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소득중심 개편… 가입자 90% 요금 줄듯
건보료 소득중심 개편… 가입자 90% 요금 줄듯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08.09 11:09
  • 호수 3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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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개선기획단 발족

피부양자, 직장에 숨은 고소득자 등 반발 클듯
건보 “고령화 지출 감당 등 위해 개편은 필수”
법적 근거 미비로 못 걷는 보험료 연 200조원


중소기업에서 월 200만원을 받고 근무하다 얼마 전 보험외판원으로 직업을 바꾼 김씨(36)는 건강보험료 납부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김씨 월평균 수입은 100만원. 그런데 납부해야 할 건강보험료는 17만원이나 됐다. 전 직장에서 내던 5만8900원에서 무려 11만1000원이나 오른 것이다.
주범은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다. 현재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는 월급의 5.89%가 부과되지만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는 소득, 재산(전·월세, 자동차 포함), 이자·배당 소득, 세대원의 성별과 연령에 따라 책정된다. 김씨는 직업 전환 후 소득은 줄었지만 작은 집에 중고차 한 대를 보유한 것이 건강보험료가 오른 화근이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김씨처럼 지역가입자가 돼 보험료 폭탄을 맞은 데 관련한 민원이 한 해 6000만건에 달한다.
정부는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직장-지역 간 이원화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한다. 어느 쪽에서도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공정하게 보험료를 매기려면 정확한 소득파악이 관건인데, 현행 보험료 부과체계에서 혜택을 보는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을 이겨낼지 주목된다.

연말까지 개편안 마련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5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발족하고 첫 번째 간담회를 열었다.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소득 중심 건강보험료(건보료) 일원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을 위원장으로 정부와 학계, 건보가입자 대표 16명으로 구성된 기획단은 앞으로 그간의 연구결과와 여건을 분석해 연말까지 개편안을 마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하고 내년 상반기께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그간 ‘소득중심 건보료 부과체계로 단계적 개편’을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추진해 왔다. 연금소득이 4000만원이 넘는 피부양자를 지역가입자로 전환시키고(2013년 6월), 올 하반기에는 노후 자동차에 매기는 건보료를 완화할 계획이다.
현재 건보료는 직장인과 지역가입자가 서로 다른 기준으로 납부하고 있다. 직장인은 월급에 보험료를 매기고 또 그것을 직장인과 사업주가 반씩 나눠 부담한다. 지역가입자는 주택·전월세 등 재산(48.2%), 소득(26.8%), 자동차(12.5%), 연령 및 성별(12.5%) 등에 가중치를 둔 부과점수를 매겨 최저 1등급에서 최고 50등급까지로 나눠 건보료를 거둔다.
월급 외 소득이 없는 서민 직장인과 소득이 거의 없는 지역가입자가 다소 손해를 보는 반면, 건물 임대수익과 고액연금, 이자를 받는 고소득자가 상대적 이익을 보는 구조다.

피부양자 등재 한 푼도 안 내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거둬들인 전체 건보료는 36조3900억원이었다. 이 중 직장가입자가 낸 보험료는 29조3797억원으로 80.7%를 차지한다. 나머지 19.3%는 지역가입자들이 냈다.
소득이 빤한 직장가입자들은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안돼 자신들의 부담이 크다며 불만이고, 지역가입자는 각종 소득과 재산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다. 직장가입자 간에도 근로 외 소득이 있는 사람과 오로지 월급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는 사람 간에 형평성이 갈리고 있다.
연금이며 임대소득, 건물, 토지 등이 있는데도 피부양자로 등재해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산이나 소득이 전혀 없는데도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퇴직으로 직장을 잃고 소득이 없는데 갖고 있는 재산 때문에 보험료가 크게 오르는 데 대한 저항도 적지 않다.
건강보험공단은 직장-지역가입자 간 구분을 없애고 피부양자 제도를 폐지하면 이런 불합리한 점들이 개선되고 건보료를 평등하게 매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로소득 뿐 아니라 사업소득(부동산 임대소득 포함), 금융(이자·배당), 연금소득, 양도소득, 상속·증여소득 등 모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면 부과체계도 통일되고 보험료 부담도 형평성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소득과 재산이 없는데도 매달 수만원씩 보험료를 부과받고 있는 290만가구를 조사해 보니 자동차에 사는 사람과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이 100만 가구에 달했다”고 말했다.

못 사는 서민에 유리
건보 가입자들은 소득 중심 보험료 부과체계에서 자신들의 보험료가 어떻게 변화될지를 가장 궁금해한다. 공단은 종합소득 자료를 기초해 분석한 결과 전체 세대의 92.7%가 현재보다 보험료 부담이 줄고 7.3% 세대만 보험료가 인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농어민, 노인, 실직자 등 지역가입자 98%가 보험료가 줄고 직장가입자 중 월급 외 소득이 없는 서민 직장가입자 90%가 보험료가 줄었다.
부과체계 개편에 가장 큰 반발이 예상되는 것은 피부양자로 등재된 214만명이다. 피부양자도 소득이 있으면 단계적으로 보험료를 매기다가 결국 제도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피부양자로 등록된 2016만4000명 중 214만명은 소득이 파악되고 475만명은 재산이 확인되는데도 보험료를 전혀 부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각지대 보험료 200조원
법적 부과체계와 소득 파악 근거 미비로 사각지대에 놓인 보험료가 연간 200조원이라고 공단은 추정하고 있다.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의 자료를 국세청으로부터 넘겨받으면 건보료 추가 징수액이 6조원이 늘어난다. 하지만 국세청에서 자료를 이관하려면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건강보험이 처음 도입된 1977년 이후 35년이 지났다. 왜 지금에서야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가 형평성에 맞다는 주장이 나오는지, 도입 당시에는 소득파악률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라고 공단은 설명한다. 소득파악률이 10%가 안 돼 지역가입자에게 대충 소득을 추정해서 매겨온 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부가 서둘러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에 나선 이유는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와 3대 비급여 개선 등 정부 정책에 따른 재원 마련과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책이행에는 1년에만도 수 조원의 추가 재원이 들고, 노인인구 연간 의료비는 전체의 34%를 넘었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 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만에 25%에서 35%로 높아졌다. 소득중심 부과로 바꾸면 민원이 줄 것을 예상해 남은 공단 인력을 질병 예방 쪽에 투입하는 복안도 갖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개선방안을 시행할 계획이지만 계획 이행은 반발세력의 저항을 이겨내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피부양자나 직장가입자에 묻어가던 일부 고소득자 10~20%의 강한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한 연금소득 연 4000만원 초과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는 세 차례나 무산됐다가 1년 만에 겨우 통과됐다. 대상자는 2만4000명에 불과했지만 대부분 고위 공무원 출신인 이들의 인맥을 이용한 로비로 정부안이 번번이 밀린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국정과제로 삼은 만큼 시일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제도는 확실히 바뀔 것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최근 열린 일본, 대만, 한국의 건강보험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정계와 학계 관계자들은 건보료 소득중심 부과 개편에 이견이 없었다.
김종대 이사장은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 증가와 4대 중증질환 등 급여 혜택 확대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려면 보험료 부과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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