즈는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여러 매체들의 평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적인 배우들의 명연기를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모두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6년 영화 ‘카포티’를 통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휩쓴 세계적인 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이번 영화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에 놓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가장인 로버트를 연기한다.
파킨스병 판정을 받고 은퇴를 결심하는 자상한 멘토이자 첼리스트인 피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크리스토퍼 월켄이다. 1971년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은 바 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연륜에 걸맞은 자상하고 현명한 멘토 역을 자연스럽게 연기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감동을 이끌어낸다.
4중주단이 인생의 전부인 비올리스트 줄리엣 역시 ‘키포티’로 토론토비평가협회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 이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두 번째로 노미네이트됐던 캐서린 키너가 연기했다.
이 외에도 우크라이나 출신 마크 이바니어가 제1바이올린 다니엘을, 이모젠 푸츠가 로버트와 줄리엣의 딸인 알렉산드라를 연기하며 명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특히 출연자들은 이번 영화를 위해 수개월에 걸쳐 집중적으로 악기를 배우고 연습했다. 이를 통해 실제 연주를 방불케 하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야론 질버만 감독은 “연주 장면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배우들은 전체 곡보다는 짧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며 “이례적일 정도로 헌신적인 배우들 덕분에 현을 짚고 있는 그들의 손, 핑거링, 연주에 사용되는 바디 랭귀지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는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들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쁨도 준다. 스웨덴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는 피터의 사별한 아내를 연기했으며,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니나리도 극 중 동명의 인물로 출연했다.
7월 25일 개봉하는 영화는 서울 시네큐브와 광주 광주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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