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유쾌한 모험담
[책]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유쾌한 모험담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8.02 11:13
  • 호수 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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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서 죽어야지 되뇐 것은 잘못”

500만 독자 푹 빠진 인기 소설
허풍·과장조차 유쾌하게 풀어
작가의 재치 있는 필력 돋보여

 

 

 

누군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1층 화단에 착지한 사람은 바로 백발이 성성한 100세 노인 알란 칸손. 그가 탈출한 곳은 스웨덴의 작은 양로원이었고, 1시간 뒤면 그의 백 번째 생일 파티가 성대히 펼쳐질 예정이었다.
알란이 창밖으로 뛰어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저 양로원에 웅크리고 앉아 이젠 그만 죽어야지라고 되뇐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몸뚱이는 늙어서 삭신이 쑤실지라도 양로원의 알리스 원장에게서 멀리 벗어나 실컷 돌아다니는 일이 훨씬 재밌을 것 같았다.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제목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100세의 노인 알란이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장면과 함께 시작된다. 양로원을 탈출한 알란은 곧장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이곳에서 무례한 청년의 가방을 훔쳐 달아나며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진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이유는 알란이 훔친 가방 속 내용물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로 500만부가 팔려나간 이 소설은 100세 노인 알란의 모험담과 더불어 알란이 태어나서부터 양로원에 들어오기까지 겪었던 일을 동시에 나열한다. 즉, 알란이 양로원을 탈출한 2005년 이후의 이야기와 그가 태어난 1905년부터 2005년 이전까지의 이야기 두 가지가 번갈아가며 서술되는 것이다.
알란이라는 한 인물의 두 가지 이야기는 각기 다른 즐거움을 준다. 먼저, 양로원을 탈출한 알란의 이야기는 100세 노인의 모험담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색다르다. 지금까지 수많은 소설·영화 등은 국적부터 규모까지 천차만별인 모험담을 선보여 왔다.
그러나 100세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는 전무했다. 꼭 100세가 아니더라도, 모험담 속에서 노인은 주로 이야기의 변두리에 위치하면서 주인공에게 삶의 지혜나 도움을 주는 역할에 한정돼 왔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노인 알란은 다르다. 그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 동시에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는 이 엉뚱한 여행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충격과 약해진 체력 때문에 무릎 관절이 쑤시고 쉽게 지치긴 하지만, 결코 힘들다고 불평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모험이 계속되며 한 명씩 늘어나는 동료들을 이끌며 리더의 역할을 해나간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동료들 중에는 코끼리 암컷까지 포함돼 있다는 것.
이 외에도 평생 사기꾼으로 살아온 율리시스, 수 십 개의 학위를 ‘거의’ 딸 뻔 했던 베니, 뱉는 말마다 걸쭉한 욕으로 마무리하는 ‘예쁜 언니’ 구밀라 등 결코 평범하지 않은 구성원들이 동행한다.
그렇다면, 100세가 돼서도 이토록 황당한 모험 길을 떠날 수 있었던 알란의 일생은 어땠을까. 그의 삶은 ‘파란만장’이라는 한 마디로도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사다난했으며, 동시에 전 세계의 굵직한 역사에 ‘본의 아니게’ 영향을 끼쳤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폭약 회사에 취직한 스웨덴 시골뜨기 알란은 그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을 살게 된다. 바로 험악했던 그 시대가 원했던 폭탄제조기술을 갖고 있었던 덕이다.
그저 ‘검둥이’가 한 번 보고 싶어 스페인으로 갔을 뿐인데, 알란은 그곳에서 프랑코 장군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20대 때의 일이다. 30대가 됐을 때 알란은 미국 로스앨러모스의 국립 연구소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되는데, 우연한 계기로 미국의 부통령 해리 트루먼과 친구가 된다. 이 인연을 계기로 알란은 미국 과학자들에게 핵폭탄 제조의 결정적 단서를 주게 된다.
40대 때는 장제스의 아내 쑹메이링을 돕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가 마오쩌뚱의 아내 창칭을 위기에서 건져낸다. 러시아 과학자 포포프를 따라 모스크바에 가서는 스탈린을 만난다.
황당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반동으로 몰려 블라디보스토크 수용소로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김일성과 어린 김정일도 만나게 된다. 이때 알란은 어린 김정일을 속여 김정일이 평생 사람을 믿지 않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알란은 그야말로 20세기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비범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이어지는 황당무계한 사건과 설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거나 이야기의 전개가 황당무계하다는 혹평을 받을 법도 한데, 반응은 정 반대다. 독자들은 오히려 소설의 이 같은 황당함에 열광한 것. 이는 허풍과 과장조차 유쾌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재치 있는 문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매체들이 이 소설의 매력으로 유쾌한 황당함을 꼽았다. 영국의 ‘선데이타임즈’는 ‘신랄하게 웃기고 미친 듯 자유분방하게 쓰인 데뷔작’, 핀란드의 ‘헬싱인 사노마트’는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한 유머의 향연이 펼쳐진다’고 평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경쾌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주인공 알란의 성격. 소설 속 알란의 가치관은 간단명료하다. 그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푸짐한 음식과 술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인물이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 각종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도 아무런 정치적 견해를 갖지 않는 그의 모습은 황당한 인생사보다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처럼 멍청하지 않되 정치적 판단을 거부하는 알란의 모습은, 매 순간 정치적인 입장에만 사로잡혀 정작 가장 중요한 ‘인간’을 문제에서 배제해버리는 위정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독자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소박한 행복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알란의 삶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100세 노인 알란이 모험을 주도해가는 보기 드문 이야기이며, 동시에 알란의 100년 삶 속에 녹아 있는 세계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였던 20세기를 살면서 어떤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갖지 않았던 알란의 인생은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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